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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날 이후, 마리아는 누구로 살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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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나의 이름은 마리아>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포스터. ⓒ찬란

 


'누군가의 딸'에서 벗어나다

 

16살 소녀 마리아 슈나이더는 프랑스 유명 배우를 아빠로 두고 있지만, 모델 엄마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다. 엄마의 성을 받았고 엄마의 손에 키워졌지만, 아빠의 촬영장에 가서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 나간다. 하지만 엄마는 못마땅했으니, 그녀가 계속 촬영장에 나가자 급기야 집에서 쫓아낸다.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전기 영화 형식을 띤다. 시작은 그녀가 아직 누군가의 딸에 불과했던 시절을 보여주는데, 아빠와 엄마의 딸일 수 없었다. 아빠의 딸이든지 엄마의 딸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던 것. 그녀는 배우가 되는 길을 택한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한다. 비록 엄마한테 쫓겨나 삼촌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근본만은 있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그녀가 말하는 근본은 아빠에게 있지 않고 '슈나이더'라는 성을 준 엄마한테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한 건 곧 다음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누군가의 딸'에서 벗어난다.

 

마리아에겐 삶의 다음 단계로 가는 통과의례일 텐데, 그녀의 엄마에겐 치명적일 수 있었다고 본다. 평생 일절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딸을 키웠건만 다 큰 딸이 핏줄을 못 속이는지 자신의 꿈을 키우고자 다름 아닌 아빠를 찾아간다니 말이다. 상황상으로는 당황스럽게 쫓겨난 것처럼 보이나, 실상 필연적인 독립의 수순이었던 것.

 

'배우'로 성장해 나가다

19살의 마리아는 착실하게 쌓아 온 조연 경력에 힘입어 주연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는다. 이탈리아 출신의 떠오르는 신성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할리우드 대스타 말론 브란도를 데려다 격정적인 육체 관계를 매개체로 고통, 사랑, 섹스를 탐구하는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만든다고 했다. 바로 거기에 주연으로 마리아를 점찍은 것.

마리아로서는 거절은커녕 환영해마지 않았다. 수위가 매우 높고 외설적이라지만 감독이 '예술적'으로 찍겠다고 했으니 믿고 촬영에 임하면 될 터. 그녀는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며, '배우'로서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촬영 막바지에 배우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건에 직면한다. 그 사건은 영화 역사상 가장 불미스럽고 치욕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격정적인 육체 관계 씬 정도를 넘어선 강간 신을 마리아와 일절 상의나 동의 없이 말론 브란도와만 상의한 채 촬영한 것이다. 그녀는 심각한 굴욕감과 모욕감을 받았고, 이후 영화는 크게 성공해 그녀 또한 스타덤에 올랐으나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 등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배우 생활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심각한 트라우마에 직면한 것이다.

 

'배우' 마리아를 앞세운답시고 예술이라는 장막으로 '마리아'라는 사람을 없애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1970년대 초, 그것도 문화적·성적·정치적 억압을 비판하는 68 혁명이 일어난 직후의 프랑스라고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어찌 예술이 사람 앞에 있을 수 있을까, 어찌 윤리 앞에 예술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이 먼저다. 

'마리아'라는 정체성을 정립하다

마리아는 트라우마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약물에 중독되고 자살도 시도하는 등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는 스스로를 되찾을 수 없을 듯보였다. 그러던 때 그녀를 색안경 끼지 않고 그녀 자체로 봐주는 이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마리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딸에서 배우라는 정체성을 가지려는 순간 자신을 잃어버린 마리아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진짜 '자신'을 직면하려 한다. '마리아'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정립하려 하는 것이다.

 

이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통과의례 또는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그녀가 당한 일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당한 바로 그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으니, 그 아이러니를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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