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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우연히 만난 동창과의 인연이 불러온 비극을 낭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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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럭키 데이 인 파리>

 

영화 <럭키 데이 인 파리> 포스터. ⓒ해피송

 
파니는 출근길에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였던 알랭과 마주친다. 그가 말하길, 그녀는 만인의 우상이었고 자신 또한 그녀를 흠모했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점심이나 하자며 짧은 만남을 끝낸다. 파니는 하루 종일 그 짧은 만남이 생각난다. 며칠 뒤 알랭에게서 연락이 왔고 둘은 점심을 함께한다.

경매 회사 팀장으로 일하는 파니는 한 차례 이혼 후 프랑스 파리에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남편 장과 함께 고급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직업도 좋고 서로 사랑하고 잘살기도 하니 이상적인 커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니는 알랭과 혼외 관계를 시작한다. 서로를 향한 끌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파니는 죄책감을 느끼며 불안해하지만 묘한 쾌감도 느끼니 관계를 끊기 힘들다. 장은 아내의 행동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사립탐정을 고용한다. 파니는 장에게 알랭과의 관계를 고백하려 하고, 장은 알랭을 처리하고자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려 하는데… 우연이 불러온 파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미드나잇 인 파리>의 낭만적 후속작
 
<럭키 데이 인 파리>는 우디 앨런 감독의 50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프랑스어 영화라는 점에서부터 포인트를 가진다. 한국어 제목이 다소 당황스러운데, 원제는 <Coup de Chance>로 '뜻밖의 행운(우연)'을 뜻한다. 운과 우연은 우디 앨런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주제로 이 작품 또한 누가 봐도 그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파리의 가을 풍경, 파니와 장의 고급 아파트, 파니와 알랭의 작은 집 등을 오가며 색감에 따른 분위기의 차이가 후반부로 갈수록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못 평이한 드라마로 시작된 이야기가 스릴러의 양상을 띠더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까지 나아간다. 거기에는 항상 '우연'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또 하나의 우디 앨런 시그니처인 재즈가 빛을 발한다. 가장 중요한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 중 하나인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를 비롯해 1960년대 재즈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파리의 풍경이 더욱 낭만을 자극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낭만적 후속작이라 할 수 있겠다.
 
우디 앨런이 가장 잘 전달하는 이야기
 
극 중 알랭이 '우리가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났다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야'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라며 운과 우연을 오롯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가진 반면, 장은 '뜻밖의 우연 따윈 없어' '내 운은 내가 만들어 통제한다'라며 운과 우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졌다. 그 사이에서 파니는 갈팡질팡, 또는 둘 다 취하고 싶어 한다.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운과 우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절대적이라는 것, 그 누구도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으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맞다는 것, 제아무리 완벽하게 꾸민 계획이라도 한순간에 무력하게 허물어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논하고 바라보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우디 앨런이 수십 년 동안 천착해 온 주제이기에 그의 무수한 전작들에서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테지만, 매번 재밌게 보고 감탄하는 이유는 사랑, 욕망, 성장, 갈등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처럼 운과 우연의 이야기도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 이야기를 가장 잘 전하는 이가 바로 우디 앨런이고.
 
운과 우연의 절대성에 통감하며
 
영화는 쉴 틈 없는 대화들의 향연으로 꽉 차 있다. 마치 인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로만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대화가 행동을 유발하고 인생의 경로를 바꾼다. 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대화'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야말로 일상의 모든 것이니. 이 아이러니는 독특한 발상을 불러일으킨다.

살다 보면, 그런 생각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그때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말이다. 운과 우연의 절대성을 통감하는 한편 정녕 한 끗 차이라는 점에서 운과 우연을 한번 통제해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운과 우연 그 자체에서 한 발 떨어져 살아가는 극 중 파니의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작품 역시 누구에게나 큰 호불호 없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재미없다면 그의 전작 두 편을 먼저 보고 오시라. <매치 포인트>가 서스펜스에 천착했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낭만의 이면을 천착했다. 이 작품 <럭키 데이 인 파리>는 두 작품을 합쳐 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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