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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낯선 남자가 건넨 한마디, ‘오늘 아름답지 않니?’ 그 후 벌어진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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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베일리와 버드>

 

영화 <베일리와 버드> 포스터. ⓒ찬란

 

12살 소녀 베일리는 어린 싱글 대디 버그와 철없는 이복오빠 헌터와 함께 무단 점거한 집에서 살고 있다. 바람 잘 날이 없는데, 버그는 사귄 지 3개월 남짓한 여자친구와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한다고 난리고 헌터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 친엄마가 근처에 살긴 해서 자주 들러 동생들을 들여다본다.

어딜 둘러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베일리는 자연을 만끽하며 막막한 현실에서 탈출해 보려 한다. 그때 멀리서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그녀에게 와선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어딘지 특이하고 이상해 보이기까지 한 그는 자신을 버드라고 소개하며 대뜸 오늘이 아름답지 않냐고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베일리는 주변 상황이 상황인지라 웬만한 일, 아니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어 나름 바쁘게 돌아다니는 와중에 원가족을 찾는다는 버드를 도와 함께 길을 떠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조금씩 곁을 허락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그, 버드는 누굴까? 어떤 존재일까? 베일리는 힘겨운 나날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바쁜 12살, 베일리의 하루

영화 <베일리와 버드>는 ‘칸의 여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 사이 드라마 시리즈 <빅 리틀 라이즈 2>와 다큐멘터리 영화 <카우>를 연출하며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새로운 방향성을 장착한 채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넓히는 데도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 계급 가정 출신으로, 청소년 부모 가족의 4남매 중 막내였다. 그녀가 태어난 직후 부모님은 갈라섰다.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게 자명하다. 그녀의 연출 스타일에 불우한 개인사가 반영되어 있으니, 리얼리즘이 상당하다. 불우할 대로 불우하지만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야기.

한편 주인공은 무명 배우 니키야 애덤스가 맡았지만, 버그 역에 배리 키오건과 버드 역에 프란츠 로고브스키가 안정감을 더한다. 캐릭터 자체가 톡톡 튀다 못해 폭발적이나 안정감 있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들의 연기가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있다.

진짜 사람인가, 혹은 베일리의 수호천사인가

<베일리와 버드>는 제목만 보면 베일리와 버드라는 두 사람의 로드 무비 혹은 지난한 여정을 담은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품고 있는 베일리와 달리 언제 어디서 온 누구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거니와 행동거지도 이상해 보이는 버드라는 존재가 홀로 튄다.

하물며 버드(bird)가 익히 알고 있듯 새라는 뜻과 약간 특이한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더더욱 그에 향해 궁금증을 비추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정녕 잃어버린 출신을 찾고자 할 뿐인 약간 특이한 사람일까? 혹은 베일리가 만들어낸, 베일리를 찾아온 수호천사 새일까? 뭐든 괜찮을 것 같은 이유는 베일리가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그는, 그러니까 버드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그리고 위안을 준다. 어딘지 특이한 그의 행색과 행동이 ‘(뭘 하든)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오히려 언제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그라서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현실의 끝에서 만난 희망

한편 12살 소녀 베일리는 어딜 둘러봐도 마땅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 가족이든 친구든 거리든 그녀를 온전히 챙기고 돌볼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강해지기로 했다,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자기가 직접 돌보기로 했다. 세상과 그녀 스스로를. 비록 아직 생리도 시작하지 않은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진정 모든 걸 품은 자연이야말로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무도 없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아무도 없는 수풀 속에서 먼 곳을 응시하곤 했다. 그때 마치 자연의 일부분인양 나타난 버드는 어느덧 낯선 존재에서 자연의 대체자로 자리했다. 이른바 소울메이트라는 게 존재하긴 하나 보다.

이 영화는 지극한 현실에서 시작해 상상에나 나올 법한 모습을 띤 후 해피엔딩에 가깝게 선회한다. 처절한 서사 위에 처절한 내러티브를 붙여 극한까지 가닿는 게 아닌 희망의 내러티브를 얹혀 주인공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녀의 앞에 또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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