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블랙폰 2>

스콧 데릭슨 감독은 2016년 내놓은 <닥터 스트레인지>로 흥행과 평단 양면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며 입지를 굳혔다. 마블 특성상 당연하게 후속작을 논의했으나 의견 차이로 하차한다. 대신 그가 택한 건 공포 장르, 주력 분야로 돌아간 것이다. 2022년 그렇게 내놓은 게 블룸하우스와 합작한 <블랙폰>이었다.
<블랙폰>은 저렴한 제작비로 10배 넘는 월드와이드 수익을 거뒀고 평단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연쇄살인이라는 현실적 배경에 죽은 피해자가 전화를 걸어온다는 판타지적 배경이 얹혔다. 공포 호러 장르임에 분명하지만, 전반적인 느낌 혹은 양상은 범죄 스릴러의 모양을 띄고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25년, 여지없이 <블랙폰 2>로 돌아왔다. 1편보다 2배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지만 개봉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제작비의 4배가량을 벌어들이며 순항 중이다. 범죄 스릴러의 양상을 띠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판타지가 한껏 더 가미된 판타지 호러의 모양을 띤다.
다시 울리는 전화, 되살아난 악몽
1982년 미국 콜로라도주, 피니와 그웬 남매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4년 전 아동납치연쇄살인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피니는 완전히 회복되진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그웬은 매일 밤 이상한 꿈을 꾸는데, 죽은 아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래도 피니가 직접 겪었던 사건, 그 연쇄살인마 그래버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웬의 꿈에 1957년의 엄마가 나와선 전화로 위치를 알려준다. 그웬은 그곳으로 가서 실마리를 찾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빠 피니, 그리고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 동급생 에르네스와 알파인 호수 겨울 캠프로 향한다. 정작 그곳에는 때마침 불어닥친 폭풍으로 지원 인력 몇 사람을 빼곤 아무도 없었다.
꼼짝없이 붇잡혀 있는 꼴이 된 아이들, 여지없이 그웬의 꿈에 죽은 아이들이 나온다. 이윽고 그녀의 꿈에 그래버까지 나오는데, 그의 물리적 힘이 현실로까지 이어지니 꿈속이라고 안심할 수 없었다. 한편 그래버는 망가진 공중전화로도 전화를 걸어 피니를 괴롭히는데… 죽어서도 꿈속에 나와 피니와 그웬을 죽이려는 그래버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까?
‘무서움’보다 ‘슬픔’을 밀어붙이다
<블랙폰>도 그랬지만 <블랙폰 2>도 공포 영화로서의 당연한 미덕인 ‘무서움’이라는 자극을 화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진 않는다. 물론 깜짝 놀랄 만한 잔인한 장면들이 연출되지만, 알고 보면 슬픈 장면에 가깝다. 대부분 연쇄 살인마에게 영문도 모른 채 처참하게 살해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잔인한 만큼 슬프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에서 피해자는 그저 죽을 뿐이다.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죽는지가 주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피해자는, 이미 죽임을 당한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다시 나올지 모를 피해자 후보(?)에게 도움을 청하는 한편 살인마의 존재를 일깨워주니 말이다. 객체가 아닌 주체인 것이다.
나아가 <블랙폰>에서 살인마가 외려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블랙폰 2>도 같은 기류라고 한다면 살인마가 주인공에게 또다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이 작품, 아니 시리즈만의 특장점으로 지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연쇄 살인마를 때려잡는 10대 아이들’ 같은 타이틀 말이다.
판타지 호러의 껍질을 쓴 성장 서사
피니, 그웬, 그들의 아버지, 에르네스, 알파인 호수 겨울 캠프장 모두 마음에 문제 아닌 문제를 갖고 있다. 피니는 트라우마, 그웬은 두려움, 아버지는 죄책감, 에르네스는 그리움, 캠프장 또한 죄책감으로 힘들어한다. 공통적으로 그 원흉이 살인마 그래버인 것이다. 그가 살해한 아이들과 관련이 깊다.
한편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한 어머니와 관련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런지 그녀의 죽음 또한 그래버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 궁금증을 일게 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많은 이의 삶에 지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 살인마를 어찌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하여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에 서로를 향한 믿음, 의지, 사랑이야말로 홀로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살인마를 참살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긴장을 살짝 누그러뜨리고 판타지 액션 호러를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의외의 재미를 느끼며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편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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