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제리 스프링거 쇼: 파이트, 카메라, 액션>

1992년 초, 미국 시카고에 신시내티 시장 출신의 '제리 스프링거'가 온다. 토크쇼의 진행자로 말이다. 그는 TV 뉴스에서 크게 성공한 이력이 있고 시작은 진지했다. 전에 몰랐던, 삶에 관한 뭔가를 알게 되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정도. 그런데 미국 전역에 셀 수 없이 많은 토크쇼가 있었으니 굳이 '제리 스프링거 쇼'를 찾아볼 이유는 없었다.
당대 최고는 단연 '오프라 윈프리 쇼'로 1980년대 중반에 시작해 최고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 반면 제리 스프링거 쇼는 진지하고 재미도 없고 자극도 없으니 시청률이 바닥이었고 반등하지 않으면 폐지될 운명이었다. 성공하려면 방법을 바꿔야 했는데, 당대 최고의 쇼맨 리처드 도미닉을 데려와 프로듀서장을 맡긴다.
그는 제리를 설득해 토크쇼의 모든 걸 바꿔 버린다. 무슨 수를 쓰든 시청자들이 채널을 멈추게 하는 것. 처음에는 윗분들이 격노했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니 새벽 2시에서 낮 시간대로 복귀시킨다. 그렇게 쇼를 살렸고 이후에는 한계가 어딘지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산. 폭력이 수반된 욕망, 금기, 색정, 엽기 등 온갖 추잡한 것들을 경계 없이 선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희대의 막장 저질 토크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리 스프링거 쇼: 파이트, 카메라, 액션>은 3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희대의 막장 토크쇼 또는 사상 최고 최악의 저질 토크쇼 '제리 스피링거 쇼'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최정상에 올랐으며 어떻게 꼬꾸라졌는가. 어떤 파장을 낳았는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미국의 테네시, 오하이오, 조지아를 연결했을 때 나오는 삼각형을 '스프링거 삼각지대'라고 불렀는데 쇼에 나오는 게스트의 75%가 그 지역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의 말 못 할 사연을 빌미로 그들을 왕처럼 대접해 방송국으로 불러와선 갑자기 쓰레기처럼 대하며 자극하고 각성했다. 무대 위에 올라가 개처럼 싸우게 하려고 말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와의 격차가 줄어드니 반응이 왔다. 오프라 윈프리가 제리 스피링거를 저격한 것이다. 이에 제리 쪽은 더 화끈한 걸 준비한다. 성전환, 인종차별, 근친상간 등의 자극을 월등히 초월하는 '조랑말과 결혼한 남자' 이야기로 선을 넘어 버린다. 뉴욕을 제외한 미국 전역에서 방영이 불발되지만 쇼 자체 시청률이 폭발했고 급기야 오프라 윈프리 쇼를 역전한다. 역사상 최초. 제리 스피링거는 문화의 아이콘이자 시대의 상징으로 우뚝 선다.
상황이 심각해지다
제리 스프링거 쇼는 2000년을 전후해 전환점을 맞는다. 1998년, 제리는 쇼에 출연한 포르노 스타 둘과 스리섬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전처와 장애인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충실한 남편이자 아빠 이미지가 강했기에, 요즘이라면 폐지 수순이었으나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럼에도 타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이른바 1위 쇼로 우뚝 선 후 리처드는 프로듀서들을 더욱더 가혹하게 대했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해고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쇼가 폐지되지 않게 1위까지 올라갔으니 이제 해고되지 않게 1위를 유지해야 했다. 시청자들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폭력의 위험 수위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2000년,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삼각관계 에피소드가 방영되는데 당사자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살인자는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쇼는 어떤 책임감 있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불이익도 없었다. 다만 쇼의 상황이 위험해졌다는 걸 보여줬다.
시대가 낳은 괴물
쇼 안팎의 압박과 비판이 이어졌다. 쇼의 안에선 리처드가 더욱더 심하게 몰아붙였고 프로듀서들은 자괴감에 휩싸여 갔다. 반면 제리는 독야청청 홀로 착하고 진실되고 고귀했다. 쇼의 밖에선 폭력 조장, 조작 진위 등의 비판이 몰아쳤다. 이 쇼를 비판하고 비난하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제리 스프링거 쇼는 시대가 낳은 괴물이었다. 진지한 토크쇼였다가 시청률 압박, 폐지 협박에 막장 쇼로 전환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콜로세움에 세워 구경꾼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버린 꼴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타락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인기가 정점을 찍은 후의 행보는 반론의 여지가 많지 않을 만큼 처참하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뭘까. 최초의 포부, 전에 몰랐던 삶에 관한 뭔가를 알게 된 점은 무궁무진하니 목적은 달성한 걸까. 전설의 오프라 윈프리 쇼를 꺾은 최초의 토크쇼로 길이 남아 좋을까. 티브이가이드가 뽑은 역사상 최악의 TV 프로그램으로 뽑힌 것도 좋아할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사례다. 'TV 프로그램=시청률'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공식을 악용해 온갖 막장 엽기 저질을 가져왔다. 하지만 욕을 먹어야 하는 대상은 '제리 스프링거 쇼'가 아니라 '제리 스프링거'라고 본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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