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온갖 '남자 문제'에 시달리는 네 자매의 혼란스러운 아수라장

반응형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수라처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수라처럼> 포스터.

 
1979년 1월의 일본 도쿄, 네 자매의 셋째 타케자와 타키코가 첫째 미타무라 츠나코, 둘째 사토미 마키코, 넷째 진나이 사키코에게 전화를 걸어 한데 모이게 한다. 각자의 삶을 사는 네 자매는 평소 가장 묵묵한 셋째의 연락을 받고 둘째의 집에 모인다. 이어지는 타키코의 폭탄 발언, 아버지에게 애인이 있고 오랫동안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고용해 증거도 수집했단다. 
 
네 자매와 둘째 사위는 일단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기로 하고 츠나코와 마키코가 불륜 상대를 찾아 헤어지게끔 하기로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었다. 가정을 지키고자 알고도 모른 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조간신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보냈다. 네 자매는 서로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내용이 꽤 자세하니 누굴까 궁금할 뿐이다. 
 
한편 남편을 여의고 꽃꽂이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첫째 츠나코는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중학생 남매를 키우며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둘째 마키코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으며, 도서관 사서로 너드한 감이 있는 셋째 타키코는 아버지의 외도 증거를 수집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무명 복서와 동거하는 넷째 사키코는 남자친구의 외도를 알면서도 결혼을 하려 한다. 아버지의 외도 이후 남몰래 숨기고 있던 네 자매의 진짜 모습이 아수라장처럼 혼란스럽게 펼쳐지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총집합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뽑는다. 그는 가장 일본의 심연과 수치를 동시에 들여다보며 일본 자체를 드러내려 한다. 그런 한편 작품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파격적이다. 일상이라는 토대 또는 저변 위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일들이 얹혀 있다. 하여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그런데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커리어 정점을 찍은 <어느 가족>부터 '가장 잘하는 걸 계속 잘 해내는' 느낌이다. 물론 다작 감독으로 누구도 비견하기 힘든 거장인 건 확실하다. 잘하는 걸 계속 잘 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안다. 이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기보다 예측 가능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수라처럼>은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드라마다. 아무래도 넷플릭스를 통해 앞으로도 드라마를 선보일 것 같은데, 흥행과는 거리가 좀 있는 그의 작품을 더 많은 이가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이 작품, 스토리 라인과 캐스팅과 분위기와 메시지 등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총집합이다.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과 충격적인 사건의 교차

 

평범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가족, 그 중심에 사이좋아 보이는 네 자매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70대 아버지의 불륜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도 꽤 오래되었고 어린 자식까지 있는 것 같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네 자매의 러브 스토리가 뒤죽박죽이다. 누구 하나 평범하지가 않다. 평범과 일상 그리고 충격과 공포가 뒤섞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특기가 제대로 발현된다. 그것도 2시간짜리 영화가 아니라 7시간에 다다르는 드라마로. 환호해 마지않는 팬이 있을 테다. 외형상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충격적인 이면을 꽤나 편안하게 그려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스타일이 고착화되어 7시간 내내 네 자매의 이야기로 쪼개 보여주니 지루할 수도 있다.

나아가 아무래도 긴 러닝타임이다 보니 특별한 사건 아닌 평범한 일상을, 그것도 매우 디테일하게 훨씬 많이 보여준다. 시시콜콜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과 사건이 줄을 이루고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간격이 짧아지니 촉발되는 감정싸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평범한 일상을 보여줄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다. 아수라장처럼 혼돈으로 빠져드니 흥미진진하다.

 

유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여성 주체 이야기

 

아수라는 고대 인도 신화에서 비롯되었는데 다양한 신체와 인격을 갖고 있으며 끊임없이 싸움을 즐기는 반신 종족이다. <아수라처럼>에서 네 자매를 '아수라'라고 칭한 듯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아수라장이라고 표한 듯하다. 네 자매를 보면 몸은 하나인데 다양한 신체와 인격의 아수라가 연상된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어젖히다가도 단번에 문제의 핵심으로 파고든다.

그 자체로 여성 주체의 이야기다. 1970년대 일본이 배경이지만, 네 자매 모두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다름 아닌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당사자이지만, 그들은 직접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 한다. 종잡을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공격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 상처를 입힐 때도 있지만,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고 결국 함께한다.

네 자매의 사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등 작품을 이루는 모든 게 유기적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전을 이룬다. 하여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다가 순간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이 끊임없이 이어지니 말이다. 픽션이지만 우리네 일상과 맞닿아 있다. 항상 일상적일 수 없고 항상 심각할 수 없지 않은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