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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타인의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보조 연주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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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포스터.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수많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상설 관현악단)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어디일까.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이 유럽,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와 독일인만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단연 최고로 뽑는다. 빈의 구스타프 말러, 베를린의 카라얀, 그리고 양쪽 모두의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한때 위의 두 집단과 더불어 세계 3대로 뽑혔다. 토스카니니, 번스타인, 메타가 지휘자로 재임했던 시절이지 않나 싶다. 바로 그때, 그러니까 번스타인이 재임한 시절에 뉴욕 필하모닉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단원 오린 오브라이언 이 입단했다. 1966년이었다. 180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으니 만큼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가 오린 오브라이언의 이야기를 짧고 굵게 건넨다. 그녀가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고 뉴욕 필하모닉을 거쳐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음악가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1935년생인 그녀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 더블베이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오린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오린을 사랑하는 건 오케스트라에서 빛을 내뿜기 때문이다. 오린은 음악에 전적으로 몰입하며 그쪽을 바라볼 때마다 오린도 항상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경이로운 집중력이다."라고 말이다. 100명이 넘는 단원들 중에서 지휘자의 눈에 띄는 게 어렵디 어려울 텐데 경이로운 집중력이 바탕일 것이다.

오린이 뉴욕 필하모닉에서 55년 동안 맡은 파트는 '더블베이스'다. 흔히 콘트라베이스라고 부르는 그 악기다. 오케스트라 현악기들 중 가장 큰 악기이고 가장 낮은 음역을 낸다. 그녀는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게 좋아서 더블베이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솔로가 되어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뒤에 있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태생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서부극의 스타 조지 오브라이언으로 존 포드 영화들에 다수 출연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유명 여배우 마거릿 처칠이었다. 나아가 그녀도 눈에 띄는 외모였다. 그녀가 뉴욕 필하모닉에 입단한 당시 홍보용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녀의 배경도 배경이거니와 여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음악가가 될 운명

 

오린이 말하길, 연주자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주요 특성은 첫째로 악기를 보살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 썩어 말라 버려 진동하지 않는다고. 다음으로 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이 없으면 가망이 없다. 그리고 연주할 힘이 있어야 한다. 악기를 몸으로 통제해야 하니까. 무엇보다 '음악가가 될 운명'이 중요하다.

그녀는 음악가가 될 운명이었을까. 13살 때 베토벤과 사랑에 빠졌고 고등학교 때는 음악, 음악가, 작곡가, 연주자에 관련된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16살 때 교내 악단에 들어간다. 더블베이스 자리가 비어 있었고 피나는 연습을 이어간다.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 정녕 사랑해마지 않았던 것. 음악가가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녀가 하는 말은 결이 다르다. 지금이야 전설적인 연주자로 명망이 높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부모님이 워낙 바빠 같이 살 수 없었고 수없이 이사를 다녔으며 결국 이혼하면서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였다. 그때 그녀에게 유일한 만족감과 심리적 해방감을 가져다준 게 '연주'였다. 덕분에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

 

보조 연주자 역할

 

이 작품을 연출한 이가 오린의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조카인데, 그녀가 말하길 오린은 기적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한다. 오린이 최초의 길을 열었고 50년 넘게 걸어왔으며 직장에서 은퇴했을 뿐 90세에도 여전히 직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적적일 테고,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며 조카의 말에 따르면 '뉴욕 예술가'로 당당히 살아가기에 독립적일 테다.

인생을 충만하게 즐기는 그녀만의 이론은 '보조 연주자 역할을 마다하지 말 것'이다. 유명인이 되면 박수갈채 속에서 주목을 받다가 나이가 들어가며 줄어들고 더 이상 이목을 끌지 못한다. 대신 뭔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 자체를 위해서 하고 함께하는 다른 멋진 이들을 위해 하는 거다. 함께하는 게 혼자 하는 것보다 낫다.

'보조 연주자'라는 삶의 지향점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다. 거창하지 않고 소소한 듯하지만 이룩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내면이 단단해야 하겠고 꾸준해야 하겠고 자신을 믿어야 하겠다. 보조 연주자라는 건 타인의 믿음과 신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의 방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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