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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소소한 행복을 바란 결혼 예정 커플에게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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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결혼, 하겠나?>

 

영화 <결혼, 하겠나?> 포스터.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엔터테인먼트

 

부산 모라동, 건축학과 시간강사 선우와 바리스타를 준비하는 카페 직원 우정은 비록 집은 장만하지 못했고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는 형편이지만 겨울에 결혼하기로 한다. 아직 예식장도 마련하지 않았고 심지어 상견례도 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상견례 자리를 마련했는데 그날에 선우의 아빠 철구가 쓰러진다.

 

선우는 일찍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아빠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법적 보호자가 아들이니 철구의 뒷수습을 선우가 해야 했다. 문제는 철구가 신용불량자에 건강보험에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에라도 들어야 병원비, 수술비에 0 하나가 줄어들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비용을 마련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

 

선우의 엄마 미자가 알려주길 철구가 기초수급자 판정을 받으면 막대한 병원비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려면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은데 하필 철구가 주소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어디라도 전입신고를 하면 되는데 철구에게 빚이 많다는 이유로 집안 어른들은 손사래를 치는데… 와중에 선우는 전임 교원 합격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우정은 바리스타 시험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정작 둘 사이는 삐그덕 댄다.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들이닥친 현실 재난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국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연 재난, 사회 재난, 그리고 국가 단위 재난이 있다. 그런데 재난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한 시기에도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한때 혹은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한다. 재난이라는 게 그렇듯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언젠가 일어날 게 분명한 재난이 찾아오기도 한다.

 

영화 <결혼, 하겠나?>는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현실 재난을 그리고 있다. 이혼 후 따로 사는 부모가 쓰러져 큰 수술을 받았는데, 돈은 없고 빚만 많은 신용불량자에 건강보험도 없고 주소지도 없다. 그야말로 생돈이 나가게 된 상황에서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도 아닌데 집안 어른들은 철구가 빚이 많다는 이유로 한사코 거절하는 것이다.

 

철구에게도 사연이 있을 테고 집안 어른들이 모질게 대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물론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겠지만. 그러니 모든 걸 선우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도 돈을 벌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를 살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

 

문제는 우정과의 사이, 집안일 신경 쓰느냐고 우정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한다. 연락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얼굴 보기도 힘들다. 선우로선 우정에게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절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결혼은 미루지 말고 원래 계획대로 하자니 우정으로선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결혼, 하겠나?

 

어른이 되어 가는 길목이 힘겹다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의 느낌을 풍기며 시작한다. 뭣도 모르는 커플의 좌충우돌 결혼하기 프로젝트 같다. 그래도 작금의 청년 문제를 함께 다뤘겠거니 하며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세 로코가 아닌 이른바 현실 재난물로 변해갔다. 온몸에 긴장감이 흐르는 경험을 했다. '내가 선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답답하고 절망적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고 부모를 여의어야 어른이 되는 거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100% 동의할 순 없지만 그 모든 경험을 한 이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또 존경한다. 그만큼 하나같이 어렵기 이를 데 없는 일들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가족을 챙기고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함께 삶을 헤쳐 나간다는 게 정녕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다분히 개인적인 일이자 특수한 일이 메인 소재를 이룬다. 하여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부모의 이혼 후 따로 사는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건강보험, 주소지조차 없이 가진 게 빚뿐이라니. 명명백백한 아버지의 잘못, 그런데 첩첩산중이 가로막고 있으니 그를 일절 도와주려 하지 않는 집안 어른들. 선우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도 아버지인데 그들이야말로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아니다.

 

선우와 우정은 어른이 되어 가는 길목 그리고 문턱에서 힘겨워한다. 그들은 결코 큰 걸 바라지 않고 둘만의 소소한 행복을 바랐는데 그마저도 어렵다. 둘의 사랑이 당사자들이 아닌 세상 때문에 깨질 것 같다. 그조차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의 일환이라고 하면 가혹한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결코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곱씹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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