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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독특한 사연으로 얽힌 이모와 조카의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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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위국일기>

 

영화 <위국일기> 포스터. ⓒ영화사 진진

 

15살 소녀 아사, 어느 날 눈앞에서 두 부모를 잃는다. 마트 주차장에서 트럭이 들이받았던 것이다. 한달음에 달려온 아사의 할머니와 이모. 아사는 이모 마키오를 알고 있었는데 살아생전 엄마가 말해 줬단다. 하지만 마키오와 아사의 엄마는 일찍이 절연한 후 서로 없는 사람이었다. 핏줄로 이어졌을 뿐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에서 아사와 아사의 부모를 두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아닌가. 결정적으로 아사를 두고 버려진 대야 같다고 했고 마키오가 홧김에 아사를 데려가기로 한다. 얼떨결에 함께 살게 된 것이다. 35살 마키오는 인기 라이트노벨 작가로 사려 깊다고 하긴 힘드나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아사를 휘두르려 들지 않는다.

한편 아사는 이제 막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시기다. 졸업식과 입학식을 혼자 치르고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와중에 아키오가 부모 아닌 어른을 처음으로 제대로 대하는 대상이라 알아가야 할 게 많다. 또 처음 겪는 거대한 상실 앞에서 ‘멋대로 죽어 버린 부모가 잘못’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만난 듯 쉽지 않은 동거를 이어 가야 하는 마키오와 아사의 앞날은?

 

다양한 인간관계 속 하나로 합쳐진 두 세계

 

영화 <위국일기>는 야마시타 토모코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은 11권의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제목에 눈길이 가는 바 '어긋난 나라의 일기'라는 뜻이고 영제 <Worlds apart>는 '다른 나라'라는 뜻이다. 상당히 독특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만큼 극 중의 마키오와 아사의 관계가 특이하다는 말이겠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영화의 역할 중 하나가 바로 그 다양한 인간관계의 존재를 다루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대인기피라고 할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리는 마키오는 언니와 절연했으나, 언니가 교통사고로 이른 나이에 비명횡사했고 남은 중학생 딸 아사를 데려와 같이 살기로 한다.

안 그래도 낯을 심각하게 가리는 마키오가 삶을 등졌음에도 슬프지 않을 만큼 싫어하는 언니의 딸을, 그것도 언니와 똑 닮은 딸 아사와 함께 산다는 건 엄청난 일 이상이다. 가히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합친 것과 같고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두 나라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된 것과 같다. 서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할 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가족이 되어 가는 수많은 사례를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혼해서 한 지붕 아래에 살 때는 서로 많은 걸 맞춰야 하고 감수해야 한다.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합쳐지는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 <위국일기>는 단순히 독특한 인간관계를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독특한 가족 형태와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그들

 

가족도 본질적으로 인간관계에 기반한다. 다만 더 이상 '독특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겠다. 그들의 관계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정도만 인지하면 될 일이다. 그 어떤 관계라도 나름의 독특하고 특별한 사연이 없을 수 없으니 말이다. 모두 객체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꺼내 보는 것이다.

마키오는 아사에게 직접적으로 널 사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녀의 언니이자 아사의 엄마라는 존재 때문일 텐데, 그럼에도 그녀는 아사에게 선을 넘지 않고 배려하려 한다. 오히려 그녀가 낯을 많이 가리고 소통에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극도로 조심하니 말이다. 아울러 그녀는 아사를 있는 그대로 대하려 하고 서로의 감정을 침범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한 곳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 되면 수시로 선을 넘기 마련이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나 그러는 경우가 매우 많다. '너와 나의' 세계가 아닌 '우리' 세계라고 생각하니 만큼 막 대하고 무례하게 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못하면 '성격 차이'라는 이유로 다시 각자의 세계로 흩어질 수 있다.

마키오와 아사처럼 다른 세계, 어긋난 나라가 만나 한 곳에서 함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만큼 예민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다. 그런데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와중에 나온 이런 영화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https://www.tistory.com/event/write-challenge-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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