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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바넬과 아다마의 순수한 사랑을 가로막는 것들은 너무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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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바넬과 아다마>

 

영화 <바넬과 아다마>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아프리카 세네갈의 작은 마을, 바넬과 아다마는 1년 전 혼인했다. 그들 사이는 돈독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고깝진 않은 것 같다. 아다마는 촌장 집안의 차남인데 아빠와 형이 죽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촌장직을 이어야 하는 처지거니와 바넬은 죽은 형의 후처였다. 아다마는 무슬림으로서 형제의 의무를 다해 바넬과 결혼한 터였다.

그런데 바넬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빨래를 하지 않고 버틴다. 밭일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그런가 하면 아다마는 촌장 혈통으로 반드시 이어야 하는 촌장직을 한사코 거부한다. 그들은, 바넬과 아다마는 매일같이 삽을 들고 마을 밖에 있는 산처럼 쌓인 흙더미를 파내 파묻힌 집을 원상태로 돌려 그곳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게 꿈이다. 하루빨리 그곳으로 이사하고 싶다.

하지만 바넬과 아다마 집안사람 모두가 반대한다. 저주받은 집이라든지, 바넬이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든지, 아다마가 촌장직을 받아들여할 일이 있다든지 말이다. 그런가 하면 폭염이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으니 마을은 위기에 빠진다. 바넬과 아다마는 마을의 전통과 관습을 뒤로하고 마을 밖으로 나가 둘만의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바넬과 아다마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

 

<바넬과 아다마>는 프랑스 자본이 들어간 세네갈 영화로, 한국에서 최초로 극장 개봉에 성공한 세네갈 영화이기도 하다. 세네갈에는 아프리카 최초의 장편 영화를 만든 감독인 우스만 셈벤을 비롯해 아프리카 최고의 감독들이 포진해 있었으나 20세기 후반부터 오랜 부침을 겪었다. 그러던 2019년 마티 디오프의 <애틀랜틱스>가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바넬과 아다마> 또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주목받았으니 세네갈 영화의 앞날이 기대된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상당히 가멸차다. 그저 둘만의 행복한 사랑을 꿈꿨는데 현실의 벽에 무너진다. 그런데 현실의 벽이란 게 몇 겹에 이른다. 마을의 안과 밖을 아우를 정도다.

바넬과 아다마 , 아다마와 바넬은 범상치 않은 관계다. 바넬이 아다마의 형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넬이 말하길 예전부터 아다마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다. 반면 아다마는 무슬림으로서 형제의 의무를 다해 바넬과 결혼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결혼 이후 사랑이 싹텄을 것이다. 그러니 아다마에겐 애초에 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넬과 아다마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인 것처럼 보이나 순수한 사랑과 사랑의 결합체라고 볼 순 없다. 의무가 조금이나마 껴들어 있는 상태로 앞날이 어느 정도 예측된다. 아다마가 촌장직을 거절하고 마을 밖으로 나가 바넬과 둘만의 삶을 꾸려 나가고자 하지만, 그건 그가 아닌 그녀의 바람으로 보인다. 그는 마을의 관습을 뒤로할 수 있었겠지만 마을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할 순 없을 것이었다.

 

무더위와 가뭄의 생존 위기

 

그렇다, 바넬과 아다마의 사랑을 가로막는 건 처음에는 마을의 관습이었으나 이후에는 마을의 위기였다. 아다마가 촌장직을 이어야 하고 바넬은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관습은 처낼 만한 수준이다. 처내야만 하는 악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하루빨리 마을 밖 모래에 묻힌 집을 파내서 둘만 알콩달콩 살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위기가 닥쳐오니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심각한 무더위와 가뭄, 유용한 자산인 소가 매일같이 죽어 나가니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 바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다마와의 사랑을 꿈꾸지만 아다마는 마을의 위기를 저버릴 수 없다. 또 마을의 위기는 곧 자신의 위기로 직결되는 게 아니겠는가. 바넬은 아다마를 들들 볶기 시작하고 아다마는 바넬은 등한시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영화는 더 이상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무더위와 가뭄으로 모두가 생존 위기에 빠지니만큼 운 좋게 아프리카 초원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고마워할 정도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위기를 대처하는 극단적 양상, 또는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이보다 더 사랑이라는 소재가 도드라지는 영화도 찾기 힘들다.

다분히 바넬의 입장과 시선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아다마와 사랑을 이어가는 게 이토록 힘든가. 그녀의 모든 건 그와의 사랑에 철저히 맞춰져 있는데도 사랑을 이어가는 게 이토록 힘든가. 다 필요 없고 모든 걸 뒤로한 채 사랑 하나 열심히 제대로 해 보려 하는데 말이다. 그녀의 순수하지만 몰지각한 면도 있는 사랑에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라면서도 불가능할 게 불 보듯 뻔하니 복합적인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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