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와일드 로봇>
유니버설 다이내믹스사가 내놓은, 인간의 삶을 위해 탄생한 로봇 로줌의 유닛 7134는 야생에 불시착한다. 단번에 야생동물들의 말을 습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곰에게 쫓겨 산비탈을 구르다가 어느 기러기 둥지를 박살 낸다. 엄마 기러기가 죽고 알이 다 깨졌는데 단 하나의 알만 깨지지 않았고 7134가 가져간다. 그때 여우가 습격했는데 겨우 지켜냈다.
알에서 깨어난 브라이트빌은 7134는 로즈라고 부르며 엄마로 여겼고 그들에게 자신을 기러기 전문가라고 속여 접근한 여우 핑크가 함께하는 가운데 로줌 유닛 7134, 즉 로즈는 브라이트빌이 기러기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려 한다. 브라이트빌은 철새 기러기였기 때문에 결국 동족과 함께 먼 이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작았고 동족에게서 제대로 된 생존 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한편 로즈는 처음 불시착했을 때 모두가 무서워하며 피했을 때와 다르게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브라이트힐은 이런저런 동물들로부터 생존 훈련, 즉 사냥하고 물 위를 수영하고 하늘을 나는 것까지 배운다. 결국 그는 동족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나는데… 과연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한편 남은 로즈는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과 야생에 남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본래 있어야 할 곳, 새로운 가족의 탄생
20세기말에 첫 작품을 내놓은 후 어느덧 25년이 넘게 흐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한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뿜어낸 시기도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선 이전만큼의 파괴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슈렉> <쿵푸팬더> <마다가스카> <드래곤 길들이기> 등의 시리즈가 자리 잡아 암흑기를 견딜 수 있었다. 2020년대 들어선 한 해에 두 편씩 내놓고 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들쑥날쑥 이어지고 있다.
와중에 <드래곤 길들이기> <크루즈 패밀리>를 공동연출한 크리스 샌더스가 단독 연출한 <와일드 로봇>이 절대적인 호평을 받으며 흥행 면에서도 순항 중이다. 야생에 불시착한 최첨단 로봇과 여전히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야생의 만남이 어떻게 그려지고 어떤 시너지로 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와 감동 이상의 무엇이 있을까.
로즈와 브라이트힐은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자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나씩 해나간다. 그곳은 그들이 태어난 곳일 텐데, 로즈는 공장에서 태어났고 브라이트힐은 기러기 일족으로 태어났다. 그들은 본래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덧 서로가 서로를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영화는 가족의 정의를 다시 내릴뿐더러 본래 있어야 할 곳의 정의조차 다시 내린다.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닌 내가 나일 수 있게, 내가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한 곳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야생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지만 잔혹하고 무자비한 이곳이야말로 온갖 종류의 삶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성과 감정, 대립과 반목 그리고 조화
한편 로봇, 즉 로즈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당연하게도 프로그래밍된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야생은 본능으로만 움직인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프로그래밍된다고 할까. 그러니 이성과 감정은 시시때때로 부딪히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괄시하기도 하고 멀리하기도 한다. 그들 모두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트리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대한 위기 앞에서도 이성은 제대로 작동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해야 할 일을 해낸다. 반면 감정은 위기 앞에서 크게 흔들린다. 그래도 한데 모여 함께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데 탁월하다. 그러니 야생에서 로봇이 어울려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서로 가질 수 없는 것을 언젠가 갖게 되지 않을까. 그 '조화'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 영화의 핵심이 바로 조화에 있다. 영화를 이루는 거의 모든 면들이 서로 '대립'하는 와중에, 심지어 주배경인 야생조차도 대립하고 반목하는 게 주된 동력으로 작용하는 와중에 조금씩 이뤄 나가더니 종국엔 대통합으로 발현되는 조화의 모습이 이채롭다. 로봇으로 대변되는 인간과 야생의 대립과 반목 또는 인간 세상 내의 대립과 반목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있을 테다.
로즈가 스스로를 '와일드 로봇'이라며 천명하며 야생에 남아 살아간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공장이 아닌 야생을 집이자 고향이자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확신했다고 해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삶은 계속 이어질 텐데 삶이란 불확실성이 담보된 형태가 아니던가. 아무렴 야생은 어떨까. 그래서 로즈와 야생 친구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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