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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내놓은 손자가 시한부 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피게 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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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영화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포스터. ⓒ디스테이션

 

'엠'은 어릴 적 반에서 1등도 할 만큼 똑똑했지만 청년이 된 지금은 학교를 때려치우고 집에서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엄마한테 잘될 거라 큰소리를 쳤지만 시청자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에겐 깐깐한 외할머니가 있는데 청명절에 다쳐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가 대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의 말로는 1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한편 엠은 친할아버지를 지극정성 보살피는 손녀 '무이'의 연락을 받고 찾아갔는데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다. 친할아버지의 유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을 자식들이 아닌 손녀 무이가 받는다. 무이는 고소득을 얻는 일이라고 자평하고 엠은 그 방법을 외할머니한테 써먹으려 한다. 앞으로 1년 동안 외할머니를 찾아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척'을 하려는 것이다.

외할머니는 눈치가 빠르다. 평소엔 가족 모임조차 오지 않는 엠이 갑자기 찾아오는 게 이상하니 말이다. 엠은 어릴 적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손에 컸다는 점을 들어 설득한다. 하지만 매사 깐깐한 외할머니의 등쌀이 만만치 않다. 엠이 대충 돕는 척하며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이다. 이 불편하고도 부도덕적인 것 같은 동거는 어떤 결말을 향할 것인가.

 

억지 울음바다로 빠지지 않는 신파

 

태국 영화 하면 공포, 스릴러, 판타지, 퀴어 등의 장르가 주를 이룬다. 보통의 드라마를 본 기억이 딱히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들이 <옹박> <셔터> <배드 지니어스> 등이니 말이다. 와중에 <배드 지니어스>를 드라마화한 <배드 지니어스 더 시리즈>를 연출한 바 있는 팟 부니티팻 감독의 영화 연출 데뷔작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이 드라마 장르의 태국 영화로 우리를 찾아왔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입증한 이 작품은 태국에서 개봉한 당해 1위의 흥행을 달성했고 전 세계 7개국에서 태국 영화 역대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작품성과 흥행을 다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영화는 제목 그대로 진행된다. 손자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펴 큰 유산을 받을 속셈이니 말이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다가 오래지 않아 돌아가신다고 하니 유산을 노리고 갑자가 찾아가 모신다니, 가히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보다 더 나쁜 마음을 먹고 접근하는 이야기라면 범죄 스릴러로 탈바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덕분에 이 영화가 신파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손자는 조금씩 성장해 갈 뿐 억지 울음바다로 빠지지 않는다.

나아가 '할머니'의 자식들도 한몫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멀리 산다는 이유로 평소 엄마를 돌보지 않았던 장남과 경제적 자립조차 하지 못해 아직도 엄마에게 매달리는 막내가 그야말로 '할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괴롭히니 말이다. 신파로 빠질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는 보다 현실적으로 또 진정성 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

 

손자의 성장, 가족의 본질

 

영화를 이루는 이들은 단연 할머니와 손자다. 손자의 불온한 계획, 손자의 계획을 눈치챈 할머니, 계획을 들켰지만 계속 할머니를 찾아가는 손자, 그런 손자가 가소롭지만 돌봄을 받는 게 내심 좋은 할머니. 사실 이 영화는 손자의 계획이 들켜서 틀어지고 난 후 진짜로 시작된다. 손자는 진정 성장하고 가족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가 드러내놓고 전달하려 하진 않지만 무이가 할아버지를 돌보고 엠이 할머니를 돌보는 모습을 통해 노인 돌봄 이슈를 논한다. 극 중에서 할머니가 말하길 자식들이 절대 주지 않는 게 '시간'이라고 하는데 누군가를 돌보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바로 시간이다. 그런데 시간을 내는 건 돈을 내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영위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나아가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조차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살아 있는 시간이 치욕으로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극 중에서 무이는 고백하길 할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했다고 하고 엠은 작은 삼촌이 요양원에 보낸 할머니를 집으로 데려온다. 옮고 그름은 없을 것이다. 선택이 있을 뿐.

전형적인 느낌의 휴먼 드라마 영화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은 우리나라의 정서에도 100% 맞을 것 같다. 할머니가 극구 좋은 묫자리를 원하는 게 죽어서나마 자식들이 시간을 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니. 그리고 할머니는 왜 그렇게 겉으론 툭툭 내뱉으면서 속 깊이에는 그리 정이 많은지. 은은한 재미와 무시 못할 파격도 상존하니 후회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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