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프린트>
이른바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로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세계육상선수권 혹은 F1 그랑프리를 뽑는다. 각각 다르지만 대회 내내 전 세계에서 적게는 수억 명, 많게는 수십억 명이 경기 중계를 시청한다. 시청자수의 측면에서 유럽축구선수권이나 UEFA 챔피언스리그가 더 인기가 많을 수 있겠으나 유럽 한정 대회라는 면에서 위의 대회들과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세계육상선수권은 F1 그랑프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선 유독 인기가 없는 편인데 아마도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아예 진출조차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와중에 세계육상선수권 그리고 올림픽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다이아몬드 리그'가 있다. 세계육상경기연맹에서 주최하는 전 세계 최상위 육상 대회로, 자국 대회를 제패하다시피 한 성적 좋은 선수들만 초청해 매년마다 몇 개월씩 전 세계 도시를 돌며 경기를 치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프린트>가 2024 파리 올림픽에 맞춰 전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들, 즉 100m와 200m 선수들을 집중 조명했다. 2023 다이아몬드 리그, 국가대표결정전, 2023 부다페스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중심으로 다뤘다. 올림픽을 위한 담금질의 과정이자 당해연도 전 세계 최고를 다투는 과정이랄까. 아무래도 전 세계 스프린트계를 양분하는 미국과 자메이카 선수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세계 육상계 수위를 두고 펼치는 치열한 접전
미국의 간판을 넘어 세계 육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노아 라일스는 200m에서 전설 마이클 존슨의 미국 기록을 깨며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는 어릴 때 천식을 앓았기에 육상 선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그를 어머니가 홀로 잘 키워냈다. 2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주종목 200m를 석권하고 100m까지 넘보고 있는 중이다. 그는 우승은 물론 신기록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세상 누구도 그의 앞을 막아설 수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육상 전설이 갔던 길을 그도 가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100m 챔피언을 넘어서야 한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깜짝 우승하며 이탈리아가 낳은 기적의 사나이로 불린 마르셀 제이컵스 말이다. 그동안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던 마르셀은 재기를 노린다. 올림픽 우승이 그저 요행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현 상황을 보니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고 외부의 압박을 견디는 게 힘든 것 같다. 특히 노아 라일스의 존재가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한편 여성부에는 미국의 셔캐리 리차드슨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그녀는 남들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1등을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아무 데서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가만히 있지 않는다. 노아 라일스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다이아몬드 리그, 세계선수권, 올림픽까지 모두 수위권을 노려볼 만하다. 문제는 스프린트 종목에서 전통적으로 미국과 라이벌이었던 자메이카 선수들이다. 최근 들어 여성부에선 미국이 자메이카를 거의 이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자메이카에는 3명의 대표 여성 선수가 있다. 살아 있는 전설 셸리앤 프레이저프라이스, 2회 연속 올림픽 2관왕 위대한 일레인 톰프슨헤라, 떠오르는 셰리카 잭슨까지. 그들 모두 같은 클럽에서 훈련하며 그 자리에 올랐는데 셸리엔이 나갔고 일레인도 나가면서 셰리카만 남았다. 자못 위험한 선택을 한 두 전설, 그리고 클럽의 새로운 간판이자 자메이카의 자랑으로 우뚝 서야 할 숙제가 있는 세리카 잭슨이다. 그들은 매섭게 치고 올라오는 미국의 견제를 훌륭하게 응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끊임없는 '자기 증명'만이 답이다
그런가 하면 남자 100m에선 노아, 마르셀 말고도 영국 최고 기록 보유자 자넬 휴스가 호시탐탐 우승을 노리고 있다. 비록 우승권에는 한 발짝 정도 모자라지만 계속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프레드 컬리는 2022 세계선수권 우승자다.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그는 노아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매우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즐긴다. 그래서 온갖 심리전이 오가는 대기실에서 유독 잠잠하다. 조용한 실력자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스포츠 만화의 한 장면 같다.
한편 여자 200m에선 미국의 하버드대학 출신 가브리엘 토머스가 미국 No.1을 넘어 세계 최고의 자리를 노린다. 그녀는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은근한 실력자다. 안티를 몰고 다니는 요란스러운 셔캐리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인데, 굳이 말하자면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할까. 과연 자메이카의 굳건한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작품 <스프린트>는 제목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만큼 굉장히 직설적이고 빠르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트랙 안팎 이야기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다룬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업을 이룰 거라 예상되는 이들, 이전 올림픽에서 이미 대업을 수차례 이룬 이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 같다. 주지했듯 미국과 자메이카 선수들이 중심을 이룰 것이고 특이점이 있는 영국, 이탈리아 선수들이 뒤를 받치는 모양새다. 시즌 2가 제작된다면 파리 올림픽 때 이야기를 다루며 새로운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현역 아닌 전설의 인터뷰도 볼 만하다. 특별한 통찰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그들 자체가 특별하니 말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200m, 400m 선수 마이클 존슨, 2000~2010년대를 대표하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100m, 2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 2008~2016 올림픽까지 4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앨리슨 펠릭스 등이 출연해 작품을 빛냈다. 이들이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끊임없는 '자기 증명'이다. 그것만이 '발전'을 가져다줄 것이다.
2024 파리 올림픽이 끝나며 스프린트 종목의 우열도 모두 가려졌다. 대체로 봤을 때 이변에 가까웠던 것 같다. 신흥 세력(?)의 부상, 미국의 회복, 자메이카의 몰락 정도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그러니 파리 올림픽을 다룰 것이 분명한 <스프린트> 시즌 2가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어떤 선수들이, 어떤 기록들이 트랙 위를 화려하게 수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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