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도쿄 사기꾼들>
2010년대 중반, 일본 도쿄가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후 토지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하여 부동산 사기 사건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사기 전문 집단 '지면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지면사란 땅을 팔고 싶어 하는 땅 주인 행세를 해서 위조문서로 큰돈을 가로채는 부동산 사기 집단이다. 리더, 협상가, 정보원, 법률 담당, 위조사, 수배사 등 여러 명이 수행하며 치밀함과 고도의 범죄 수법이 요구된다.
정보원이 조사한 10억 엔 상당의 낡은 저택을 꼭 짚어 작업에 들어간다. 수배사가 집주인 행세를 해 줄 배우를 섭외해 철저하게 연습시키고 위조사가 온갖 위조문서를 만든다. 협상가와 법률 담당이 배우와 함께 저택을 구입하려는 대상과 만난다. 그리고 리더가 모든 면을 조율하고 뒷수습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위기가 있었지만 비교적 간단하게 10억 엔짜리 작업에 성공한다. 그들의 사기로 수많은 이의 삶이 흔들린다. 그런데 멈추지 않고 리더의 제안으로 더 큰 건을 노린다. 이번에는 100억 엔에 이르는 도쿄 한복판의 사찰 일대다. 물론 앞서 낡은 저택이나 이 사찰 일대의 주인은 땅을 팔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만 지면사가 사기를 칠 수 있는 조금의 틈이 있었을 뿐이다. 과연 그들은 초유의 100억 엔 부동산 사기를 성공할 수 있을까?
'부동산 사기'에 관하여
일본에서 부동산 사기는 사회가 혼탁하고 관공서가 혼란에 빠졌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발생했다. 시간이 흘러 버블 경제 시대에 토지 가격이 올라 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이후 부동산 거래 서류가 디지털화되면서 신원 도용이 힘들어져 잠잠해졌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도쿄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후 토지 가격이 오르며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관리가 소홀한 토지와 소유주가 살지 않는 부동산 등 주의를 끌지 않는 땅을 표적으로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쿄 사기꾼들>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일본의 '지면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지면사(라고 쓰고 '부동산 사기꾼'이라고 읽는다)'라는 생경한 단어가 주는 참신함이 있다. 왠지 흥미진진할 것 같다. 거기에 2017년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63억 엔 규모의 부동산 사기 사건을 기반으로 했기에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괜찮은 작품이겠다.
부동산 사기꾼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전세사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수백수천 채의 깡통주택을 보유한 집주인들에게 수많은 세입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대한민국 부동산의 문제가 폭로된 사건이다. 작품이 다루고 있는 지면사의 부동산 사기가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거대 업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전세사기는 그야말로 전세보증금이 전재산인 이들을 대상으로 저질렀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 어쨌든 부동산 사기는 수많은 이의 삶을 뒤흔든다.
치밀하든 대범하든 나름의 이유가 있든 악랄하든 '사기'는 사람의 본성, 심리가 주요 타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동산 사기'는 부동산이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 뭇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린다. 지면사, 즉 부동산 사기꾼은 기가 막힌, 그러니까 미래 가치가 충만한 부동산을 선정해 작업에 들어간다. 작품은 아무래도 사기 과정이 중심이라 이른바 정보원은 조연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부동산 선정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나머지는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다.
부동산 '사기 과정'에 관하여
그렇다, 이 작품은 아무래도 사기꾼들이 치밀하게 직조한 사기 과정을 얼마나 쫄깃하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그 부분이 흥행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하여 사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기보다 가장 '긴장되는' 부분을 맡는 협상가 역에 현존 일본 최고의 배우 아야노 고를 캐스팅했다. 그가 가장 잘하고 또 그와 가장 잘 맞는 역할이다.
리더, 협상가, 법률 담당, 수배사, 정보원, 위조사로 이뤄진 지면사 집단의 부동산 사기 과정을 들여다보면 웬만한 사람은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서 철저히 훈련하고 준비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노련하게 대처한다. 사기를 마친 후 뒤처리도 빠르고 깔끔하다. 개인은 물론 법무팀을 갖춘 대형 회사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사기꾼들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에겐 남모를 처절한 사연이 있기에 더욱더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제발 들키지 말고 잘 끝내라!' 하는 미친 심경(?)이 발동되기까지 한다. 그만큼 사기 과정을 심장 쫄깃하게 잘 보여주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에서도 작품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기꾼, 아니 살인자들이다. 사기는, 그중에서도 부동산 사기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도쿄 사기꾼들>은 결코 <종이의 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각각의 특출 난 재능을 한데 모아 치밀하게 범죄를 도모한다는 면에선 동일하지만, <종이의 집>의 경우 캐릭터 하나하나에 생기를 불어넣으면서도 범죄를 빠질 수밖에 없는 억지 사연을 부여하지 않았다. 반면 <도쿄 사기꾼들>의 경우 그런 면에서 부족한 한편 과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냈다고 본다.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의 대표가 죽음까지 부르는 전세사기를 계기로 작품들을 뒤지고 뒤져 찾아냈다고 하니. 뭇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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