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다우렌의 결혼>
승주는 다큐멘터리 입봉을 꿈꾸지만 아직은 조연출에 머물러 있다. 그는 나름 입봉작을 정해 두기도 했는데 <갈치의 꿈>이다. 갈치의 생애를 쫒으며 갈치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작업. 하지만 그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은 힘겹기만 할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사 대표가 승주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세계의 결혼식>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장면을 위해 카자흐스탄에 가서 고려인 결혼식을 찍어 오라는 특명. 잘 찍어오면 승주에게 입봉의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한다.
승주는 촬영감독 영태와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간다. 그리고 고려인 감독 유라를 만나는데, 유라가 카자흐스탄이 자기 구역이라며 뭐든 할 수 있다고 설레발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것도 모자라 승주와 영태는 약속된 고려인 결혼식에도 늦고 만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결혼식을 찍어오라는 성화뿐이다. 그들은 유라의 소개로 그의 삼촌 게오르기를 만난다. 게오르기의 소개로 고려인 결혼식을 촬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웃 마을들을 다 돌아도 결혼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결국 게오르기와 영태는 가짜 결혼식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승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하여 반대했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나아가 승주가 '다우렌'이라는 이름의 고려인 행세를 하고 어머니 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아디나와 가짜 커플이 되어 결혼식을 올리려 하는데… 승주는 고려인 결혼식을 찍어 귀국해 입봉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카자흐스탄 대자연의 풍광으로 표현되는 아이러니
영화 <다우렌의 결혼>은 <체포왕>(2011)으로 비교적 순탄하게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가 모종의 일로 커리어가 꼬여 이후 오랫동안 장편 영화를 만들지 못한 임찬익 감독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아카데미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임과 더불어 임찬익 감독이 현장 편집을 담당했던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2005) 때의 경험을 살렸다고 한다.
한편 캐스팅이 돋보이는데, MBC의 간판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절친 케미를 선보였던 이주승과 구성환 콤비를 그대로 영화에 이식했다. 하여 영화에서도 그들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임찬익 감독이 실제로 카자흐스탄 촬영에 도움을 받은 고려인 감독 박루슬란이 영화에서도 승주와 영태의 카자흐스탄 촬영에 도움을 주는 고려인 감독 유라로 분했다. 임찬익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상당 부분 투영시킨 것이다.
아무래도 카자흐스탄 초원 현지 촬영이 주를 이루다 보니 풍광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관객 입장에서 평생 가보기 힘든 곳을 영상으로나마 접하는 묘미가 충분하다. 그런가 하면 영화에선 대자연의 풍광이 아이러니로 표현된다. 주변 사람들은 아디나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길 바라는데 정작 이보다 더 '넓은' 곳이 어디 있을까 싶은 것이다. 정작 '넓은' 곳에서 찌든 사람들은 이 '넓은' 곳으로 오고 싶어 할 텐데 말이다. '넓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승주의 경우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아디나에게 충고하고 좋은 얘기를 해 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야말로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하고 싶은 게 있고 의지가 충만하고 능력도 출중한데 단지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유무형의 막을 스스로 걷어내고 나아가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승주는 카자흐스탄 촬영 경험을 바탕으로 그때를 찾았다. 물론 그 시작은 대표의 얄팍한 꼬드김이었다. 청춘의 꿈을 빌미로, 간절함과 열정을 발판으로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한 것이었다. 승주도 알았을 테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와 '사실'의 연관성 그리고 성장
영화는 해외 로케 다큐멘터리 촬영기가 메인 스토리 라인이지만 정작 치열한 촬영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실제' 고려인 결혼식을 찍어야 하는데 정작 결혼식에 늦어버렸으니 결혼식을 찾아다니는 뒷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결혼하는 이가 없으니 '가짜'로라도 결혼식 장면을 찍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라는데 가짜로 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 지점이 이 영화의 킥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제작자의 의도를 사실의 기록에 입각해 전하는 영상물이다. 특정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지만 사실만 다뤄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서 '사실'의 개념을 어떻게 잡을지가 중요하다. 사실이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승주와 아디나가 '가짜' 신랑 신부가 되어 손님들은 '진짜'로 알고 있는 결혼식은 '사실'일까? 진실은 아니더라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 사실이라 하겠다. 나아가 결혼식은 손님에게 소식을 전하고 손님의 축하를 받는 게 목적인 만큼 손님들이 진짜로 알고 행복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건넨 고려인 결혼식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일환으로 잘 쓰일 것이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에겐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테니 말이다. 다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승주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 테다. 어쩔 수 없이 찍긴 했지만, 그 결혼식이 가짜였다는 사실보다 가짜 결혼식을 다큐멘터리의 일환이라고 찍은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 테다. 그때 비로소 한 발 성장한다. 애써 회피하려 했던 자신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막을 걷어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승주의 뒤늦은 성장은 현실적이면서 아쉽다. 극 중에서 승주가 처한 상황을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영화의 서사적 만듦새 측면에서 보면 촬영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더 풍성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럼에도 이 영화는 존재 가치를 충분히 뿜어냈다. 임찬익 감독의 오랜 경험과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바 전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유가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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