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나름의 이유로 생을 이어가기 힘든 뱀파이어와 인간이 만났을 때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영화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포스터. ⓒ트리플 픽처스

 

샤샤는 어렸을 적부터 남들과 달랐다. 그래서 뇌 검사도 해 보고 심리 검사도 해 봤다. 달라질 건 없었다. 태생적 기질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휴머니스트 기질이 다분했는데, 뱀파이어로서 피를 마셔야 살아갈 수 있을 텐데도 인간 사냥을 극도로 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68년 동안 인간 한 명 사냥하지 못하고 부모님한테서 독립하지도 못한 채 지내고 있다.

폴은 편모슬하에서 학교에 다니며 볼링장에서 알바도 하고 있다. 그런데 잘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볼링장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태생적 기질이 그럴까, 그는 수시로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삶에서 아무런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샤샤와 폴은 가족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다. 그들은 자살예방모임에서 만난다. 둘은 이전에 한 번 대면한 적이 있는데, 폴이 샤샤에게 제안하길 자기는 죽고 싶고 너는 사람을 사냥해야 하니 자기를 사냥하라는 것이었다. 폴의 제안을 받아들인 샤샤는 폴에게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묻는다. 폴은 자기를 괴롭혔던 이들을 혼내주고 싶다는데… 둘은 진정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뱀파이어도 인간도, 다름의 미학

 

영화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제목만큼이나 창의적이고 또 인간적인 영화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아리안 루이 세즈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영어 아닌 프랑스어로 이뤄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나아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뱀파이어 영화다. 연상되는 영화들이 몇몇 있는데 그 영화들은 '뱀파이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뱀파이어나 인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샤샤'와 '폴'이라는 개인이 중요하다. 비슷해 보이지만 차원을 달리하는 차이가 있다.

주지했듯 샤샤는 다른 뱀파이어들과 다르다. 죽지 못해 인간의 피를 마실 뿐 스스로는 인간을 사냥할 수 없는, 아니 사냥하기 싫어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간을 사냥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 이 목숨이 달린 '다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녀를 존중해줘야 할까, 비단 누구나 겪을 만한 통과의례의 일환일 뿐일까.

폴의 경우 우울증을 겪고 있다. 살아갈 이유를 찾기 힘들다.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을지 생각하는 게 일상일 정도다. 다만 용기가 부족하다. 그런 그의 앞에 뱀파이어가 나타났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10대의 우울증이 낯설고 또 안쓰럽다. 이 역시 목숨이 달린 '다름'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 역시 그의 상태를 존중해줘야 할까, 누구나 겪을 만한 통과의례의 일환일까.

 

발칙하고 영리하고 아름답고 재밌다

 

영화는 발칙하다. 뱀파이어 샤샤나 인간 폴이나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로맨틱 코미디와 블랙 코미디가 섞인 장르로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풀어내는 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바, 다루기 어려운 주제와 소재를 정면돌파하며 파훼하고 있는 것이리라. 

영화는 영리하다. 비록 황폐한 내면을 가진 샤샤, 폴이지만 10대(샤샤는 68세지만 10대 외모이기도 하고 발달 사항도 10대다)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귀여움, 독특함 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영화는 외형상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샤샤와 폴이 죽음을 향해 내딛고 있는 한 발 한 발이 그 자체로 삶이 아닌가.

영화는 아름답다. 10대 소년이 뱀파이어의 '첫 사랑'도 아닌 '첫 사냥' 대상으로 낙점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아름답기는커녕 끔찍하다는 편이 알맞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렛 미 인>과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뱀파이어 영화다. 배경이나 색감의 힘이 아닌 스토리와 캐릭터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영화는 재밌다. 뱀파이어가 나오는 이상 장르 영화로서 관객이 최소한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 특히 요즘엔 일반적이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 더 커졌다. 거기서 오는 재미랄까. 그런데 이 영화는 '하이브리드' 혹은 '혼종'으로서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이를테면 제목의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를 샤샤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했다든가.

의외로 복잡다단하고 속이 깊은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그저 귀여운 영화로 지나가겠지만 누군가에겐 큰 울림을 주는 영화로 남을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