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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N년 차 부부의 바이블로 삼아 두고두고 볼 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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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내 아내가 숨기고 있는 것>

 

영화 <내 아내가 숨기고 있는 것> 포스터. ⓒ디오시네마

 

유지로는 대형 마트 부점장이다. 일상에서의 잡학다식, 일에서의 주인의식, 그리고 친절함으로 중무장해 직장 생활을 순탄하게 이어가고 있다. 후배가 손님맞이에 힘들어하면 도와주고, 내부 결재도 무리 없이 처리하며, 심지어 후배가 결혼할 때 축사를 점장님 아닌 부점장 유지로에게 부탁할 정도다. 한마디로 실력과 신망이 두터운 것이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알려주길 '남편 데스노트'라는 험담 커뮤니티가 있는데 '찰리'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는 이의 글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다. 글을 들여다보니 다름 아닌 유지로의 이야기다. 즉 찰리는 유지로의 아내 히요리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찰리는 히요리와 유지로 부부가 키우는 올빼미의 이름. 유지로에겐 그야말로 천천병력이다.

그런 와중에 회사의 여자 후배가 유지로에게 접근한다.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모습을 히요리가 목격하고 남편 데스노트에 올린다. 남편 데스노트를 눈팅하던 유지로가 폭발하고 만다. 한편 출판사에서 히요리에게 출간을 제안한다. 일본 사회의 나쁜 남편들에게 경종을 울리자는 취지였다. 폭발한 유지로와 고민하는 히요리, 과연 이 부부의 앞날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서로 다른 곳을 보는 부부의 속내

 

일본 현지 개봉 2년 만에 한국에 상륙한 영화 <내 아내가 숨기고 있는 것>은 부부가 함께 보면 큰일 날 것 같지만 꼭 함께 봐야 하는 작품이다.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성찰도 중요하지만 '부부'로서 따로 또 같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자연스레 부부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당연할 테지만 잘못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다.

결혼은 부부가 부부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줄 뿐이다. 진정한 부부가 되는 건 웬만한 노력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 결혼이라는 형식도 세월이라는 방식도 부부가 부부일 수 있게 하는 데 절대적인 요인이 될 수 없다. 서로 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결혼 생활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유지로는 스스로를 두고 결혼 생활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한테 자상하거니와 회사에서 나름 잘 나가니 돈도 쏠쏠하게 벌어오니까. 히요리가 유지로에게 항상 상냥하다는(상냥해 보이는) 것도 한몫한다. 유지로가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랄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다분히 유지로의 시선일 뿐 히요리의 시선은 아니다. 정작 히요리의 시선으로 보면 유지로는 위선자다.

유지로와 히요리 부부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왜 겉과 속이 다른 부부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 걸까. 무엇이 그들의 속을 헤집어 놓은 걸까. 그들은 결혼 7년 차지만 아이가 없다. 알고 보니 일전에 유산한 적이 있었는데, 히요리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산의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 결정적 순간일까?

 

단순히 한 부부의 문제가 아니다, 맞다?

 

유산의 경험은 그 자체로 개인에게 부부에게 가족에게 크나큰 사건이자 상처로 남는다. 누구도 쉽게 얘기를 꺼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슬픔을 나눠도 모자랄 판에 홀로 오롯이 안고 간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감당하기 힘들 테다, 아니 감당할 수 없을 테다. 히요리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고 해도 그녀의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영화는 종국엔 일본 영화 특유의 극적인 상황에서 직접적인 대사로 교훈을 주는 방식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일본 영화 같지 않았다. 연출 형식도 그렇지만, 여성 인권이 낮다고 여겨지는 일본에서 이런 류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 관계뿐 아니라 이혼, 여성 동성 커플 등의 소재가 주제를 피력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단순히 한 부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지점에서, 모든 게 잘 마무리된 듯한 중반부에서 전복된 메시지를 던진다. 시스템의 문제로 손쉽게 치환시켜 버리지 말고 오롯이 스스로를, 즉 객체로서의 부부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다 객체이자 주체이듯, 부부도 마찬가지로 다른 데로 눈을 돌릴 게 아니라 아내와 남편이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 맞는 말이다. 피상적인 말이 아닌 부부는 각자 스스로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물어봐야 한다. 또한 서로 간에도 마찬가지로 물어봐야 한다. 부부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 하거나 세상 탓, 시스템 탓을 할 게 아니라 부부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해야 한다. 많은 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다.

여러모로 뜻깊은 영화로 남을 것 같다. 머지않아 결혼 10년 차에 접어들 우리 부부가 두고두고 보면서 바이블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런 영화가 극장 아닌 안방극장으로 직행한 이유가 뭘까 궁금할 정도다. 부부가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고 천천히 들여다볼 영화로서 포지셔닝하길 바란 걸까. 그런 의미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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