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악마와의 토크쇼>
미국 방송사 UBC의 간판 심야 토크쇼 '올빼미쇼'의 진행자 잭 델로이는 위기에 빠졌다. 타 방송사의 1위 토크쇼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고꾸라져 좀처럼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도 폐암으로 잃고 말았다. 한 달여를 쉬고 돌아온 잭은 1977년 핼로윈 이브 날을 맞이해 공포 특집으로 재기를 꿈꾼다.
그런데 1부에서부터 일이 터진다. 영매 크리스투를 초대했지만 사실 그는 사기꾼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알 수 없는 기운을 받은 듯 소리를 지르자 조명이 깨진다. 급히 광고를 송출할 수밖에 없었다. 2부에는 크리스투와 마술사 출신의 초자연 현상 회의론자 카마이클이 출연한다. 그는 크리스투의 사기를 짚어내고 집단 최면술로 좌중을 압도한다.
3부에는 <악마와의 대화> 저자인 준 박사와 악마 숭배 사이비 종교의 집단자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릴리가 초대되었다. 준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릴리에게 악마가 빙의되었고 준 박사가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잭이 릴리 안의 악마를 불러내 보자고 부추긴다. 과연 악마를 불러낼까? 악마는 실제일까? 방송은 어떻게 될 것인가?
1970년대 미국 토크쇼의 안과 밖
1970년대 호주의 인기 토크쇼 '돈 레인 쇼'에 마술사 유리겔라와 영성사 도리스 스톡스가 초대되었는데 중간에 도리스가 뛰쳐나갔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는 이 사건 아닌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아울러 초자연 현상 회의론자 카마이클은 캐나다 출신의 제임스 랜디가 모델이다. 그는 "초능력을 입증하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라고 공언했지만 아무도 입증하지 못했다.
영화는 토크쇼 무대 위와 무대 뒤를 수시로 오간다. 모든 걸 사전에 철저히 맞추는 무대 위는 나무랄 게 없다. 완벽을 지향한다. 시청자는 그저 즐기면 된다. 그런데 무대 뒤는 정반대다. 불과 몇 초, 몇 분 사이 오가는 말들이 무시무시하다.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식이다. 특히 제작 책임자와 토크쇼 진행자는 악마에 덧씌운 것 같은 정도다.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미국은 난장판이었다. 혹은 다양성을 지향했던 걸까, 자유분방했던 걸까. 히피를 위시한 반문화 운동이 한창이었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으며, 반전 운동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사람들은 극도로 자기 자신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한편 오컬트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방송국에선 시청률 경쟁이 극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목숨 걸고 하는 시청률 경쟁
지금도 방송국은 목숨 걸고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시청률에 따라 광고가 들어오고 광고로 제작비를 충당할 것이니,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프로그램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 모두의 커리어와 일상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땠을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수없이 많은 채널에서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사라져 간다.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시청률만큼 또는 그보다 중요한 지표들이 생겨난다.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예전에는 채널도 적었고 프로그램도 적었으니 시청자들이 볼 만한 게 한정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시청률이 모든 것을 좌우했다. 악마와의 거래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진짜든 가짜든 진짜 같은 가짜든 악마를 소환할 수 있다고 하니 쾌재를 부르는 진행자와 제작 책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악마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보다 시청률이 떨어져 프로그램을 내리고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훨씬 두려운가 보다. 그 맛을 제대로 알아 버렸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길을 가 본 사람만이 아는 그것.
오컬트 호러로 풍자하는 미국 사회
이 영화는 악마가 나오는 오컬트 장르로, 1970년대 미국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구성도 독특한데, 수십 년 만에 발견된 미공개 영상을 보여주는 한편 중간중간 쉬는 시간은 흑백으로 처리해 구분을 줬다. 하여 화면 자체가 1970년대 토크쇼를 보는 느낌인 반면 오히려 흑백 화면이 지금 같다.
호러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풍자에 초점을 맞춘 듯해 악마가 나오는 영화들만큼의 엄청난 공포를 선사하진 않지만, 마치 실화처럼 느껴져 자못 충격적이고 당대에 비춰 지금을 돌아보게 한다. 목숨 걸고 구성한 핼러윈 특집 토크쇼 한 편을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방송쟁이' '방송국 놈들'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영화를 보면 틀리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카메라 불이 켜지고 송출이 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카메라 밖의 자아와 카메라 안의 자아가 따로 있는 듯, 연기자가 아니더라도 방송에선 누구나 연기를 해야 하는가 보다 싶다. 그 모습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나 그 자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또 무서운 지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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