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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치열하게 각자의 운명과 전쟁을 치르는 1600년 일본의 인간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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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리뷰] <쇼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쇼군> 포스터.

 
1600년 일본 오사카, 1년 전 통치자 태합이 죽고 남겨진 후계자 나카무라 야에치요는 너무 어리다. 태합이 지정한 '5대로'가 대신 나라를 통치하는 가운데, 태합이 가장 신뢰했던 간토의 영주 요시이 토라나가가 에도를 떠나 오사카에 입성한다. 토라나가가 전략적으로 혼담을 성사하며 세력을 뻗어나가는 모양새에 뿔이 난 4대로가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들은 곧 평의를 열어 토라나가를 죽이려 할 것이었다. 
 
토라나가는 오사카에서 무사히 탈출해 에도로 돌아가려는 계책을 짜는 한편 심복을 아지로로 보낸다. 얼마 전 그곳에 외국선이 난파했고 항해사 한 명을 붙잡았으며 총포도 입수했다는 소식을 입수한 터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토라나가의 수하이지만 5대로의 수장 이시도 카즈나리와 토라나가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인 가시기 야부시게를 다시금 누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영민하고 능력이 좋아 적에게 넘길 수 없을 터였다. 
 
한편 일본에는 몇십 년 전부터 포르투갈 천주교인들이 들어와 무역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5대로 중 두 명이 그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며 몰래 돈을 받고 이권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지로에 난파한 이들은 다름 아닌 포르투갈과 전쟁 중인 영국 개신교인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토라나가는 5대로, 포르투갈 천주교인, 영국 개신교인들이 얽히고설킨 판국을 발판 삼아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보려 하고 있다. 그는 과연 천하 패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 물론 명분은 태합의 밀명에 따라 후계자 야에치요가 관례를 치를 때까지 그를 보살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1600년 일본 배경의 팩션 드라마

 

호주계 미국 작가 제임스 클라벨이 1975년에 출간한 소설 <쇼군>은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1980년에 NBC에서 동명의 5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디즈니+ 오리지널로 다시 한번 리메이트되어 역시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 역사적으로 오랜 혼란과 무자비한 칼부림의 시대를 지나 200년 넘게 지속될 평화의 시대 직전, 겉으로는 잠잠하지만 안에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600년을 배경으로 한다. 친 도쿠가와군과 친 이시다군 간의 천하 주인을 가릴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일 것이다. 그때 도쿠가와는 잉글랜드인 최초로 일본에 온 윌리엄 애덤스를 만난다.

<쇼군>은 바로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지어낸 역사 팩션이다. 역사적 사실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지만 세세한 건 지어냈다. 그러니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든 이들도 그 지점을 잘 아는지 연출, 연기, 각본, 미술, 음악 등 모든 구성요소를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성했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성공 요인이 바로 여기 있다. 사실 일본 전국 시대와 에도 시대를 전후로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작품은 수십 년간 수없이 나왔고 당연히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도 수없이 많았다. <쇼군>이 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은 자명한 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강약 조절에 실패하지 않았다. 10시간 가까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모두 각자의 운명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사무라이 하면 칼싸움, 그리고 대규모 전쟁이 떠오른다. 여느 싸움과 전쟁이 그러하듯 무지막지한 액션과 수뇌부 간의 치열한 수싸움, 심리전이 펼쳐질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 생각보다 액션이 적다. 전투 또는 전쟁은 주지했듯 실제의 '세키가하라 전투'라는 일본 역사를 바꿀 대전투 직전이라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다.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의 일환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전투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시도 쉼 없이 자신에게 부과된 운명과 '전투'를 치르고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에 말미암아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그러나 역사의 토대를 쌓아 올릴 만한 '전쟁'을 치른다. 그 부분을 알아차린다면 이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느껴질 테고 그렇지 않으면 고요하기 짝이 없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가장 고요해 보이는 토라나가야말로 누구보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고 자신과 식솔과 나라와 미래까지 들여다보며 치열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또 알아줄 수도 없으니 고독할 것이다. 하지만 고독조차 그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그리고 그 숙명이야말로 다른 이들이 모두 그렇듯 개인적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명명백백 '미국 드라마'이지만 일본의 역사, 문화, 전통, 생각 등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극 중 잉글랜드인 항해사 안진(존 블랙손)이라는 제삼자의 시선이 크게 작용한 것도 같다. 그를 통해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시즌 2는 없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시즌 2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시즌 1로 토라나가의 수싸움과 심리전을 감상했다면 시즌 2로 천하를 가르는 대전투를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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