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장재현'이라는 장르의 탄생을 목도하라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파묘>

 

영화 <파묘> 포스터. ⓒ쇼박스

 

장재현 감독은 2015년 본인의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를 원작으로 한 첫 장편 연출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로 크게 흥행하며 화제를 뿌렸다. 4년 후 <사바하>로 연착륙하고 다시 5년 후 <파묘>로 크게 뛰어오른다. 그동안 아쉬웠던 비평 면에서 합격점을 받았고 흥행 면에선 한국 공포 영화 역사를 다시 쓸 정도의 폭발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주연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한데 <검은 사제들>의 김윤식과 강동원, <사바하>의 이정재, <파묘>의 최민식과 김고은 등이다. 아무래도 장재현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오컬트 장르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잘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확실한 실력에 극강의 차별화가 얹혔다.

그런가 하면 공포 영화에선 음악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텐데, 장재현 감독의 세 작품 모두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들(뿐만 아니라 드마라들도)을 도맡은 김태성 음악감독이 음악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그는 <사바하>로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야말로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종합대중예술의 일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풍수사와 장의사, 무당과 법사에게 닥친 일

 

무당 화림과 법사 봉길은 밑도 끝도 없는 부자의 의뢰를 받고 미국 LA로 건너간다. 의뢰인은 큰형이 정신병원에서 자살해 자신이 집안의 장손이 되었는데 자신도 괴롭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도 아픈데, 앞서 두 아이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산했다고 한다. 화림은 묫바람, 즉 조상들 중 누군가가 지랄하고 있다고 답한다. 그러곤 한국으로 돌아와 몇 년 만에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 콤비를 찾아간다.

상덕과 영근에게 떨어지는 돈은 5억 원, 의뢰인으로부터 부탁받은 건 아무도 모르게 일을 처리해 달라는 것과 관째로 화장해 달라는 것. 상덕은 의아하고 꺼릭짐하지만 일단 묫자리부터 살피기로 한다. 하지만 무덤은 산꼭대기에 있는 것도 모자라 주위에 여우가 드글거렸다. 상덕은 악지 중의 악지라고 판단한 후 못하겠다고 한다. 화림이 이장과 대살굿을 같이 하면 되지 않겠냐고 의견을 내놓고 상덕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별 탈 없이 굿을 하고 파묘를 했는데 일꾼 하나가 얼떨결에 여자의 얼굴을 한 구렁이를 반토막 낸다. 그러자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고 화장 날이 연기된다. 영근의 지인이 봐주는 병원의 영안실에 관째로 놔뒀는데, 이번엔 그 지인이 관을 열어버리는 사고를 친다. 이후 의뢰인 가족에게 위협이 닥치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 상덕은 구렁이를 죽이고 몸이 이상해진 일꾼의 부탁을 받아 다시 묘로 향한다. 그곳에서 세로로 세워진 관을 발견하고 일행을 불러 같이 파헤친다. 이후 일행에게 무시무시한 일이 닥치는데...

 

한국적 오컬트의 외향과 일제 강점기 이야기

 

영화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일제 강점기와 관련이 깊다. 나아가 단순무식하게 말하면 여전히 뿌리 깊은 일제의 잔재와 목숨 걸고 싸우는 이야기다. 굿으로 원혼을 달래고 경문을 외우고 묘를 좋은 땅으로 이장하고 예를 갖춰 시신을 염하는 이들이 한데 뭉쳐 큰돈을 만져볼 요량으로 하는 일이 한국적 오컬트와 겹쳐 흥미진진한 외향을 띤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 진짜 위험한 이야기, 진짜 알아야 할 이야기는 영화 전반부에 살짝 보여주며 빌드업하고 후반부에 제대로 터뜨린다. 심지어 장르도 바뀌는데 혼령이나 귀신이 아닌 사물에 붙어 형태를 갖춘 정령이 나와 영화 자체가 크게 요동친다. 그것 또한 일본과 관련된 것.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적인 요소보다 일본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묫자리는 곧 풍수지리다. 명당자리에 조상님을 모셔야 대대손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는 건 그곳을 점령하면, 그야말로 한국 땅의 명당 중 명당이자 핵심 중 핵심을 점령하면 한국의 정기가 뚝 끊긴다는 걸 의미할 테다. 비록 비과학적 풍수지리의 시선이지만, 영화는 그런 것들이 지금 우리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을 지탱하고 있다고 믿고 또 일제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봤다.

 

'장재현'이라는 장르의 탄생

 

영화 <파묘>는 굉장히 똑똑하다. 각본, 연출, 제작 측면에서 그렇다. 돈만 밝히는 속물 주인공들이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기까지의 성장, 중간보스 그리고 최종보스의 출현, 미스터리와 오컬트와 공포와 판타지와 크리처물의 절묘한 조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지난 시대의 악독한 잔재 등이 풍성하게 펼쳐져 있다. 아울러 분위기 조성, 적절한 음악, 순간 집중하게 하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다채롭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 놓고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건으로, 인물로, 배경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외향적 이야기와 관련되었지만 웬만한 지식과 용기 없인 알 수 없게 숨겨뒀음에도 기어코 찾게 하는 건 정말 어렵다.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캐릭터가 찾게끔 하는 각본의 힘이 정녕 어마어마하다.

연출과 각본을 도맡은 장재현 감독이 영화 속에 얼마나 많은 요소를 넣었을지 찾아보는 재미도 상당할 것이다. 이미 관객들이 많이 찾은 것 같은데 N차 관람이 필요하다. 기분 나빠지는 오컬트 장르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는 좋다, 기다려진다. '장재현'이라는 장르가 탄생한 걸까. 오래 가면 좋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