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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살아 움직이는 살인 기계 인형과 악질적인 트라우마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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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프레디의 피자가게>

 

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 포스터. ⓒUPI 코리아

 

마이크는 어린 여동생 애비와 함께 둘이 살고 있다. 주로 경비 일을 하는데 하나같이 오래 가지 못한다. 이번에도 어린 남자아이의 아빠를 때려 눕혔다. 그의 눈엔 아빠가 아니라 납치범으로 보였다.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히고 있는 듯하다. 다른 일을 알아 보려 하는데, 폐업한 지 오래된 피자가게의 야간 경비를 추천받았다. 하기 싫지만 악독한 이모가 애비의 양육권을 빼앗아 가려고 벼르기에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래야 돈도 벌고 자기증명을 할 수 있다.

사실 그에겐 남동생 가렛이 있었다. 그런데 가렛이 12살 때 그가 보는 앞에서 납치를 당했고 이후 다신 보지 못했다. 마이크는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면 어김없이 그때의 꿈을 꾸는데, 일말의 실마리라도 얻어 가렛을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 와중에 애비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런데 그가 야간 경비를 서는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가 없었던 낮 시간에 그의 일터를 부수고자 찾아온 이모의 하수인들이 살아 움직이는 기계 인형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애비와 함께 피자가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마이크, 애비가 인형들을 찾아가 움직이게 하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 마이크와 애비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마이크와 애비는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마스코트 호러' 게임 장르의 시조를 영화로

 

21세기의 대세 게임 장르 중 하나로 '마스코트 호러'를 뽑을 수 있다. 호러 게임의 하나로, 귀여운 캐릭터 이면의 인간 과오에 의한 사무친 원한이 아이러니를 증폭시키고 미스터리 탐험 요소가 인기를 증폭시킨다. 2014년에 나온 <Five Nights at Freddy's>를 효시로 뽑는데, 출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출시한 지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정도의 게임을 영상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2015년에 협상에 들어가 2016년에 판권 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감독이 바뀌고 배급사도 바뀌면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제작사 블룸하우스가 중심을 잡아 제작에 들어갔고 2023년 드디어 개봉에 성공했다. 그들의 노력은 곧 흥행 성적으로 나왔는데 역대 게임 원작 영화 오프닝과 역대 블룸하우스 영화 오프닝 1위를 갈아치웠다. 발빠르게 후속편 제작에 들어갔다.

게임 원작과 동명의 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호러 영화임에 분명하나 다분히 어린이, 청소년을 핵심 타깃으로 삼았다. 여타 호러 영화들이 18세 이상 관람가인 것과 달리 이 영화는 12세 이상 관람가다. 하여 어른이 보면 외형상에서 '호러의 참맛'을 느끼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 건 이 영화의 다른 면모도 훌륭한 편이라는 점이다.

 

살아 움직이는 살인 기계 인형의 정체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살아 움직이는 기계 인형들이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다는 엽기적인 설정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 호러 영화다. 자못 황당한 이 설정은 그러나 실상을 알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1980년대 실종된 다섯 아이의 영혼이 인형들에 각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어린아이로 있는데,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 것 같다.

하여 이 영화에는 슬픔의 요소가 강하다. 누군가에 의해 실종되었고 살해까지 당한 뒤 영혼이 갇힌 채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처지의 아이들이라니. 정녕 엽기적인 건 살아 움직이는 기계 인형들에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설정 이전에 아이들의 영혼이 기계 인형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일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슬펐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한편 영화의 분기점이자 승부수가 이쯤일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살인 기계 인형의 정체 말이다. 원작 팬과 일반 관객을 두루두루 만족시킬 수 있을지의 여부. 원작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원작 팬이 어땠을지 알기 힘들지만, 이 영화를 보고 게임에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다. 앞으로 3부작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선순환의 모양새를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에 두 발 딛고 서 있지 못하게 하는 트라우마

 

마이크의 이야기도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어렸을 적 눈앞에서 남동생이 납치당하는 걸 지켜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악질적인 트라우마로 그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쳐 먹고살기조차 힘들게 하는 한편, 꿈에서라도 실마리를 찾고자 매일 밤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가려고 수면제를 먹는다. 하지만 그에겐 어린 여동생 애비가 있다.

애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돈을 벌고자 이곳저곳을 다니지만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한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즉 마이크는 과거 그곳의 눈앞에서 놓쳤던 남동생의 기억 때문에 지금 여기의 눈앞에 있는 여동생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또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마이크가 또다시 눈앞에서 동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기에 차원이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말이다. 현실을 살 수 없게 만드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노력. 이 시리즈는 마이크의 트라우마 치료기와 다름 아닐 테다. 또한 그의 노력과 이모의 노력이 대비되고 증폭되는 모양새가 시리즈가 계속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모는 어떤 식으로 방해할 것인지, 마이크는 어떻게 애비를 지켜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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