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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우리가 랭킹에 집착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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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랭킹


고등학생 때 2학년까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보습 학원을 다녔었다. 당시 학원 선생님들 중에 유별나게 학벌을 따지는 분이 계셨다. 과학 선생님이었는데 그 분이 말씀 하시길, 


"너희들, 사회나가서 인간 대접 받고 싶으면 최소한 서울 10대 대학에는 들어가야 한다. 알았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성균관대, 경희대, 중앙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그리고 카이스트, 포항공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위축이 되던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이른바 '10대 대학 랭킹'은 나를 옮아매곤 했었다. 수시는 자신있었지만 수능은 형편없었기에, 모의고사 보는 날이면 학원을 가기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말에 위축되었던 내 자신도 한심한 말을 지껄여댔던 그 선생님도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물론 살아가는데 그 랭킹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취업을 할 때,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학력이다. 즉, 학교 랭킹. 노동 경제학적으로 볼 때, 피고용자의 학교 랭킹에 따라 피고용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게 '효과'적이지는 않을지라도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그 효율이라는 것을 극도로 맹신했을 때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범람한다. 


군대 랭킹


이 놈의 랭킹은 군대를 가서도 존재했다. 아니 군대를 다녀오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36사단 백호부대 정선대대를 나왔다. 엄연히 강원도에 있기 때문에 비록 최전방보다는 춥지 않았을지 몰라도, 훈련과 작업과 근무 그리고 무엇보다 갈굼에 대해서 더욱 빡샜다는 것을 자부한다. 


하지만 그런 건 무용지물이다. 왼쪽 팔뚝에 '이기자' '백두산' '오뚜기' '칠 곱개의 별' 등이 박혀 있으면, 일단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땅개(일반 소총수)가 아닌 행정병이나 CP병을 했어도 말이다. 이건 실제로 그 부대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본래 높은 랭킹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근현대의 큰 두 개의 전쟁인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답이 나온다. 



직장 랭킹


직장을 잡을 때가 오니, 여기저기에서 오래 전부터 듣던 얘기가 들려온다. "회사 크기나 랭킹보지만 말고 미래를 생각해보고 비전이 있는 곳으로 가라."던가,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되는 것도 좋지만, 네가 원하는 회사를 잡아라."던가 하는 말들 말이다. 즉, 남들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는 좋은 말들이었다. 물론 그 속에는 조금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생각과 애써 현실을 무시한 채 좋은 말만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x신' 소리 듣지는 않는다. 오히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취직한 게 어디냐는 말도 듣는다. 물론 다른 차원(?)의 계층과 어울리지 않아서 자연스레 듣게 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필요할지 모르지만, 과도한 겸손을 떨어댈때도 많다. 그래야 스스로가 편하니까. 


ⓒwww.ere.net


우리가 랭킹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제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가 랭킹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흔히 말하는 IMF이후 몰아닥친 신자유주의에 의한 과도한 경쟁때문 만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으로, 그 이유는 과도한 '눈치'도 상당하다. 남들 눈치를 보는 것 말이다. 이건 내 전문 분야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 눈치를 보며 끝없이 비교하며 살아왔으니. 


예를 들어, 내가 잘 하는 게 있으면 남들과 비교해 우월감을 가지고 반대로 내가 못 하는 게 있으면 역시나 남들과 비교해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는 것이다. 이건 자연스레 랭킹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 확실하다. 


ⓒjpntchosim.tistory.com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적 동물이라 함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인간들은 내가 아닌 타인을 보며 살아간다. 그러며 자신을 잃어버리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되새기며 그 가치를 높이려 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일종의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 희생양은 자연스레 내가 아닌 타인이 된다. 단순히 평등한 너와 내가 아닌 계급계층적인 너와 내가 생겨나는 것이다. 


경쟁에 의한 랭킹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래야 최소한의 진보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가 극에 달할 때 인간은 악마가 되곤 한다. 모두 같이 잘 살기 위해 내가 먼저 위로 올라가 너를 끌어올려 준다는 것이 아닌,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에 의한 짓밟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미 그 랭킹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 같다. 랭킹이 모든 걸 판단하는 시대이다. 악마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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