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피해자/용의자>
미국에선 매년 46만 건 이상의 성폭행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중 30%만 경찰에 신고되고 범죄자 중 1%만 처벌받는다. 피해자에 대한 정의가 너무 부족한 현실이다. 물론 허위신고 문제도 있다. 거짓말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 에이미가 한 짓에서 기인한 '나를 찾아줘 신드롬'처럼 말이다.
적어도 미국에선 경찰이 성폭행 허위신고에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끼린 이런 말을 한다나. "(성폭행 신고자들 중) 절반은 거짓말이야." 하지만 믿을 만한 연구에 따르면 성폭행 허위신고는 2~10% 수준이다.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나, 절반은 거짓말이라느니 하면서 허위신고에 집착해 덮어두고 수사할 건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는 의미심장한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성폭행을 당해 신고했다가 되려 허위신고자로 체포된 사례 또는 사건을 중심으로 경찰의 성폭행 수사 방식 문제점을 들여다본다. 피해자가 한순간에 용의자로 탈바꿈하는 현당을 목격할 텐데, 당사자는 물론 보는 사람마저도 억울하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허위신고죄로 체포된 성폭행 신고자
미국 오클랜드 외곽의 수사 보고 센터에서 일하는 신입 기자 레이첼은 다른 기자들을 보조하다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지역 뉴스를 훑다가 한 여성이 성폭행 허위신고로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접한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7년의 니키 요비노 사건을 전국의 언론사가 앞다퉈 다룬다. 그녀는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니키 사건이 특이하다가 생각한 레이첼, 1600km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사건을 찾아낸다. 성폭행 허위신고로 감옥에 간 엠마 매니언. 레이첼은 관련된 모드누서류를 모아 편집팀에 전달하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결정적으로 니키와 엠마 모두 성폭행 허위신고에 대한 유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첼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니키와 엠마는 경찰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레이첼은 편집팀의 승인을 뒤로하고 독자적인 취재에 돌입한다. 전국적인 보도의 니키 사건이 아닌 엠마 사건에 뛰어든다. 하여 뉴햄프셔로 향해 엠마를 만난다. 그녀는 태어나 자란 뉴햄프셔가 아닌 전혀 다른 지역, 앨라배마 터스컬루사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곧 신고했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조사실에서 허위신고죄로 체포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메건 론디니와 다이애니 버미오의 사연
레이첼은 그로부터 15개월 전 터스컬루사에서 일어났던 성폭행 허위신고 사건을 들여다본다. 메건 론디니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TJ 번 주니어는 지역 유지 가문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TJ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메건은 체포된다. TJ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메건이 성관계 후 돈을 훔쳐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술에 엄청 취했던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경찰은 메건의 기억이 뒤죽박죽인 점을 파고들어 '일관성 없는 진술', 즉 그녀 스스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유도해 갔다. 피해자에서 용의자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메건은 허위신고가 아닌 절도로 기소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한편 앞서 엠마가 허위신고죄로 체포되는 결정적 이유는 경찰이 입수해 확인했다는 엠마와 엠마를 성폭행했다고 의심되는 남성의 키스 장면이다.
레이첼은 또 다른 사건에 주목한다. 킹 대학 학생 다이애니 버미오는 경찰을 사칭한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가 오히려 허위신고죄로 체포되고 말았다. 경찰은 의심 가는 자를 알고 있었지만 그를 불러 조사하지 않았고, 사건 당시 밤중이었다는 점을 이용해 근처 감시 카메라들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곤 다이애니한테 '찾아보니 네 차밖에 없었다'며 오히려 그녀를 허위신고죄로 체포해 버린 것이다.
엠마, 다이애니는 성폭행을 당했지만 경찰의 다분히 의도적인 불충분 조사로 오히려 허위신고를 했다며 체포당했다. 결정적으로 그 자리, 조사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말았다.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용의자로 만드는 경찰
이 작품 <피해자/용의자>는 성폭행이 주된 소재라고 하기 힘들다. 물론 가해자의 흉악한 행위에서 시작된 사건들이 모여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주된 소재는 허위신고 사건이겠다. 대부분의 범죄 다큐멘터리가 가해자를 조명하는 데 반해 이 다큐는 가해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피해자가 전면에 나선다. 공교롭게도 한때 용의자가 된 피해자들 말이다.
이 지점에서 경찰이 등장해야 한다. 범죄 다큐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찰, 그들은 영웅이었다가 들러리였다가 무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용의자로 만들어 버리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이유가 뭘까? 그렇게 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란다. 취조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는데,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신고자들 대부분이 어린 나이이기에 잘 먹힌다. '진짜 용서 받지 못할 자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국가의 대리인이자 정의의 상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경찰.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그들을 믿을 수 없고 나아가 그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의심한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전전긍긍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해하는 건 피해자가 아니라 경찰 조직이다. 아니, 애초에 가해자가 가해를 저지르지 않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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