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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믹스 테이프 하나로 1980년대 이탈리아를 장악한 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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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믹스드 바이 에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믹스드 바이 에리> 포스터.

 

1991년 이탈리아, '에리'라고 불리는 엔리코는 어찌 된 일인지 감옥에 와 있다. 그런데 젊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그를 두고 감옥의 죄수들이 모두 몰려들어 선생님이라며 떠받드는 게 아닌가? 15년 전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에리가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의 삼 형제는 가짜 양주를 팔아 근근이 먹고사는 아빠를 따라 가짜 술을 만든다. 와중에 에리는 음반 가게에서 죽 치고 있기 다반사다.

1985년, 음반 가게에 취직해 살아가고 있는 에리는 DJ가 되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동네가 어수선한 와중에 에리가 동네 건달들에게 폭행을 당했고 에리의 동생이 도와주려다 살인 미수로 소년원에 간다. 한편 에리의 형은 에리가 믹스해 준 테이프 덕분에 여자친구와 결혼에 골인한다. 에리는 음반 가게가 망하며 백수가 되고 에리의 형은 담배 밀수업이 잘 되지 않는 형편이다. 그들은 은근 수요가 있는 에리의 믹스 테이프에 주목한다.

사채업자에게 큰돈을 빌려 최신형 기계의 힘으로 시작한 '에리의 음반 가게', 금방 큰돈을 번다. 하지만 에리는 구매자의 취향에 맞는 큐레이션과 함께 더 큰 시장을 노린다. 형이 맞장구쳐 담배 밀수업자들과 함께 사업을 확장한다. 다시 한번 사채업자를 찾아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큰돈을 빌린다. 하지만 마피아가 걸린 일이 터져 큰돈을 잃고 가게도 문 닫을 위험에 처한다. 그때 출소한 막내가 해결해 주는데… 삼 형제가 뭉쳐 에리의 음반 가게는 다시금 궤도에 오른다. 과연 에리의 믹스 테이프와 에리의 음반 가게 앞날은?

 

이탈리아 현대사를 뒤흔들 만한 실화

 

종종 기대하지 않은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의 한마디로 생각지도 않은 영화를 접할 때가 있다. OTT 콘텐츠가 넘쳐나 양질의 콘텐츠를 구분하기 힘들어진 요즘 들어 그런 경우가 많아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이탈리아 영화 <믹스드 바이 에리>가 그런 콘텐츠다. 누군가의 한마디로 생각지도 못한 영화를 접했고 감명받았다.

영화 <믹스드 바이 에리>는 제목과 동일한 '믹스드 바이 에리'라는 믹스 테이프로 막대한 부를 쌓으며 1980년대 이탈리아를 장악하다시피 한 실존인물 엔리코 프라타시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보고 듣고도 믿기 힘든데, 믹스 테이프 따위로 어떻게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가 콘텐츠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반증이 아닌가도 싶다.

한편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시드니 시빌리아다. 그는 1960년대 이탈리아의 엔지니어 조르지오 로사가 인공섬을 만들어 독립국을 선포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2020년 꽤 화제를 뿌린 바 있다. 이탈리아 현대사를 뒤흔들 만한 실화를 가져와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알차게 진행 중인 것 같다.

 

성공과 몰락의 서사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실화는 힘이 세다. 믹스 테이프 따위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막대한 부를 쌓으며 세상을 뒤흔든 이야기. 실화라고 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오리지널 각본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그럼 이 실화에서, 아니 영화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우선 성공과 몰락의 서사로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전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구도 하지 못한 성공,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건 하찮기 이를 데 없는 것밖에 없는 삼 형제의 드라마틱한 성공, 구매 수요를 정확히 예측한 후 위험을 무릅쓴 공급으로 맞이한 당연한 듯한 성공까지 하나의 성공에서 여러 가지 면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은 반드시 몰락을 가져온다. 몰락까진 아니더라도 내리막길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게 인생사, 내리막길을 얼마나 잘 내려가느냐가 관건일 테다. 대성공한 삼 형제는 말 그대로 몰락한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한다. 그들도 자신들의 사업이 마냥 떳떳하진 않았던 듯, DJ의 선곡이라는 명분 하에 남이 만든 음악들을 위조해 팔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영화를 동적으로 흐르게 한 것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밌다. 실화 자체가 대단히 화려하거나 임팩트 있지 못하지만, 영화로 만들면서 대단히 리드미컬하게 꾸몄다. 특히 시종일관 그때 그 시절 전 세계를 주름잡은 명곡들 믹스 테이프를 듣는 듯, 익숙하고도 좋은 음악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영화의 서사와 적절히 합을 이루며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책임졌다. 참신하면서도 적절했다.

주인공 삼 형제를 비롯해 잠깐잠깐 나오는 조연 캐릭터들 모두가 제 몫을 했다. 제각기 고유의 캐릭터성으로 씬 전체를 따로 또 같이 이끌며 책임졌다. 영화를 정적으로 흐르게 놔두지 않았다, 그들 덕분에 동적일 수 있었다. 사채업자가 기억에 남는데, 묻고 따지지도 않고 엔리코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다가 갑자기 차원이 다른 큰돈을 빌려주라고 할 때 살짝 반응하는 씬이 인상 깊다. 콘텐츠를 담당하는 에리와 전반적인 경영을 담당하는 에리의 형에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행동대장 격 에리의 동생이 처음으로 합심하는 씬도 인상 깊다. 

 

뭘 모르던 시절의 치기 어린 짓은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그랬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뭘 알고 난 후 오히려 그 앎을 이용해 저지르는 짓은 어떨까. 이 영화는 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기에 성공과 몰락이 담겨 있다. 우리네 보편적인 삶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그들만의 특수한 삶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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