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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빌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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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생 빌런이 봤으면 하는 <막돼먹은 영애씨>

 

드라마 시리즈 <막돼먹은 영애씨> 포스터. ⓒtvN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장장 17 시즌 동안 계속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평균 이하로 외면 받는 외모의 30대 미혼 여성 ‘이영애’가 고군분투 써 내려가는 인생사를 그렸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도 주요 과제겠지만, 연애 아닌 결혼에 골인하는 게 지상 과제다.

작품에는 영애씨뿐만 아니라 수많은 주변 인물이 나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영애씨의 가족이 큰 한 축을 형성하고 영애씨의 회사 동료들이 또 다른 큰 축을 형성한다. 그런데 그들이 영애씨를 대하는 걸 보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빌런‘이라고 할 만하다. 외모와 성격 지적은 물론이고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참견한다. 강하게 반발하지만 착하고 약한 심성의 영애씨다.

그런가 하면 영애씨도 상황에 따라 또 누군가에겐 ’빌런‘이다. 제목의 ’막돼먹은’이라는 수식어가 다분히 중의적인데, 그녀는 막돼먹은 짓을 일삼는 이들에게 참지 않고 일침을 날리지만 그녀 자신도 모르게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하곤 한다. 자극 받아 대응으로서 좋은 의미의 막돼먹은 짓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막돼먹인 빌런 가족들

 

우선, 영애씨의 막돼먹은 가족들을 들여다보자. (영애씨의) 엄마 김정아가 단연 눈에 띈다. 영애씨를 보기만 하면, ‘미친년, 나가 죽어’를 남발하며 결혼 얘기를 시작한다. 명절 때는 친척들한테 한 소리 듣기 싫어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말라고 하거나 집밖으로 쫓아낼 때도 있다. 영애씨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신랄하게 까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심하다 싶을 때가 대부분이다. 영애씨가 집을 나가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

온화하지만 바람을 피우고 보증을 잘못 서는 등 뻘짓의 대명사 아빠는 그렇다 쳐도, 대학생 때 속도위반으로 결혼한 여동생과 대학생이 되지도 못한 채 속도위반으로 결혼한 남동생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빌런이다. 더군다나 여동생의 남편은 백수 신세로 분가하지 못하고 처가에 얹혀 살고 있다. 영애씨가 ‘이 놈의 집구석을 빨리 나가야지’ 다짐하는 또 다른 이유다.

물론 결정적일 때 영애씨의 둘도 없는 편이 되어 주고 또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며 똘똘 뭉쳐 한가족임을 공고히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상태로 으르렁 거린다. 한편 명절, 결혼식 때 어김없이 보는 영애씨의 큰 고모, 즉 영애씨 아빠의 큰 누나는 영애씨 엄마도 한 수 접는 절대 빌런이다. 기본적으로 여자라면 까대는데, 영애씨 엄마와는 달리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다. 더 기분 나쁘고 또 오래 간다.

 

막돼먹은 빌런 회사 동료들

 

다음으로, 영애씨의 막돼먹은 회사 동료들을 들여다보자. 사장이 단연 눈에 띈다. 하는 짓만 보면 '악덕 고용주'의 대명사인데, 성희롱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농담 아닌 농담을 일삼고 부하 직원한테 야동을 받아 회사에서 함께 시청하기도 하며 허구헌 날 가지각색의 이유로 직원들을 쪼아댄다.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건 물론이다. 그래도 정이 많고 따뜻한 구석이 있긴 하다. 

 

사장을 양옆에서 보좌(?)하며 "재치쟁이" "센스쟁이"를 연발하는 두 남자 영업사원도 한몫한다. 특히 '개지순'이라고 불리는 정지순은 시즌 내내 영애씨와 끊임없이 대립 각을 세우는데, 인격과 외모와 능력 등 영애씨의 모든 걸 물고 늘어진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지 못해 안달일 정도인데, 무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지순이 먼저 시비를 건다. 그도 역시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막돼먹은 영애씨> 최악·최고의 빌런이다. 어디서도 만나기 어렵고 싫은 빌런이기도 하다. 

 

영애씨는 자의적·타의적으로 3~4곳 정도 회사를 옮기는데 가는 곳마다 새로운 유형의 빌런이 그녀를 괴롭힌다. 대부분 그녀의 외모(뚱뚱하고 못생긴 편)와 성격(드세고 참을성이 없는 편) 가지고 괴롭히며 사생활(술을 너무 자주 많이 마시는 편)로 괴롭히기도 한다. 반면 그녀의 자못 출중한 능력(디자인)은 높이 사는 편이다. 영애씨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빌런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누구도 스스로를 빌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 정도면 괜찮지' 하며 말이다. 그런데 <막돼먹은 영애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빌런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이의 생각과 행동 중 단 한 개라도 다른 누군가한테 피해를 주지 않은 적이 없고 또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게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면, 상시적이진 않더라도 그의 성향과 평소 행실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100% '빌런'일 것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자신을 빌런의 범위 밖에 위치시킬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자신을 두고 빌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막돼먹은 영애씨>가 장장 17시즌, 12년간 보여준 인간군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한국인이라면 <막돼먹은 영애씨>를 보고 재밌게 즐기되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2019년 17시즌을 끝으로 비공식적 완결이 났다. 영애씨가 몇 번의 파혼을 거쳐 결혼에 골인해 아이까지 출산했기에, 작품의 원류인 '노처녀 영애씨의 고군분투'의 상징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이런 작품이 또 찾아올지,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점점 더 짧고 굵으며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는 요즘 그리고 앞으로 길고긴 시즌제 드라마가 생존할 날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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