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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한마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미안해요,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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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안해요, 리키>


영화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영화사 진진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안 해 본 일 없이 온갖 일을 다 한 리키, 이제는 혼자 일하면서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택배 일을 택한다. 면접 담당자이자 지점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하길, "고용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거예요, 우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겁니다"라고 한다. 리키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문제는 택배 물량을 실을 수 있을 만큼 큰 밴 차량이 필요하는 것인데, 회사에서 빌리기엔 날마다 드는 돈이 너무 많아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계약금이 없으니 아내 애비의 차를 팔아야 한다. 애비는 간병인으로 일하는데 하루에도 몇 군데를 돌며 차비를 직접 조달하고 있다. 안 그래도 힘들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남편 리키의 택배 사업이 번창하길 기대해야 한다. 리키와 애비에겐 큰아들 셉과 작은딸 리사가 있다. 엄마, 아빠가 잘 챙겨 주지 못해도 리사가 의젓하게 커 가는 반면 셉은 하염없이 빗나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아빠한테 그러한데, 욕설 섞인 말대답을 하지 않나 그래피티를 한답시고 공공기물을 손상시키지 않나 물건을 훔치지 않나 사람을 때리지 않나...


리키와 애비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라며 자조하고 위로하고 나아가려 하지만, 자잘한 듯 큰 일들이 계속 터진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게 일이 터졌다고 달려갈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특히, 리키는 택배물품들이 정확한 시간에 반드시 고객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불변의 철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체 기사 없이는 절대로 쉴 수 없다. 비록 개인사업자에 개인 차량에 개인 보험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돈을 더 까먹는 것 같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던 켄 로치 감독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영국 북동부 뉴캐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4인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 전, 켄 로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겐 '좌파 감독' '사회파 거장' '블루칼라의 시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아무래도 대중보단 평단의 사랑을 받는 느낌인데, 그가 평단의 사랑을 받기 위한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다. 그는 그만의 신념으로 그의 영화를 찍는다. 


1936년생으로 85세의 현역인 켄 로치 감독은, 사실 지난 2014년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런데 2년 후 전격적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들고 와 10년 만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영국 모순투성이 복지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켄 로치 월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서민과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선을 견지한 것이다. 이후 켄 로치는 다시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3년 후 다시 카메라를 든다. 아니 들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민과 노동자의 삶을 옭죄어 가족 해체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미안해요, 리키>가 보여주는 처참하고 슬픈 현실이 결코 먼 나라 영국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더 하면 더 했지 그보다 못하진 않을 것 아닌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노동자 현실


코로나 시대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택배 물량과 실적에 비해 택배기사 처우는 그대로인 현실에서 올해에만 15명의 택배기사가 사망한 우리나라 택배노동계, 영화에서도 나오듯 '구역 물량 분류 작업' 일명 '까대기'가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의 주원인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고된 노동, 알바를 쓰더라도 본인의 돈이 나간다. 물론 개인사업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맞을 것이다. 문제는, 말은 '함께' 일한다고 해놓고 노동자는 권리 없이 책임만 떠앉으며 사측은 대책없이 방관하는 모양새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안정과 불확실이 경제 전반을 잠식하는 가운데 '긱 이코노미'(정규직 아닌 비정규직, 계약직, 임시직을 선호하는 현상) 시대가 도래했는데, 불안정과 불확실이 가속화되며 임계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은 서민과 노동자가 아니라 '가난한' 서민과 노동자일 수 있다. 긱 이코노미의 수혜자라고 할 만한 기업이 허울 좋은 말로 상대하고 있는 이들이, 주로 치열하게 일해도 먹고사는 데 빠듯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영화에서 빌런은 택배회사 지점장 멀로니와 리키의 큰아들 셉인 듯하다. 멀로니는 개인사정을 전혀 봐 주지 않고 철저하게 사측의 원칙과 논리와 입장만 고수하며 리키를 압박한다. 그런가 하면 셉은 자잘하게 시작해 큰 사고까지 계속 치르며 리키를 괴롭힌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적어도 셉은 빌런이 아니다. 사춘기 나이 때,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그런 일들을 한 번쯤 저질러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리키의 잘못이랄 수도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멀로니가 남는다. 본인의 말마따나 "불평불만, 분노, 화, 증오를 모조리 흡수해 전국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지점으로 만드는 연료로 쓴다"는 그는, 이 시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화신일 것이다. 그는 분명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지만, 그조차 영화적 존재가 아닌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한 존재이다. 비판의 대상일 뿐, 그를 사라지게 하는 게 대안일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영화에는 비판의 대상이 몇몇 더 나온다. 리키가 강도 일당에게 맞아서 크게 다쳐 병원에 갔는데 엑스레이 결과를 받는 데만 3시간이 걸린다는 황당한 답변이라든지, 리키가 신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비싼 스캐너는 2분마다 울리며 현재 배송 상황을 모두에게 공유하게 한다든지. 사람 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법과 복지, 그리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디지털.


이 시대 노동과 가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인 네 가족은 모두 일반인이라고 한다. 리키 역의 크리스 히친은 오랫동안 배관공으로 일해 왔고, 애비 역의 데비 허니우드는 돌봄 노동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아니 다큐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일상생활을 카메라로 담았다고 할까. 우리나라의 그 유명한 <인간극장>이 생각났다. 이 시대 노동의 현실과 가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리라. 


켄 로치 감독이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게 60년대 중반, 어언 50년이 훌쩍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참으로 일관되는 시선을 견지했는데,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비판적 시선이 가 닿은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반증이니까 말이다. 올해 11월 13일이 고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나아가 권리를 찾고자 분신으로 자신을 희생한 사건의 50주년 되는 날이다. 이후 한국노동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IMF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공허해지고 말았다. 세상이 바뀌기는커녕, 어느 면에서는 뒷걸음친 것 같다. 


'각개약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무도 나와 함께하거나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나 또한 누구와 함께하거나 도울 마음이 없는 세상. 이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다. 또는 꿈쩍하지 못한다. 그런 세상에서 <미안해요, 리키> 같은 작품은 '약'이다.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종류의. 그러니, 누군가는 이런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 하고 우리는 이런 작품을 꼭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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