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드라마 <삼국지: 극장판>
드라마 <삼국지: 극장판> 포스터. ⓒ넷플릭스
'삼국지'를 모르는 이 없겠지만, '삼국지'를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삼국지가 너무 유명한 탓에 수없이 많은 콘텐츠로 재탄생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다양한 경로로 삼국지를 접해 왔던 바, TV만화, 만화책 게임, 소설, 영화, 드라마까지 끝이 없다. 그중 처음부터 끝까지 접한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대부분의 콘텐츠가 삼국지 전체가 아닌 일부를 다루기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또 접한 삼국지는, 실제 역사에 기반한 3세기 진수의 역사서 <삼국지>가 아닌 14세기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하여,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과도하게 드라마틱한 캐릭터와 사건 진행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우린 보다 재밌는 콘텐츠를 받아들이기 마련이기에 <삼국지연의>를 실제와 다름없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삼국지: 극장판> 역시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95부작 <삼국지>를 2013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방송프로그램제작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8부작으로 압축요약한 작품으로, 7년 만에 국내에 재소개되었다.
삼국지를 잘 아는 사람들을 위한 압축극장판
삼국지 관련 콘텐츠를 거의 빠짐없이 섭렵한 입장에서 보지 않을 수 없는 바, 빠르게 접한 결과 매우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95부작 대서사시를 오롯이 접하는 데엔 시간적 제약이 심하게 따랐을 텐데, 8부작의 약 16시간 정도로 줄여 놓으니 너무나도 알맞았던 것이다. 다만, 삼국지를 아예 모르거나 조금 아는 정도로 그친 이들이 보기엔 절대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일엔 원인이 있는 법, <삼국지>의 '삼국지'가 위·촉·오 삼국을 뜻하며 220년 경 정립되어 진정한 삼국지 시대가 열리는 반면 그 시작은 184년 경 황건적의 난으로 한나라가 위기에 봉착하는 때부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삼국지: 극장판>은 이를 건너 뛰어 5년은 지난 때의 반(反)동탁연합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후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지'를 대체로 184~280년까지로 보고 다루는데, 100여 년의 역사를 95부작으로 압축하고 이를 다시 8부작으로 압축하려니 여러 모로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만 보여 주려 했다. 삼국지를 잘 아는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테지만, 삼국지를 잘 모르는 입장에선 독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이라는 점을 전한다.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연기력과 미장센
2011년 제6회 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탄 공적이 있는 작품을 원작으로 한 극장판이라는 점이 <삼국지: 극장판>을 향한 신뢰도를 한껏 높인다. 스토리야 누구나 알 만하기에 연출력과 연기력과 미장센 등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을 텐데, 여러 모로 훌륭했다고 본다. 특히 연기력과 미장센이 큰 몫을 해 주지 않았나 싶다.
아주 잘 알고 있는 장면에서도 북받쳐 오르고 또 감동하곤 했다. 조조와 관우의 적아를 초월한 브로맨스, 조운의 목숨을 건 아두(유비 아들) 구출 작전, 유비의 눈물 어린 제갈량 삼고초려, 손권의 흔들리는 조정을 한순간 모으게 하는 카리스마, 관우의 죽음과 조조의 죽음과 유비의 죽음, 제갈량의 일생을 바친 촉나라 부흥...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장면장면들이 이 작품 덕분에 다시 한 번 깊이 아로새겨졌다. 보는 사람 오그라들지 않게 하고 대신 감동의 물결에 휩쓸리게 하는 진정성 어린 연기력 덕분이겠다.
아울러, 1800년 전 시대에 훌륭하게 조응하는 미장센이 압권이다. 평상복이면 평상복, 전투복이면 전투복, 삼국지를 대표하는 다양한 캐릭터의 상징을 한껏 살린 차림새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또한 삼국지를 넘어 중국 역사를 호령하는 대장수들 간의 일기토들이 빛을 발했다. 여포 vs 유비·관우·장비, 마초 vs 허저, 장비 vs 마초 등의 팽팽한 접전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삼국지에서 이만큼 유명한 일기토가 수없이 많지만 삼국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만큼 중요한 전투와 그 일환으로의 일기토도 없다 하겠다. 참으로 적절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삼국지의 세계
삼국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품을 볼 때 특히 자주 그리고 깊이 느낀 건 '인생무상'이다.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소불위 천하무적의 권력과 지력과 무력을 지닌 영웅들이라도 세월의 힘을 이길 순 없으니, 전쟁에서 죽지 않으면 언젠가 늙고 병 들어 죽고 마는 것이다. 매화를 시작하며 나오는 '영원한 전쟁도 또 영원한 평화도 없는 법'이라는 한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역시, 삼국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친애하는 인물들이 바뀐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관우를 좋아했다. 천하무적의 무력과 오롯이 유비만을 향한 충심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의협심이 참으로 멋있었다. 비슷한 의미로 조운도 좋아했다. 시간이 지나, 제갈량을 좋아하게 되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재로, 전쟁이면 전쟁 내정이면 내정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닮고 싶었다. 비슷한 의미로 주유도 좋아했다.
그런가 하면, 머리가 크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꾸준히 조조를 좋아했다. CEO, 정치가, 전략가, 지략가, 문필가 등 진정 모든 면에서 최고의 위치에 설 만하거니와, 수없이 많은 전쟁과 전투에서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교만에 빠지거나 굴하는 법이 없었고, 때에 따라서 한없이 자상하고 호방하고 잔인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또는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입체적인 인물인 것이다.
볼 때마다 여러 면에서 여러 의미를 찾고 그 의미들이 그때그때 나의 인생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니, 삼국지를 어찌 즐겨 보지 않을 수 있겠나 싶다. 족히 수십 번은 이러저러하게 삼국지를 접해 왔지만, 앞으로도 최소한 수십 번은 이러저러하게 삼국지를 접할 것이다. 그때마다 삼국지의 다른 면모가 부각될 것이고, 그때까지 바뀐 내 삶과 그때 이후로 바뀔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부디 많은 분들이 삼국지를 통해 인생을 엿보고 긍정적인 변화의 영향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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