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루이스 피구 사건: 세기의 이적>
전 세계 축구에서 포르투갈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21세기 들어 월드컵, 유로 등 굵직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거니와 개개인의 이름값 내지 성적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개중엔 전 세계 축구 '올타임 No.1'을 다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롯해 '포르투갈 축구 영웅' 에우제비우가 있고 '포르투갈 황금 세대'가 1, 2, 3세대까지 탄탄하게 이어지고 있다.
'루이스 피구'는 포르투갈 황금 세대의 시작점이라고 봐도 무방한 바, 1989년과 1991년 청소년 월드컵 대회에서 2연속 우승을 달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만큼 루이스 피구를 향한 전 세계 빅클럽들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포르투갈 황금 세대가 성인이 되어 이룬 성과로는 유로 2000 4강, 유로 2004 준우승, 2006 월드컵 4강 등이 있다.
피구는 고국의 명문 스포르팅 CP에서의 빼어난 활약에 힘입어 당대 최고의 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아A로의 진출을 모색했지만, 파르마와 유벤투스 이중계약 문제를 일으키며 무산되었고 1995년 스페인의 '드림 클럽'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다. 자타공인 당대 최고의 유망주였기에 센세이션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영웅' 피구가 '역적'으로 낙인찍힐 날이 머지 않았다.
루이스 피구의 이적 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루이스 피구 사건: 세기의 이적>은 제목에서 고스란히 읽히듯 '사건'이라고 명명할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루이스 피구의 이적 사가를 다룬다. 스포르팅에서 파르마 또는 유벤투스로 이적하려던 때도 아니고, 스포르팅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던 때도 아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로의 이적이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팀이 97~98, 98~99 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다. 단숨에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선수이자 슈퍼스타이자 영웅으로 우뚝 섰다. 특히 그는 큰 경기와 위기에 강했기에 엄청나게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않았어도 사람들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하지만, 피구의 바르셀로나 시절은 안과 밖이 달랐던 걸로 보인다. 겉으로는 팀을 상징하는 선수로 화려하기 그지없었지만, 안으로는 활약만큼 돈을 주지 않아 가치 있는 선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불화설이 붉어졌고 그 사이를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 선거 후보가 끼어든다. 이게 무슨 뜻인가? 현역 회장도 아닌, 그렇다고 차기 회장으로 유력하게 점쳐지지도 않는 이가 무슨 수로 '말도 안 되는' 이적을 꿈꿀 수 있는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2000년 7월에 있을 예정인 레알 마드리드는 회장 선거, 스페인 굴지의 건설사 회장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찐팬' 플로렌티노 페레즈가 작정하고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 그는 전임 회장이 챔피언스리그 챔피언을 2회나 달성하는 쾌거를 보였지만 팀의 재무 건전성이라든지 브랜드 가치라든지 스타 파워가 타 팀을 압도하지 못한다고 보고 그 지점을 노렸다. 그는 그 유명한 '갈락티코(은하수)' 정책을 천명하며 제1순위로 천하의 라이벌 바르셀로나의 상징 루이스 피구를 데려오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피구에겐 바이아웃 금액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인 6천만 유로가 걸려 있었기에 그 누구도 그의 이적을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페레즈가 회장에 선출되어야 한다는 선결 과제도 있었다. 그 무엇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적은 상상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수도 그리고 중앙정부를 대변하고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대변하지 않는가. 중앙집권과 독립의 첨예한 대립은 정치적으로도 심각했다.
피구도 당연히 다른 팀도 아니고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은 절대적으로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다름 아닌 피구의 오랜 에이전트 조제 베이가 그리고 피구의 축구 우상 파울로 푸트레였다. 페레즈가 푸트레에게 접근했고 푸트레가 베이가에게 제안해 일종의 사전 합의서를 작성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페레즈가 레알 마드리드 회장에 선출되면 즉시 바르셀로나에 6천만 유로의 바이아웃을 지불하고 루이스 피구를 영입한다. 파울로 푸트레와 조제 베이가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지불한다. 그럼에도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오지 않는다고 하면 레알 마드리드에 3천만 유로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프로선수로서 '가치'를 알아 주는 팀으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이 세기의 이적 사가의 결과는? 모두가 아주 잘 알다시피 루이스 피구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갈락티코 1기의 시작점이자 대들보로 말이다. 6천만 유로의 이적료는 당연히 당시 역대 최고액이었고 말이다. 더불어 바르셀로나에서 받던 금액의 네 배에 달하는 주급을 받았다고 한다.
피구로선 다른 무엇보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 주는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당연히 바르셀로나 팬들은 그를 두고 '배신자' '용병' '유다'라고 비난했고 그중에서도 '돈'에 관한 욕이 많았다. 프로축구선수에게 '가치'는 곧 '돈'이니 만큼 피구가 돈 많이 주는 팀으로 간 건 사실이지만, 이적 과정에서 그의 힘과 바람으론 여의치 않았던 일들이 있었고, 아무리 피구가 한 짓이 싫다고 해도 팬들이 도를 넘어서는 인신공격을 하는 건 틀린 것도 맞다.
들여다보면, 피구 말고도 '배신자'라고 할 만한 이적 '행위'를 벌인 선수들이 많다. 천하의 둘도 없는 라이벌 팀으로 옮기는 경우가 그런데, 유독 피구의 사례가 기억에 남고 회자되는 건 그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유산이 그만큼 크다는 것일 테지만 무엇보다 그가 바르셀로나의 영원한 종이자 팬임을 만천하에 공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기 직전까지도 언론을 통해 '레알 마드리드 안 간다'며 바르셀로나에 남을 것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어느새 20년이 넘은 세기의 이적 사가 '루이스 피구 사건', 이 사건 이후에 바이아웃 금액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천문학적으로 뛰었는데 지난 2017년에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파리 생제르망이 바르셀로나에서 네이마르를 데려오려고 바이아웃 금액인 2억 2,200만 유로를 지불한 것이다. 이 결과로 네이마르를 욕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심지어 파리나 바르셀로나도 욕하지 않는다. 네이마르의 가치가 폭등했고 파리는 최고의 선수를 얻었으며 바르셀로나는 돈을 챙겼다. 루이스 피구의 이적 사건도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가 얼마나 가치 있고 대단한 선수였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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