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수리남>
윤종빈 감독, 가장 좋아하고 신뢰가 가는 한국 감독이다. 그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2012), <군도>(2014), <공작>(2018)까지 빠짐없이 챙겨 봤거니와 그중에서도 <용서받지 못한 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 베스트 1에 뽑는다. 첫인상이 이보다 좋을 순 없었을 테다.
그의 곁엔 (거의) 언제나 하정우가 함께했다. <공작>을 제외한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군도>까지 네 작품을 연달아 함께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던 <허삼관>에 각본으로 참여했고 <클로셋>에는 제작으로 참여한 바 있다. 중앙대학교 선후배 사이이자 절친 사이로, 윤종빈 감독이 신혼여행을 갔을 때 하정우가 따라 갔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다. 영화적으로는 둘도 없는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 그들이 <군도> 이후 8년 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으로 다시 뭉쳤다. 윤종빈 감독으로선 첫 안방극장 도전이고 하정우로선 장장 1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다. 한국에서 사기죄로 수배되자 수리남으로 도주해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전 세계적인 대규모 마약 사업을 펼쳐 마약왕으로 군림하다가 국제적 공조로 체포된 조봉행의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재미가 없기 힘들 것 같다.
홍어 사업가에서 민간인 언더커버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며 나름 안정적인 삶을 꾸리게 된 강인구, 하지만 그는 자동차 수리를 하면서 식자재 남풉도 하고 단란주점 운영까지 도맡아 하며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친구 응수가 수리남 홍어에 대해 떠벌린다. 한국에선 비싸게 팔리는 홍어가 수리남에선 잡히는 족족 버려지는 생선이니, 현지로 가서 사업을 크게 해 보자는 것이었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모든 걸 팔아 챙긴 돈을 들고 응수와 함께 수리남에서 홍어 사업을 벌이는 인구,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들이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군인이 다가와 지켜 줄 테니 돈을 내라고 한다. 다음에는 두목 첸진을 앞세운 중국 갱단이 다가와 무리한 요구를 한다. 골치가 아픈 와중에 인구는 어느 한인 교회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전요환 목사를 만난다. 그런데 그가 첸진과 만나더니 말끔하게 해결되는 게 아닌가? 인구는 수리남 대통령까지 영향력을 끼친다는 전요환한테 조공하며 사업 번창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으로 보낸 홍어에서 코카인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은 인구. 곧 경찰이 들이닥쳐 체포되고 만다. 꼼짝없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감옥에 갇힌 인구 앞에 대뜸 나타난 국정원 미주지부 팀장 최창호, 그는 인구에게 전요환의 정체를 전하며 그를 잡기 위한 언더커버 요원을 제안한다. 인구는 잃어 버린 전 재산 5억 원을 주면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성사된 전요환 체포 작전, 전요환은 한국에서 활동한 마약 사범이었는데 수리남으로 도피해 마약왕이 된 케이스였다. 인구의 홍어에서 나온 코카인은 전요환이 한국 루트를 뚫고자 실험해 본 것이었고 말이다. 강인구는 수리남으로 돌아가 최창호와 긴밀히 연락하며 전요환을 미국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작전을 수행하는데...
이중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추리 무대
윤종빈 감독의 필모를 살펴보면, 다분히 소시민적이지만 개성 짙은 캐릭터로 특정 집단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계속 해 온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잔인함과 유머 그리고 페이소스가 다양하고 짙게 깔려져 있다. 하나같이 어른들이 믿고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수리남>도 완벽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믿기 힘든 실화를 큰 테두리로 두고 디테일을 윤종빈 식으로 만들어 냈다.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 살려고 할 뿐인 소시민 강인구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생소한 남미의 '수리남'으로 가선 교회 목사로 둔갑한 한국인 마약왕과 국정원 간의 숨막히는 대결(?)에 휘말리는 이야기.
무엇 하나 믿기 힘들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며 외줄 타기 하듯 긴장감 어린 상황에서 다분히 이중성이 엿보이는 캐릭터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연기와 연출이 오롯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합을 이뤄야만 가능한 모양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서라도 궁금증이 충만한 상태로 스크린 밖에서 스크린 안을 들여다보는 재미 하나로 <수리남>은 충분하다. 명액션이나 명대사 없이 그때 그 분위기에 취해 즐기고도 남는 것이다.
윤종빈 감독의 필모 중에선 <공작>의 분위기와 거의 정확하게 부합하는데, 그 숨도 못 쉴 정도로 긴장감 철철 흐르는 분위기에 더해 마치 '범인은 이 자리에 있어!'라고 추리라도 하는 듯한 흥미진진함이 주를 이루니 어찌 재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치명적인 단점을 가리는 힘과 매력
하지만 <수리남>에는 명명백백한 약점 또는 단점이 존재한다. 마냥 편안하게 감상할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큰 부분이 다름 아닌 이 작품의 핵심인 강인구인데, 제아무리 그가 유도 선수 출신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사람 목숨을 개미새끼 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마약왕 전요환 앞에서 어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나 싶은 것이다.
강인구가 직접 움직여야 판이 움직이니 만큼 어쩔 수 없다지만 중무장한 보초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요새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국정원 요원과 수시로 그것도 큰소리로 대화하는 걸 보면 위화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강인구로 분한 하정우 특유의 능글능글한 연기가 강인구 캐릭터에 찰떡궁합이지만, 강인구에 하정우가 맞춘 것인지 하정우에 강인구가 맞춘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왠지 후자 같이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수리남>은 치명적이라면 치명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상당히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힘과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 이하 스탭들이 그 지점들을 모를 리 없었을 테고, 전체적인 흐름과 재미 등을 위해 알고서도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느껴지니 작품이 보여 주려는 진짜 재미와 더 큰 재미에 몰입할 수 있었다. 윤종빈 감독 팬이기에 단점에서 애써 눈을 돌리려 했을 수도 있겠으나, 윤종빈 감독 팬이기에 그의 노림수를 정확히 알아 챌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윤종빈 감독 팬으로서 <수리남>은 평이한 수준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주요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펼치는 장면 장면에서 충분한 서스펜스를 뽐냈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진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고 철저히 캐릭터 위주의 피카레스크식 범죄극 느낌으로 만든 것 같긴 했으나, 아쉬운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윤종빈 감독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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