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내 딸의 살인자>
1982년 7월 10일 이른 아침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남단 린다우, 신고를 받고 갔지만 15세 어린 소녀 칼링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신고자는 그녀의 양부인 의사 디터 크롬바흐였다. 칼링카는 사후경직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는데, 팔에 칼슘 주사가 꽂힌 흔적이 있었다. 칼링카가 일사병에 걸린 것 같아서 크롬바흐가 도움이 될까 봐 주사한 것이었다. 자못 수상했다.
칼링카의 모친 다니엘 고냉은 프랑스 페슈뷔스크에 살고 있는 전남편이자 칼링카의 친부 앙드레 밤베르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칼링카가 일사병으로 죽고 말았다고 전했다. 앙드레는 곧바로 린다우로 달려갔다. 칼링카를 보내 주고 전 부인 집으로 갔는데 칼링카가 죽던 날 그녀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더구나 린다우는 그렇게까지 더운 날씨의 도시도 아니어서, 건강한 어린 소녀가 일사병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게 석연치 않았음은 물론이다. 앙드레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페슈뷔스크로 돌아가 우여곡절 끝에 칼링카의 부검보고서를 받아본 앙드레, 결과를 보니 일사병이 아니라 음식 역류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에게 확인해 보니 그녀는 부검보고서를 읽지도 않았다고 했다. 부검보고서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식기와 윗입술에 상처가 있었거니와, 생식기 전체를 샘플로 채취해 놨다는데 그걸로 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기묘한 일의 연속이다.
딸의 죽음을 집념으로 파헤친 아버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는 딸 칼링카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맞닥뜨린 아버지 앙드레 밤베르스키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수십 년의 세월을 광기에 가까운 집념으로 보낸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칼링카의 죽음 당시와 이후의 여러 가지 정황상 칼링카의 양부 디터 크롬바흐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디터 크롬바흐는 독일 린다우에서 저명한 인사였다. 항상 인자하게 웃으며 환자를 대했는데 진찰도 잘 봐서 소문이 자자했다. 부인 다니엘 고냉도 조용하고 공손했다. 그런 이미지와 명성 때문이었는지 아무도 그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고, 다니엘도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독일에서도 의사라는 직업이 굉장한 명망 높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었다.
한편, 앙드레와 다니엘은 1965년에 만나 이듬해 결혼했고 그 다음해에 칼링카가 태어났다. 하지만, 1974년쯤부터 관계에 금이 갔다. 앙드레가 가족에게 세 집 건너 이웃인 크롬바흐를 소개했는데, 다니엘이 그와 바람을 피운 것이다. 프랑스로 돌아가 관계를 회복한 앙드레와 다니엘,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니엘이 다시 크롬바흐를 만나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 그들은 이혼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버지
앙드레는 칼링카의 죽음에 크롬바흐가 있음을 확신했지만 시간은 속절 없이 가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1995년, 드디어 프랑스 형사법원은 크롬바흐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크롬바흐의 의료 행위가 칼링카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제 크롬바흐를 체포해 프랑스로 데려오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 법무부가 크롬바흐에 대한 유죄 판결을 집행하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종의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추측만 할 뿐, 앙드레로선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앙드레는 몇 년 동안 주기적으로 몇 번이고 크롬바흐를 찾아갔다. 그로선 어찌질 못해 그저 크롬바흐를 지켜보고 그의 주위를 맴돌 정도였던 것이리라.
그런 와중에 크롬바흐는 독일에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소동 끝에 의사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는데, 대리 의사로 독일 전역을 다니다가 눈 밝고 꼼꼼한 누군가의 신고로 걸려서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성범죄를 오랫동안 저질러 왔다는 사실도 밝혀졌지만, 오래지 않아 가석방으로 나왔다.
범인을 납치해서 정의를 실현한 아버지
절망에 빠진 앙드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앙드레, 그럼에도 크롬바흐의 뒤를 쫓는다. 낌새로 보아 크롬바흐는 멀리 어딘가로 떠나려 하는 것 같다. 앙드레는 결심한다. 크롬바흐를 납치해 프랑스로 데려오는 것. 그는 대담하게도 전단지를 뿌려 크롬바흐를 납치해 줄 사람을 구한다. 놀랍게도 거기에 응답한 이가 있었으니, 안톤 크라츠니키다.
앙드레의 사주를 받은 안톤은 다시 조르지안이라는 러시아갱에게 사주해 디터 크롬바흐를 납치, 프랑스로 데려오게 한다. 그렇게 2009년 10월 9일 새벽에 크롬바흐는 납치되어 프랑스로 오게 되었고 곧 재판이 시작되었다. 물론 앙드레와 안톤도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1982년 칼링카의 죽음 이후 27년 만에 재판에서 대면하게 된 앙드레와 크롬바흐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정의가 실현되었고, 크롬바흐는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안톤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앙드레는 집행 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30년 가까이 돈키호테처럼 싸운 앙드레 밤베르스키,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로서 자식을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자 크롬바흐이 합당한 사법적 책임을 다하길 원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앙드레가 독일에 사는 독일인 크롬바흐를 체포하게끔 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일이었다.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직접 정의를 구현하기로 했다. 그는 크롬바흐를 죽일 생각은 일말도 없었는데, 그건 너무나도 쉬운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크롬바흐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길 바랐다. 그래서 납치해 프랑스로 데려와 프랑스의 사법 심판을 받게 했다. 누가 앙드레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는가? 누가 크롬바흐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 수 있는가? 누가 그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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