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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계를 뒤흔든 사건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 <나이키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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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익스클루시브 리뷰] <나이키 스캔들>

 

왓챠 익스클루시브 다큐멘터리 <나이키 스캔들> 포스터.

 

2001년 나이키는 미국 내 중장거리 육상선수를 육성하고 나아가 미국 중장거리를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수백 만 달러를 투자해 본사가 있는 오리건주 '오리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코치로 미국의 전설적인 마라토너이자 나이키의 아이콘이었던 '알베르토 살라자르'를 데려온다. 신의 한수였다, 성과가 곧바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살라자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수들을 훈련시켰고 나이키는 온갖 첨단장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리건 프로젝트 선수들은 세계 유수의 대회들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살라자르의 명성은 높아졌으며, 나이키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오리건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유망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2019년 일이 크게 터졌다. 

 

2019년 카타르 도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도중, 세계반도핑기구가 미국 육상팀의 알베르토 살라자르에게 자격 정지 4년의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불법 도핑 약물을 거래하고 선수들에게 사용했다는 혐의였다. 살라자르는 도핑 실험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키와 육상

 

왓챠 익스클루시브 다큐멘터리 <나이키 스캔들>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위기에 처한 나이키의 아이콘 '알베르토 살라자르'의 아슬아슬한 이야기부터 '오리건 프로젝트'에서 시작되는 나이키의 거시적 브랜드 마케팅 이야기를 다룬다. 나아가 '도핑'을 두고 선수와 코치와 나이키가 얽히고설키게 유착하는데, 그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작품은 도덕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려 하지만, 정작 옳고 그름이 껴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본래 육상은 인기 종목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시와 조롱을 받았다. 그러던 육상이 1970년대 들어 조깅 붐과 함께 뻗어 나갔다. 1964년 창립된 나이키가 육상에 투자하며, 짧은 역사를 뒤로 하고 날아 올랐다. 나이키는 아이콘을 내세웠으니, 불굴의 투지와 강한 승부욕으로 절대 지치지 않는 이미지의 육상선수 스티브 프리폰테인이었다. 그는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 빌 바우만이 코치 시절 제자였다. 

 

하지만 프리폰테인은 1975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달리했다. 많은 육상선수가 애도를 표하고 그를 기렸다. 나이키로서는 당장 새로운 아이콘을 마련해야 했다. 알베르토 살라자르가 낙점되었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뉴욕 마라톤을 제패하고 보스턴 마라톤까지 제패하며 당대 최고 실력자로 우뚝섰다. 울트라 마라톤까지 섭렵하며 모든 걸 뒤로 하고 목숨까지 내던지듯 경기에 매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나이키가 원하는 상(象)이었다. 

 

살라자르와 도핑

 

살라자르가 자격 정지 4년의 중징계를 받은 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자신에게 덧씌어진 혐의를 강력히 부인한다. 사용을 한 게 아니라 '실험'을 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아들에게 테스토스테론 실험을 하며 누군가 선수의 팔에 몰래 약물을 발랐을 때를 대비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자못 황당하지만 선수들에게서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결과로 봐서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입장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코치가 불법 도핑 약물을 거래하고 선수들에게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선수들한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뭔가 더 있다는 것인데, 오리건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어느 여자선수는 살라자르가 본인에게 금지 약물을 복용해 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여자선수는 살라자르가 본인에게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살라자르의 성향상 절대 금지 약물을 선수들에게 사용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살라자르야말로 승부욕의 화신으로 지치지 않고 무조건 죽어라 뛰는 나이키의 아이콘이 아니던가. 그는 울트라 마라톤을 뛰면서도 체중을 관리한다고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지 않은가. 그런 그가 금지 약물로 '쉽게' 이기려 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신기하고도 의외인 것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이다. 

 

나이키와 살라자르

 

문제는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살라자르의 뒤에 버티고 있는 '나이키'의 존재 말이다. 나이키는 살라자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기술 도핑'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며 도핑의 사각지대를 전략적으로 파고 들었고 도핑 규제 또는 규정의 헛점 그리고 한계를 이용했다. 살라자르가 말한 실험이라는 게 도핑 규정의 경계선까지 약물을 써 보는 것이었고, 보다 구체적으론 마라톤 경기 중 물병에 냉각모자를 함께 배치하는 등 꼼수를 부리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이키는 2017년 경기력을 4%나 향상시킬 수 있다는 혁신적 육상화 '베이퍼플라이'를 공식 런칭한다. 2016년 미국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에 시제품을 선보였는데 오리곤 프로젝트 선수들에게만 지급했고 여자 선발전에서 1, 2, 3위를 휩쓴다. 베이퍼플라이 때문만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베이퍼플라이가 큰 도움이 된 건 자명한 사실이다. 4년 뒤 2020년 미국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에선 원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지급하며 '마케팅의 신'다운 면모를 선보였다.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금지 약물로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베이퍼플라이 같은 기술 집약체로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것의 차이가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차이가 있어야만 그나마 수긍이 갈 텐데, 결과를 보면 다르지 않다. 나이키의 규정 밖 '기술 도핑 논란'은 결코 논란에서 그칠 게 아니다. 결국, 협회는 새로운 규정을 마련해서 발표했으나 나이키는 만들어 내놓은 제품은 거짓말처럼 규정의 경계선을 지켰다. 이걸 두고 또 말들이 많았던 건 물론이다. 

 

나이키 그리고 알베르토 살라자르, 육상계는 이 두 존재에게 놀아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육상계에 도핑이 만연해 있지만 가장 유명한 나이키와 살라자르만 몰매를 맞고 있는 걸까. 내부자가 아닌 이상 알 도리가 없고 대다수의 내부자는 입을 다물고 나이키를 따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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