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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의 시그니처이자 그 자체였던 <아르센 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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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익스클루시브 리뷰]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

 

왓챠 익스클루시브 다큐멘터리 영화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 포스터.

 

2000년대, 스페인 라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아름다운 축구'의 대명사로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줬던 팀이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이다. 하지만, 아스널은 본래 아름다운 축구와는 정반대의 길을 갔었다. 1990년대까지도 '지루한 아스널'이라는 별명을 전 유럽 만방에 떨쳤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간간히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프리미어리그 터줏대감이었다.

그러던 아스널이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영원히 회자될 희대의 혁신을 단행한다. 1996년, '아르센 벵거'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당시 외국인 감독이 성공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그를 향한 믿음이 없는 건 당연했다. 더군다나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지 않았어서 외부의 것을 잘 알지 못했기에, 프랑스에서 건너온 사람을 알 도리가 없었다.

모든 언론이 헤드라인에 'Arsene Who?'를 장식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놓고 적의를 표출하기도 했다. 허위로 사생활 폭로 엄포를 놓기도 했던 것이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 런던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벵거, 그러나 그의 철학이 반영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선수들의 좋지 못한 습관과 식단을 완전히 바꿨고 훈련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바꿨다. 선수들은 슈퍼맨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자연스레 성적도 좋아졌다.

 

'아르센 벵거=아스널'

 

왓챠 익스클루시브 다큐멘터리 영화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이하, '아르센 벵거')은 제목처럼 아르센 벵거에 대해 짧고 굵게 다루되 부제처럼 2003/04 시즌 아스널의 무패 신화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벵거가 직접 말하길, 그의 인생을 촘촘히 밀리미터 단위로 들여다봤을 때 무패 신화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극히 거시적이고 결과론적이지 않은가, 그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 같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아르센 벵거=아스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벵거의 아스널 이전 삶 또는 감독생활을 잘 알지 못하는데, 사실 그는 아스널로 오기 전에도 인정받는 감독이었다. 그는 선수로서 재능이 없다고 빠르게 판단하곤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소년 팀을 거쳐 낭시와 모나코를 맡았다.

그중 모나코 시절, 좋은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는데 1994년 마르세유의 승부조작 파문이 일며 프랑스 리그1에 암흑기가 찾아오고 벵거 본인에게도 암흑기가 찾아온다. 축구에 대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믿어 보기로 한다. 그렇게1995~1996년 일본 J리그 꼴찌팀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를 맡아 상위권에 안착시켜 놓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 그가 곧바로 향한 곳이 바로 아스널이었다. 그의 인생이 꽃 피우고 아스널도 꽃 피웠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꽃 피웠다.

 

아르센 벵거의 현재와 과거

 

작품은 그의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활발하거나 긴박하지 않고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하여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지만, 반면 스포츠 다큐멘터리 특유의 느낌은 덜 느낀다. 아무래도 '아르센 벵거'라는 사람의 특성이 가미된 분위기인 듯하다.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감독들, 이를테면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나 리버풀의 클롭 감독의 다큐멘터리였다면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다.

아스널에 부임한 벵거, 벵거의 아스널은 펄펄 날기 시작한다. 선수의 이름값이 아닌 자신만의 눈썰미와 데이터로 유망주를 데려와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하니, 지루한 아스널은 어디 가고 빠르고 아름다운 아스널이 온 것이다. 1992년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후 중상위권에서 애매하게 널뛰기하던 아스널의 성적이 1996~97 시즌을 기점으로 상위권에 안착한다.

첫 시즌을 3위로 마친 벵거의 아스널은 두 번째 시즌 곧바로 우승을 차지한다. FA컵까지 차지하면 더블을 달성한다. 절대강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거의 유일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프리미어 리그 인기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다. 이후 맨유에게 밀려 세 시즌 연속 준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고, 2001~02 시즌 다시 더블을 달성한다. 이 시즌에 또 하나의 전인미답 기록이 나오는데, 아스널이 프리미어 리그 최초로 시즌 전 경기 득점을 달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한 해 건너 찾아온 대망의 2003~04 시즌, 벵거의 아스널은 프리미어 리그 최초로 시즌 전 경기 무패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점점 더 치열해질 프리미어 리그에서 앞으로 영원히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진기록이다. (빅리그에선, 이탈리아 세리아 A 1991~92 시즌 AC밀란이 달성했고 같은 리그 2011~12 시즌 유벤투스가 달성한 바 있다.) 벵거의 아스널, 그 최정점의 나날이었다. 이후, 다시는 그와 같은 포스를 내뿜지 못했고 2015~16 시즌까지 만년 4위 안에만 드는 '4스널'로 불렸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다

 

벵거에게 아스널은 무엇이었을까. 자그마치 22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혁신을 과감히 달성하며 모든 이의 걱정을 덜어 내곤 챔피언스리그 우승 빼곤 누구도 이룩하지 못할 기록을 달성하며 최정점에 섰다가 그런저런 상위권팀으로 10년 이상 군림했으니 '인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테다. 더욱이, 가족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오롯이 축구에만 매진했다고 하니 말이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다'라는 신조를 아스널로 내보였던 게 아닐까.

아스널에게 벵거는 어떤 존재였을까. '뻥 축구'나 하던 지루한 아스널을 지금의 자리와 이미지에 있게 한 건 100% 벵거에 의해서였다. 단순히 레전드라든지 전설이라든지 하는 칭호가 아니라 '아스널=벵거, 벵거=아스널'이었을 것이다. 즉, 벵거가 생각하고 바라본 아스널과 아스널이 생각하고 바라본 벵거가 똑같았다.

그런데, 벵거는 떠날 때를 알지 못했다. 너무 늦게 떠나게 되어, 너무 많은 상처를 안아야 했다. 그는 떠날 때를 누구보다 잘 알았겠지만 차마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유추해 보면,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영광을 다시 한번 누리고 떠나려 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무패 우승을 달성한 후 거짓말처럼 우승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스널 역사에선 물론 최고의 감독으로 남아 있을 테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사에서도 맨유의 퍼거슨, 맨시티의 과르디올라, 리버풀의 클롭, 첼시의 무리뉴, 토트넘의 포체티노 등과 더불어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까진 퍼거슨 경을 제외하곤 벵거와 비견될 감독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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