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F1, 본능의 질주 시즌 4>
넷플릭스가 내놓은 최고의 시리즈물 중 하나이자 역대 최고의 스포츠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 <F1, 본능의 질주>가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당대 최고의 컨스트럭터였던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없이 중하위권 팀들의 이야기를 위주로 시작한 시즌 1 이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순항 중이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시리즈의 새로운 시즌은 어쩔 수 없이 포뮬러1의 직전 시즌을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미 모든 과정과 결과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는 건, 어디서도 듣기 힘든 팀과 선수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없고 현장이 아닌 이상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묘미이자 미덕이고 앞으로도 계속 시즌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다.
<F1, 본능의 질주 시즌 4>가 다루는 건 '포뮬러1 2021 시즌'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12일에 결과가 나온 만큼 결과부터 전하자면, 루이스 해밀턴 경의 경이롭고 유일무이한 8회 월드 챔피언 도전을 막스 베르스타펜이 가로 막았다. 레드불로선 8년 만이고 네덜란드인으로선 28년 만이며 혼다가 파워유닛을 공급하는 팀으로선 30년 만이다. 반면 메르세데스 컨스트럭터는 전무후무한 8회 연속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다음 시즌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리즈가 갈수록 재밌어지는 건 포뮬러1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것과 비례한다.
이보다 가슴이 쫄깃했던 적이 없다
<F1, 본능의 질주>가 시작할 때부터 세 시즌 동안 F1 월드 챔피언십은 큰 틀에서 결정적으로 요동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 컨스트럭터와 루이스 해밀턴이 절대 1강을 유지하는 와중에,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선 페라리와 레드불이 2위 싸움을 했고 맥라렌과 르노가 4위 싸움을 했으며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선 막스 베르스타펜, 발테리 보타스, 세르히오 페레즈, 다니엘 리카도,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 카를 르클레르 등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2020 시즌에 페라리가 몰락하는 등 이변이 있었지만 결정적이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선 치열한 1위 싸움 대신 F1 팬이 아니라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팀과 드라이버 그리고 감독의 이야기가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그것처럼 펼쳐졌다. 단순히 치열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팀이 해체된 후 인수되기도 하고 감독은 해임되며 드라이버는 교체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팬이 우러러 보기도 하며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 20명만이 참가할 수 있는 꿈의 무대이지만, '칼날 위의 목숨'이다.
그러던 F1 월드 챔피언십의 양상이 2021 시즌에 크게 결정적으로 요동쳤다. 팀과 드라이버 모두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의 1위 싸움이 시즌 내내 이어졌다. 메르세데스(루이스 해밀턴, 발테리 보타스)와 레드불(막스 베르스타펜, 세르히오 페레즈)의 팀전, 루이스 해밀턴과 막스 베르스타펜의 드라이버전 말이다. 근래 몇 년간 본 적이 없던 모습이고, 숫자의 치열함으로 보면 F1 역사에서 본 적이 없던 모습이다. 그동안 가슴이 웅장해졌다면 이번엔 가슴이 쫄깃해졌다.
루이스 해밀턴 vs. 막스 베르스타펜
구도는 명확했다. 1985년생의 신사적인 월드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 경과 1997년생의 저돌적인 도전자 막스 베르스타펜. 실제 대결 양상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둘은 거의 항상 폴 포지션과 그랑프리 챔피언의 자리를 두고 다퉜는데, 앞서 가는 루이스를 막스가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승리를 향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한 막스가 저돌적이기 짝이 없는 스탠스로 루이스에게 접근해선 제치려다 사고가 나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막스의 실력이 가파르게 늘은 것도 있겠지만 다분히 전략적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가 시작된 2018 시즌부터 세 시즌 동안 월드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 경과 2위의 포인트 차이는 100점을 상회할 정도로 엄청났다. 항상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타이틀을 석권해 버렸다. 그런 모양새에서 탈피하고자 막스가 사실상 루이스를 개인밀착방어한 것이나 다름없다. 막스 입장에서 다른 드라이버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행여 루이스와 동반 탈락하더라도 그 어떤 드라이버보다 높은 포인트를 얻을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먹혀 들었다.
루이스와 막스의 싸움은 메르세데스와 레드불의 싸움 양상도 바꿔 놓았고 F1 월드 챔피언십의 양상까지 바꿔 놓았다. 시즌 내내 그랑프리 우승을 번갈아 하다시피 하며(22번의 레이스에서 막스가 10번 우승하고 8번 2위를 하는 동안 루이스는 8번 우승하고 8번 2위했다)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의 마지막 한 바퀴까지 최종 승자를 가릴 수 없었다. 예전 소년만화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철저히 짜고 해도 불가능할 모양새였다. 코로나 이전에도 위기였고 코로나로 직격탄을 받으며 휘청거렸던 F1에 새로운 바람이 불 만했다.
그런가 하면, 7년 연속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있으면서 2위 팀과의 격차를 처참하게 벌리며 '왕조'를 구축한 메르세데스에게도 큰 자극을 줬다. 그래도 월드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며 '8년 연속'으로 늘렸지만 2위 레드불과의 차이가 30점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사자는 피가 말렸겠지만 보는 이들은 횡재나 다름없지 않았을까 싶다. 스포츠의 묘미가 치열한 경쟁에 있다면, 적어도 F1에선 지난 몇 년간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을 2021 시즌에 모두 소급해서 느꼈다.
F1 월드 챔피언십 2021 시즌의 쏠쏠한 재미
F1 월드 챔피언십의 양상 자체를 바꿔 놓은 게 또 다른 재미요소다. 막스와 루이스가 1위와 2위를 밥 먹듯이 하는 동안 1, 2, 3위에 해당하는 포디움에 새로운 인물이 올랐고 그랑프리 우승에도 새로운 인물이 수혈되었다. 상위권의 다니엘 리카도가 3년만에 그랑프리 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다니엘이 속한 맥라렌으로선 9년만에 그랑프리 우승을 맛봤다. 2019 시즌에 팀 소유주 아들에게 밀려 팀에서 떠난 적도 있던 에스테반 오콘은 데뷔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근 몇 년간 최약체 윌리엄스의 조지 러셀이 포디움에 오른 것도 볼거리였다.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도 의미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바로 '윌리엄스'의 소폭 약진이다. 윌리엄스라고 하면 F1 역사에서 페라리와 더불어 자타공인 최강의 팀으로 불렸지만, 2018 시즌 들어 펠리페 마싸가 은퇴하고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3년 연속 꼴등에 머물렀다. 그런 윌리엄스가 미국계 투자회사에 인수된 후 반등에 성공하며 8위에 랭크된 것이다.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절대 약체가 된 팀의 반등이 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벌써부터 시즌 5가 기다려진다. F1 2022 시즌은 이미 3월 중하순에 시작되어 치열한 순위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초반이지만 그동안의 전형적인 모습과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모든 레이스가 끝나고 올해 말에 이르면 컨스트럭터 월드 챔피언과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이 정해질 텐데, 내년 3월 즈음에는 <F1, 본능의 질주> 시즌 5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수록, 혼란스러울수록,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수록, 새로운 인물이 두각을 나타낼수록 재밌을 것이다. F1은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충분하고도 넘치는 재미를 선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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