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미샤와 늑대들>
198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의 작은 마을 밀리스에 새로운 이웃이 온다. 벨기에에서 온 모리스와 미샤라는 중년 부부, 미샤는 동물을 아주 잘 다뤘는데 어느 날엔가 동네 친구와 차를 마시다가 어린 시절 얘기를 건넨다. 전쟁 나고 살아온 얘기였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얘기이기도 했다. 이후 회당에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학교를 끝내고 집에 와서 부모님을 기다렸지만, 부모님은 오지 않았고 대신 어느 여자를 따라 나서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미샤 디폰세카'인 그녀에게 '모니크 드월'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짐 덩어리 취급을 받던 그녀는 7살 때 집을 나서 강제추방 당한 부모님을 찾아 수년 동안 수천 킬로미터의 나치독일 점령지를 헤맸다. 그리고, 숲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조우하는데 그중 늑대 무리가 그녀를 먹여 살리다시피 했다는 것이었다.
영화보다 실화가 더 영화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류사와 인생사에선 믿기 힘든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미샤의 이야기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미샤와 늑대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소상히 밝혀 우리에게 전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을 테다. 이 작품은 맥락상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상업적 성공기
회당에서 자세한 얘기를 털어놓으며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겨 준 후 미국의 작디작은 출판사 '마운틴아이비프레스'가 큰 관심을 가진다. 출판사 사장 '제인 대니얼'은 큰 성공을 절대적으로 확신한 채 미샤에게 접근해 장장 2년 동안 설득한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을 못 믿게 된 미샤는 계속 거절하는데, 지역 주민들과 친구들이 적극 추천한다. 후대를 위한 일이라고 말이다. 책은 출간되었고,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디즈니에서 관심을 보이고 또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성공으로 가는 길이 확실했다.
이쯤에서 생각해 본다. 제인 대니얼이 올바른 접근 방식으로 올바르게 책을 출간했는가 말이다. 미샤가 비록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은 나치에 의해 강제추방 당하고 본인은 비밀리에 위장입양되었으며 나중에는 홀로 부모님을 찾아 길을 떠났다가 나치에게 붙잡힐 수도 있었으나 살아남았으니 엄연히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아닌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다분히 상업적 비전만을 가지고 접근하는 게 올바른가? 뼈에 사무치는 무시무시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게 맞는 건가? 지역 주민들과 친구들이 후대를 위한 일이라고 부추겨도 말이다. 그래서 미샤가 갑자기 미협조적으로 나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미샤는 갑자기 비협조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틀어짐, 거짓말, 그리고 욕망
최소 100만 부 판매 대박으로 가는 지름길인 오프라 윈프리 쇼 출현에 미샤가 비협조적이다. 제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출간 1년여 후 미샤는 제인을 소송한다. 제인이 미샤를 철저히 이용해 먹으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2001년 법정에서 제인이 패소했고 배상금은 자그마치 2,250만 달러였다. 제인은 한순간에 무일푼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거니와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한 괴물이 되었다.
인생의 바닥을 친 제인은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어 자료를 뒤지기 시작한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줍기에 가까운 작업이었지만,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자료를 찾아낸다. 미샤는 엄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본인의 은행계좌 신상명세에 엄마 이름을 기입해 놓은 게 아닌가? 이밖의 여러 의문점들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다. 누가 볼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거짓말처럼 누군가가 연락을 해 왔다. 계보학자 샤론 서전트였다. 더 많은 이상한 점을 찾아내곤,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 계보학자 이블린 헨델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야기는 점점 미샤의 거짓말로 향햔다. 믿을 수 없는 얘기로 미국을 넘어 전 유럽을 뒤흔든 베스트셀러의 주인공 미샤가 믿을 수 없는 반전을 선사하기 직전이다. 이미 영화도 나왔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즉 미샤의 얘기가 거짓이라면, 믿기 힘든 얘기가 줬던 충격보다 훨씬 더 심한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제인으로선 반드시 미샤의 거짓을 밝혀야 했고 샤론은 계보학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했으며 이블린은 계보학자이기 전에 가톨릭 가정에 위장입양된 유대인 소녀였기에 누구보다도 진실을 밝혀야 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미샤가 청중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제인이 돈 되는 얘기라는 걸 알아 채고 책 출간을 이뤄 냈다. 미샤가 경제적 이유로 제인에게 소송을 걸었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충격 뒤에 따라오는 씁쓸함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미샤의 얘기는 새빨간 거짓말로 들통난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그녀에게 부여된 이름이었다는 '모니크 드월'이었고, 그녀는 애초에 가톨릭 가정의 아이였으며, 그녀의 부모님은 강제추방 당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벨기에 레지스탕스였다가 나치에 잡힌 후 고문 끝에 벨기에 레지스탕스 조직원 이름을 다 말해 버린 전적이 있다. 어린 아이가 뭘 알고 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미샤에겐 '배신자의 딸'이라는 이름이 붙였다. 그녀는 엄연히 피해자였다.
<미샤와 늑대들>은 그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박한 구성을 채택했는데, 시종일관 얼굴을 드러낸 미샤 디폰세카가 모니크 드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실화에서 미샤가 사실 미샤가 아닌 모니크 드월이었듯 극 중에서도 미샤가 사실 미샤가 아닌 대역이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이로서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아주 영리한 비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충격은 생각보다 금방 가시고 곧바로 찾아 들어온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피해자였던 미샤는 어쩌다가 세상을 속인 악당이 되었을까. 미샤가 세상을 속이는 데 고속도로를 깔아 준 제인은 얼굴을 당당히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신비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힘은 법도 이길 수 있나 보다. 이 얘기의 진짜 피해자들, 아름답고 아픈 이야기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아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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