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퍼핏 마스터: 최악의 사기꾼을 잡아라>
넷플릭스가 자신 있게 내놓을 인기 장르가 있다면 '범죄 다큐멘터리'를 빼 놓을 수 없다. 범죄 다큐멘터리 하면 최악의 연쇄 살인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넷플릭스가 웬만한 연쇄 살인범들은 상세히 소개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다른 범죄자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연쇄 살인범의 뒤를 이어 '사기꾼'이 낙점된 듯하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넷플릭스가 내놓은 사기꾼 다큐멘터리를 대략이나마 언급해 봐도 <부정 입학 스캔들> <신의 주앙> <사기의 제왕> <미샤와 늑대들> <데이트 앱 사기> 등이 있다. 다방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사기를 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사기꾼 이야기를 추가해야 하는데 악질 중의 악질이다. 피해자들을 조종하고 돈을 갈취해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퍼핏 마스터: 최악의 사기꾼을 잡아라>는 제목 그대로 단순 사기꾼이 아닌 '꼭두가시 조종자'로서 피해자들의 인생에 아주 깊숙히 관여해 파멸로 이끌어 버린 희대의 범죄자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사기, 절도, 납치, 폭행, 갈취 등 다양한 죄질을 자랑하지만 무엇보다 수년에 걸쳐 괴롭히고 착취하고 통제했다는 점이 악랄하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속이고 조종하고 갈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는 10년에 걸쳐 최소 8명을 조종하고 속여 100만여 파운드를 갈취했고 2003년 결국 붙잡혀 2005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7년 납치에 대한 유죄 판결에 항소해 승소한다. 종신형은 취소되고, 믿기 힘들지만 2009년에 석방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조종하고 속이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1992년 영국 중서부에 위치한 카운티 슈롭서의 작은 펍, 대학생 존은 바텐더에게서 혹 하는 말을 듣는다. 롭이라는 이름의 바텐더가 말하길, 자기가 사실 'MI5'(영국 보안정보국 국내 담당) 요원이며 존이 대학 내 'IRA' 셀 조직원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당시 영국 각지에선 IRA에 의한 폭탄테러가 빈번했는데, 당시 사회병리에 가까운 불안 심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롭은 존과 함께 사는 이들 중 짐을 가리켜 IRA의 끄나풀이라고 하고 다른 두 명(세라, 마리아)과 함께 탈출해야 한다고 한다. 존은 암에 걸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세라와 마리아 그리고 롭과 함께 떠난다. 여행이 한창일 무렵 롭은 세 대학생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말을 전한다. 그들이 IRA의 핵심타깃이 되어 생명이 위태로워졌으니 멀리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이다. IRA는 실제로 존재하고 MI5라는 롭은 너무나도 정확히 현재를 파악해 그들에게 알려 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세 명은 장장 10여 년 동안 롭에게 조종당해 돈과 마음과 몸 그리고 인생까지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다. 존은 중간에 탈출하고, 마리아는 그와의 사이에서 자식도 낳았으며, 세라는 아빠가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추적한 끝에 런던 경찰서 경사 '밥'에게 소식이 들어가 결국 잡혀 풀려날 수 있었다. 제3자가 보면 이해하기 힘들고 일면 답답하기까지 한 게 '가스라이팅'의 무시무시한 점이 아닌가 싶다. 그들 모두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유의지'가 없었다. 정확히는, 자유의지를 가질 만한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가스라이팅의 무시무시함
그런가 하면, 작품은 2022년 현재에도 진행 중인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 준다. 소피와 제이크 남매는 유쾌하고 다정하며 만사에 최선을 다하는 엄마 샌드라와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2011년, 샌드라는 데이팅 앱으로 남자친구 데이비드를 사귀더니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자식들을 멀리하고 데이비드를 가까이하더니 급기야 집으로 들인다. 데이비드는 정서적으로 남매를 교묘하게 학대한다.
결국 남매는 집에서 나와 엄마와 이혼했던 아빠 마크의 집으로 들어간다. 2014년, 샌드라와 데이비드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 마크와 남매는 샌드라를 위해 수소문하며 그녀를 찾아 나섰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2020년엔 경찰이 연락을 취했으나 샌드라는 데이비드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2022년 이 작품이 공개되기 며칠 전에 샌드라가 이메일을 보내 와 자신은 아이들과 계속 연락해 왔고 데이비드와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피와 제이크로선 아빠 마크와 함께 엄마 샌드라를 찾는 한편 돌아오길 간곡히 바라지만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성인이기에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자유이지만, 하필 상대가 '퍼핏 마스터'로 불리는 희대의 사기꾼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가 아닌가. 문제는 샌드라도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점이고, 그럼에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돌아올 마음이 없다면, 멀리서나마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의 무시무시함이 다시 한 번 전해진다.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사기'라는 게 누군가를 속여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인 만큼, 모든 사기꾼이 가스라이팅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렇다면 물질과 정신 양면에서 수년에 걸쳐 끊임없이 갈취를 이어온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는 뭐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부제대로 최악의 사기꾼? 아니, 제목대로 꼭두가시 조종자가 맞는 듯하다. 사기꾼은 주체가 본인 아닌 사기 대상에 가 있지만, 꼭두가시 조종자는 주체가 본인이 되어 수많은 객체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이니 말이다.
지난 2019년에 출간한 <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박영스토리)을 보면, 2장 '아름다움과 능력에 속는 인간의 한계여!-뛰어난 외모와 능력으로 사람을 홀린 사기꾼들'이라는 황당무계한 제목으로 다양한 사기꾼을 소개했는데, 로버드 헨디 프리가드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장 제목만 보면, 속아 넘어간 피해자가 잘못한 것처럼 보이고 가해자는 능력껏 홀린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책 자체가 가해자들이 주체가 되어 '풍미'했다고 하니 더욱 가관이다.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를 두고 결코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옳지 않다. 그는 사람을 홀려 인생을 파탄지경에 빠트리게 했다. 피해자로 하여금 죄책감까지 들게 했다. 나아가 스스로를 역겨워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야말로 단순 사기꾼이 아니고 악마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관련자들의 삶을 파괴시켜 버리며 지역과 시대까지 송두리째 바꿔 버린 연쇄 살인범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나는 단연코 로버트 헨디 프리가드를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중 하나로 점 찍고자 한다. 법은 일찍이 그를 풀어 줬고 그는 당당히 살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사람 마음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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