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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나치 전범이 미국의 영웅이 되기까지... <사서함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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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서함 1142: 미국의 비밀 나치 수용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서함 1142> 포스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히틀러는 유럽 전역을 공포로 밀어넣었다. 특히, 유대인에겐 다시 없을 살 떨리는 공포로 다가왔는데 히틀러가 유대인의 씨를 말리려 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유대인이 죽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탈출한 유대인도 꽤 되었는데, 가장 안전했던 미국으로 많이 탈출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남자들 중 시민권을 얻어 군인이 되어선 다시 유럽으로 가 복수를 다짐한 이들이 많았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은 여타 다른 병사처럼 유럽의 전선이 아닌 미국 내 규모가 크지 않은 비밀 군사 기지에 배치되어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곳은 워싱턴 DC 남부의 알 수 없는 곳으로 '사서함 1142'라는 주소만 알 뿐이었다. 

 

아르노 메이어와 피터 바이스도 그렇게 사서함 1142에서 군 생활을 한 케이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사서함 1142: 미국의 비밀 나치 수용소>(이하, '사서함 1142')는 수십 년 넘게 비밀에 부쳐졌던 비밀 군사 기지 '사서함 1142'의 비밀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프로젝트이다. 미국, 그것도 수도인 워싱턴 DC 부근에 나치 수용소가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워싱턴의 비밀 기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워싱턴 DC 부근에서 비밀 군사 기지를 운영했다. 50년 넘게 비밀에 부쳐졌다가 2006년 미국 국립공청원이 퇴역 군인 인터뷰를 진행하며 밝혀졌는데, 대다수가 공식적으로 외부 기밀 노출을 하지 않은 채 사망했고 아르노 메이어와 피터 바이스가 생존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서함 1142>가 35분의 짧은 시간으로 강렬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화해서 전한다. 

 

그들이 터전과 일터와 가족들을 모두 뒤로 하고 대서양을 힘겹게 건너 미국에 온 이유는, 미군으로 참전해 유럽에서 나치와 히틀러에게 복수하려는 일념 하에서 였다. 하지만, 미국은 그들의 개인적 바람이자 이유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조국을 위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배속했다. 

 

문제는, 미국인이지만 엄연히 유대인인 그들이 긴밀하게 대해야 할 이들의 정체에 있었다. 사서함 1142에 배속된 유대인 군인들은 얼마 되지 않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는데, 유럽 전선에서 생포한 독일군 장교들을 고스란히 사서함 1142로 '모셔온' 것이었다. 유대인 군인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을 극진히 '모시며' 미국에 도움이 될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나치 전범을 데려와 호위하다

 

전쟁이 한창인 1944년, 연합군에게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는 히틀러의 비밀 무기인 V-2 로켓이 영국 런던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며 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나치 정권의 수석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은 사정 거리가 더 긴 로켓 개발에 들어갔고, 머지 않아 미국 본토까지 날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미국은 유대인 군인을 활용해 V-2 로켓에 관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고문하지 않고 재치 있는 신문으로 핵심 정보를 캐내는 데 성공해, V-2 로켓 실험 연구소가 있던 페네뮌데를 폭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은 드디어 V-2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을 '영입'하는 데 성공한다. 아직 전쟁이 한창인 때 적국의 핵심 인물을 불법으로 입국시켜서는 사서함 1142에 '모셔서' 극진히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온 무리가 300명에 달했다. 수없이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 나치 전범 일파를 미국 미래의 핵심으로 데려와, 유대인 군인으로 하여금 호위대 겸 홍보 담당자로서 그들이 편하게 지내도록 돕게 했다. '사기 진작 장교'라는 얼토당토한 직함을 붙여 주고 말이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불 붙은 소련과의 사실상의 전쟁을 대비한 처사라고 하지만 도덕적 논쟁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적국, 아니 '인류의 적'의 핵심을 데려와 호위호식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영웅으로까지 탈바꿈시켜 주다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 군인들에게는 '민족의 적'의 핵심을 호위하며 비위를 맞추게 하다니 이 또한 해서는 안 될 반인류적인 처사가 아닌가 싶다. 오로지 실용과 효율을 앞세운 미국의 어쩔 수 없는 개념 정리인 듯싶다가도, 불같이 솟아 오르는 분노를 어찌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속 유대인 군인들

 

유대인 군인들이 사서함 1142에서 나치 전범을 신문하고 조사하는 것까지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인류 전체를 좌지우지할 대전쟁에서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거니와 엄연히 군인이기에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도리도 이유도 없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적국의 핵심 요인을 생포해 핵심 정보를 캐내고자 폭력 대신 구슬리는 게 틀린 방법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진짜 임무가 신문하고 조사하는 게 아니라 호위하며 비위를 맞춰 '자연스럽게' 정보를 취득하는 데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상에 다시 없을 적이자 한 하늘 아래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을 만한 사이인 나치와 유대인이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데 있어, 가해자인 나치는 비록 적국 한복판이지만 여전히 호위호식하고 있고 피해자인 유대인은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비인간적인 처사에 따라야 한다니 말이다. 그 자체로 유대인 군인들의 인간성, 인류애가 말살되는 짓이 아닌가 싶다. 

 

<사서함 1142>는 비록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분노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생존한 유대인 군인들의 인터뷰를 애니메이션으로 생생하게 되살려 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비도덕성을 파헤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3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이기도 할 테고, 1946년 폐쇄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사서함 1142'의 치부를 제대로 건드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V-2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은 미국 육군에 소속된 후 NASA에서 전천후로 활동하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나치 정권에서 미국과 소련 등을 상대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소련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영웅 대접을 받는다. 반면, 사서함 1142의 유대인 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대다수가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일을 일절 발설하지 않았다. 영웅 대접은커녕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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