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2004년 7월 15일은 한국 범죄 역사에서 특이할 만한 날이다. 한국 최초의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로 기억되는 유영철이 체포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채 1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부유층과 여성 20명을 죽여 토막낸 후 암매장하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그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으로 한국에 사이코패스 개념이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유명한 건, 즉 그의 범죄 행각이 유명한 건 경찰의 무능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유영철의 범죄 행각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초반의 부유층 연쇄 살인과 후반의 여성 연쇄 살인이다. 경찰은 1년여 동안 연쇄 살인의 범인이 유영철이라는 것조차 특정지을 수 없었다. 그저 CCTV에 우연히 잡힌 뒷모습과 신발 흔적으로 알아낸 족적을 바탕으로 수사 전단을 배포했을 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이하, '레인코트 킬러')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최초로 한국의 범죄 행각을 조명했다. 그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희대의 범죄를 재조명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선 넷플릭스가 드디어 한국 범죄에도 관심을 가진 것이다. 물론, 유영철은 그동안 한국 내에선 영화 <추격자>(2008)를 비롯해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에서 다루고 최근 화제를 뿌렸던 드라마 <모범택시>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모티브로 삼는 등 활발하고 다양하게 재탄생되었지만 말이다.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범죄 다큐멘터리
싱가포르 제작사 비치하우스 프로덕션이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롭 식스미스 그리고 한국계 캐나다인 존 최,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만든 명실공히 다국적 프로젝트 <레인코트 킬러>는, 베일을 벗고 나니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 많아 보인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직후 반짝 인기를 끌며 꽤 높은 순위까지 올라갔다가 이내 자취를 감춘 데에서 짐작이 간다.
우선, 작품은 흔히 빠지기 쉬운 연쇄살인범의 서사와 그에 따른 미화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성공한 듯하다. 유영철의 불우한 어린시절과 연쇄살인의 주요 동기라고 알려진 혼인관계에 대해선 일절 서술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범행에 대해서는 서술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의 핵심 관계자와 전문가 그리고 유족까지 총출동해 최대한 상세하게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서 삐그덕거리는 지점이 많았다. 제목부터 '레인코트 킬러'라는 타이틀을 붙여야 할 이유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고,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자 주체가 당시 무능의 극치를 달렸던 경찰인 점이 얼토당토하며, 범죄 다큐멘터리가 제시해야 할 사회병리적 문제의 방향성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지극히,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범죄 다큐멘터리로서 의의가 전부라 하겠다.
유영철, 그는 어떻게 연쇄살인을 저질렀나
그럼에도 '유영철'이라는 이름 하나로 작품을 더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생긴다. '그는 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가'라는 물음을 뒤로 하고 '그는 어떻게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본다. 이 작품이 거기에 초점을 맞췄듯 말이다. 한국 범죄 역사를 뒤흔든 범행의 시작은 2003년 9월 하순경 신사동에서 벌어진 명예교수 부부 살인 사건이었다. 이후 서울 곳곳에서 부유층 살인사건들이 일어나고 경찰은 이 사건들의 연관관계를 추적한다.
그런데 경찰의 추적은 오롯이 추적으로 그칠 뿐이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한국에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 기법' 등의 개념, 즉 지금으로선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필수로 집고 넘어가는 개념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사이코패스 유영철의 연쇄살인을 맞딱뜨린 경찰로선 당혹스러울 뿐이었고, 유영철과 스스로를 향한 분노가 차오를 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유영철은 기자한테 보낸 편지에서 "하루에 한 명꼴의 사람이 죽어나가도 열심히 순찰만 도는 경찰이나 힘들게 몇번을 잡아놓고도 쉽게 살인마를 놓치는 경찰들은 어느 나라 경찰일까요?"라며 조롱했고,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폐해졌다"고 했다. 당시 사건 담당 경찰 중 한 명은 "범인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라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능한 경찰, 경찰의 수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당시 상황이다.
경찰의 믿기 힘든 무능 무용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인터뷰이는 단연 경찰이다. 기동수사대, 지역 경찰서, 과학수사대, 프로파일러, 담당 형사 등 유영철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이 나와 몇몇은 마치 무용담을 펼쳐놓듯 당시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보는 이에게 두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무능의 극치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를 어떻게 저리 자랑스러운 듯 펼쳐 보일 수 있을까' 하는 것과 '전무한 시스템에서 어쩔 줄 모르지만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한국이 지금의 치안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겠구나' 하는 것이다. 사실, 앞엣것의 감정이 훨씬 크다.
특히, 시리즈 후반부에선 경찰의 믿기 힘든 실수담이 줄줄 나온다. 경찰 출신 불법 출장 마사지 업주 덕분에 잡힌 유영철, 본인 입으로 직접 밝힌 본인의 연쇄살인 스토리, 경찰서에 잡아 놓은 유영철이 유유자적하게 정문으로 탈출한 사연, 검사한테 범인을 석방한 걸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고 검사가 받아들인 황당한 짓거리, 그리고 기막힌 운으로 11시간만에 다시 잡힌 유영철. 당시 기동수사대 대장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며 무용담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후 정남규의 소행으로 밝혀졌지만 당시에는 알 도리가 없었던 이문동 살인 사건을 유영철의 소행으로 몰아가려 했던 점이나 피해자의 유족(어머니)이 유영철을 향해 달려왔을 때 발로 차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한 사건 같은 논란 거리도 다뤘다. '사이코패스 유영철 연쇄살인'이라는 큰 타이틀에 가려진 황망한 이면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때 그 사건의 거의 모든 것을 재조명하는 데 의의를 둔 거라면, 이 작품 <레인코트 킬러>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거의 모르다시피 했고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사건이었기에, 나름 흥미진진했고 어떤 면에서는 재밌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었냐고 한다면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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