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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의 질문을 던지게 하는 청춘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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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포스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첫사랑'에 대한 콘텐츠를 차고 넘친다.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은 제목부터 첫사랑을 드러내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단편소설 중 하나인 황순원의 <소나기>도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영화 중 하나인 <러브레터>나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청춘 로맨스 영화일 <건축학개론>도 첫사랑이 핵심이다. 

 

FT아일랜드의 데뷔 앨범이자 첫 정규 앨범에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라는 희한한 제목의 노래가 담겨 있는데, 그만큼 남자에게 첫사랑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남녀노소 누구나 첫사랑은 상대적으로 큰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테다. 대체로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기에 이루지 못하고 그만둔 것에 대한 기억이 더 크게 남을 것이고, '처음'에 대한 기억은 강렬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때 그 시절'과 '첫사랑'을 따로 생각하지 못하고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 첫사랑에 관한 영화 한편이 가을날에 맞춰 우리를 찾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일본 영화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동명의 2016년작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데, 평범한 40대 남자가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첫사랑을 접하고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을 더듬는 이야기다. 그는 잘 모를 수 있으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고도 할 수 있는 첫사랑,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거슬러 올라가는 인생

 

2021년, 46세의 시시한 어른이 되고 만 사토. 2015년, 30주년이 된 프로그램 '즐거운 시간 보내 쇼!' 종영 파티에 참석했다가 중간에 빠져나온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열어 봤다가 첫사랑 가오리의 근황을 엿본다. 결혼해 애를 낳고 살며 평범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날 사토는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다. 사토는 공허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2011년, 사토네 회사는 좀 더 큰 곳으로 이사를 왔다. 회사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만나는 자리도 대충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여자친구에게 다음을 약속한다. 2008년, 회사는 커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바쁜 건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사토는 그저 버틸 뿐이지만 가장 친한 동료 세키구치는 그만둬 버린다. 

 

1995년까지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는 사토의 기억, 그 끝엔 가오리가 있다. 펜팔로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 수줍게 만나서 열렬히 사랑하며 사귀고 당연한 듯 헤어졌다. 평범하기만 했던 사토는 평범한 걸 극구 멀리하는 특별한 가오리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평범해지고 말았나 보다. 그런 가오리도 시간이 지나 평범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

 

이뤄졌든 이뤄지지 않았든 누구나 어떤 식으로 나름대로 첫사랑의 기억이 있을 테다. 그 강렬함이 인생의 파장에 주는 진폭은 각기 다를 텐데, 영화 속 사토의 경우 엄청난 듯싶다. 단순히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그때 그 시절을 한없이 추억하며 현실 도피를 위한 시공간으로 활용하기까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개념이 정립되어 버린 것이다. 

 

그건 바로 '평범함'을 멀리하고 혐오하는 자세이자 태도인데, 가오리가 스스로의 일거수일투족에서 평범함을 거부하고 또 사토에게도 그 사상을 전도하려 할 때 사토는 오롯이 받아들여 완전히 정립시키고 말았다. 하여, 그는 25년이 지난 후까지도 평범함을 거부하는 마음과 평범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싸우다가 지쳐 버렸다. 평범함과 특별함은 다른 누가 아닌 내가 정해야 맞는데 말이다. 

 

비단 사토뿐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네가 살아가면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이와 같다. 사람 대 사람으로 동등하게 사랑하고 존중하는 게 아니라, 그 또는 그녀처럼 되고 싶어 따라하고 인정받고자 노력하다가 실패했을 때 헤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롤모델로서 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것도 아니다. 자칫 인생의 다음 수순으로 가는 데 큰 부담 또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또는 그녀에게 머물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제목에서부터 암시한다. 

 

정체되었지만 성장한 인생

 

들여다보면,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첫사랑에 관한 로맨스 영화로만 볼 수 없다. 한 남자의 정체된 성장 영화로 볼 수도 있는 바, 첫사랑의 강렬함을 인생 전반에 핵심으로 받아들였기에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언젠가 비로소 깨달을 테니, 비록 정체되었지만 성장은 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가 하면, 중간중간 몇 년씩 거슬러 오를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장에서 일본이 처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걸 볼 때 사토의 인생과 일본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희망적이어야 하는 게 일반적으로 바라는 바일 텐데, 영화에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더 희망적이다. 사토에겐 첫사랑의 기억으로 거슬러 갈수록 긍정적이라는 걸 보여 줄 테고, 일본에겐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점에 가깝게 거슬러 갈수록 긍정적이라는 걸 보여 줄 테다. 

 

영화는 큰 임팩트 없이 잔잔하게 그리고 꽤나 고독하게 흘러가 특별한 인사이트 없이 끝나지만, 진한 여운이 남는다. 첫사랑을 추억하거나 지난날의 시간들에 빠져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 왔는가'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에게 자연스레 던진다.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엔 힘든 면이 있지만,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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