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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부캐의 원조? 환자인가, 사기꾼인가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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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포스터. ⓒ넷플릭스

 

1977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어느 날부터 여학생들이 사라졌다.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처해야만 하는 일, 결국 세 명이 사라지곤 범인이 잡혔다. 그는 여학생들을 성폭행하고 납치해 감금했는데, '빌리 밀리건'이라는 이름의 22살 남자였다. 그런데, 범인이 심상치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빌리 밀리건이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해리성 정체 장애 즉, 다중 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법정이 인정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는 처음에 10명의 인격이 있다고 했는데, 조사가 더 진행되면서 총 24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라고 하지만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는 45년 여 전 일어난 믿기 힘든 이야기,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다룬다.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는, 그가 체포된 후 오래 지나지 않아 당대 최고의 작가 중 하나였던 대니얼 키스에 의해 몇 년 후 책으로 나왔고 가장 최근으론 2017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범죄자

 

현대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자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최초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보니와 클라이드', 홀로코스트의 최종 책임자 '아돌프 히틀러', 캄보디아 집단학살 '크메르 루주 정권', 9.11 테러의 최종 책임자 '오사마 빈 라덴' 등 이름만 들어도 악명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은 정도이다. 그런데, 정식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빌리 밀리건이 이들에 밀리지 않는다. 유명세에서 말이다. 더 논란적이고 전례 없는 경우일 수 있다. 

 

'부캐'라는 말, 이제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상한 말이 아니다. 요즘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어느덧 필수가 되어 가고 있다. 부캐를 들여다보면,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이 나온다. 김난도 교수가 지난 2019년에 나온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2020년을 이끌 트렌드들 중 제1로 뽑은 바 있는데, '다중적 자아'라는 뜻이다. 상황에 맞게 가면을 쓰고 다양한 정체성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부캐가 자발적·주체적이라기보다 시대적, 현실적 요구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빌리 밀리건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널리 알려진 바로는, 그에겐 불과 3살 때부터 3명의 또 다른 인격이 있었다. 그의 엄마는 몇 번의 결혼과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는데, 여덟 살 무렵부터 양아버지 챌머가 그에게 성적 학대와 고문에 가까운 아동 학대를 저질렀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또 자신을 보호하고자 수많은 인격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죄 판결 이후

 

빌리 밀리건을 검사한 의사들은 '그'가 저지른 강도 행각과 강간 행각이 각각 폭력적인 성향의 남성 인격 '레이건'과 레즈비언 성향의 여성 인격 '에이달라나'가 벌였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범인을 두고 증언한 특정적인 모습이 체포된 빌리에게 보이지 않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국선 변호사 콤비 게리와 주디의 치밀하고도 정력적인 변호도 있었다. 결국 빌리 밀리건은 10년간의 치료 감호와 무죄 판결로 풀려났다. 

 

우리가 그나마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이다.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0년 치료 감호 판결이 나왔으니, 정신병원 등에서 다중 인격 장애를 치료했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총 4부작으로 이뤄진 작품은, 후반 2부작을 할애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빌리 밀리건의 행적을 추적한다. 수많은 정신건강 전문의와 심리학자 들과 함께 빌리 밀리건의 형과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도 출연해 적극적으로 인터뷰하며 작품의 질을 높였다. 

 

빌리는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 어떤 경우라도 감옥에 간 적이 없다. 악명 높다는 정신병원들만 옮겨 다녔는데, 그 사이사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범죄를 저질렀고 또 저질렀다고 의심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치료 감호소에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었다가 기소당하기도 했고 정신병원에서 탈출해 한 남성의 장애 연금을 착복하기도 했으며 그가 실종되자 그를 살해해 유기시켰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의 탈출을 도운 친구가 찍은 카메라로 병원의 가혹함을 폭로하려는 용기(?)도 보였다. 

 

환자인가, 사기꾼인가

 

작품은 빌리 밀리건 사건의 논란에 정면으로 파고들려는 의지를 보인다. 빌리가 체포된 1977년, 불과 4년 전에 16개 인격을 가진 한 여성의 이야기 <시빌>이 출간되어 큰 파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년 전인 1976년엔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까지 희귀했던 다중 인격 장애를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품이다. 바로 그 <시빌>의 공동판권을 가지고 있는 의사이자 <시빌>의 실제모델을 치료했던 의사 윌버 박사가 빌리의 무죄 판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소견서를 써 준 것이다. 

 

아다리가 딱딱 맞아떨어진다고 할까. 다중 인격 장애 열풍이라고 할 만한 시대 상황에서, 자그마치 24개의 인격을 가졌다는 이가 나타나 누구도 믿을 수밖에 없는 다중 인격적인 면모를 보이질 않나, 딱 그때 다중 인격 장애의 선구자이자 당대 최고의 권위자인 이가 나타나 검사한 후 판정해 소견서를 써 주질 않나. 작품은 정신건강 전문의와 심리학자 들의 의견을 통해 그 모습이 여론과 의학계의 합작품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빌리 밀리건 사건의 알려지지 않는 또 다른 면모이다. 

 

빌리 밀리건은 24개의 인격을 가졌을까, 혹자의 말대로 아카데미상을 탈 만한 연기를 펼친 희대의 사기꾼인가. 유행에 편승하려는 여론과 유명세를 타려는 의학계의 합작으로 빌리 밀리건이 이용당한 것일까. 그런데, 정작 희생자이자 피해자의 면면은 어딨는가? 엄연한 중범죄를 몇 차례 저지른 빌리 밀리건에 대해 말할 때 피해자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빌리 밀리건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작품은 다중 인격 장애로 인생이 망가졌다는 빌리 밀리건이 아닌 피해자에게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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