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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로스의 행복한 사고 그리고 배신과 탐욕에 대하여 <밥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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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밥 로스> 포스터. ⓒ넷플릭스

 

작년부터 SNS를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콘텐츠가 있으니 바로 '밥 로스'이다. 1990년대 EBS를 통해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며 많은 이에게 '어때요, 참 쉽죠?'라는 말로 각인되어 있는 있는데, 그 특유의 편안한 목소리가 마치 ASMR를 듣는 것 같다고 재평가된 것이다. EBS에선 작년에 <그림을 그립시다>를 25년여 만에 부활시켜 지금까지도 계속 방영하고 있다. 

 

언제 들어도 편안하고 긍정적인 힘이 나는 그의 목소리와 말, 그보다 그를 특정짓는 건 30여 분 만에 환상적인 그림을 완성시키는 그림 기법일 것이다. 일명 'wet-on-wet' 기법으로 한국어로는 덧칠 기법으로 불린다. 유화 물감을 칠한 후 마르기 전에 물감을 덧칠하는데, 정교함보단 우연에 기대해 빠르게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인상화 화가의 작품을 생각하면 될 텐데,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 하겠다. 더불어 그의 외모, 즉 폭탄머리나 뽀글머미로 불리는 아프로 헤어가 상징적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이하, '밥 로스')은 밥 로스 살아생전의 행복했던 이야기들과 죽고 난 후 이어진 지적재산권 논란과 분쟁을 낱낱이 다루고자 했다. 밥 로스라는 사람의 개인 행적도 들춰지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큐멘터리의 주요 구성이 관계자들 인터뷰로 이뤄지는 바, 이 작품의 경우 관계자가 많이 않았고 또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사건사고들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지 중심이 흔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밥 로스는 누구인가

 

밥 로스가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 얘기부터 하는 게 맞겠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사랑했다, 다친 동물들을 돌보길 잘했고 또 좋아했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을 했는데, 사고로 새끼 손가락을 잃었다. 훗날 화가로서 일하는 데 큰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무도 그가 새끼 손가락을 잃었는지 모르겠는가. 

 

19살 나이로 공군에 입대해 부사관으로 20년 동안 일했다. 그중 절반가량을 알래스카에서 복무했는데, 부업 삼아 알래스카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림 수업도 받았다. 결국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그림을 전업으로 삼고자 한다. 돈을 아끼고자 머리를 길러 파마하고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모습으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전역 후 이런저런 기법으로 그림 연습을 하고 또 미술학원도 차려 전임교사로도 일하다가 'wet-on-wet' 기법의 대가 윌리엄 알렉산더를 알게 된다. 이후 알렉산더의 강연을 대신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알렉산더를 만나러 온 코왈스키가 그의 강연을 보고 난 후 파트너십을 제안한다. 아들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있던 코왈스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치유를 해 준 밥 로스, '대중스타'로 가는 길목이었다. 

 

밥 로스의 뒷 이야기들

 

정작 자신은 잘 모르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이가 아주 잘 아는 대중스타로의 길을 걸어가는 밥 로스, 전작 CIA 출신으로 인맥과 더불어 사업 감각을 발휘해 밥 로스를 대중스타로 만든 코왈스키 부부. 그리고 밥 로스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스티브 로스, 자신의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시키며 훗날 자신을 이을 인재라고 소개하기까지 하는데 정작 스티브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밥은 천진난만한 구석도 있었다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도 있었다고 한다. 애초에 전략을 확실히 세운 다음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당시 경쟁 프로그램들과의 구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자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아프로 헤어가 돈이 없어서 그대로 둔 게 아니라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정착시킨 것이고 목소리도 바꿔서 정착시킨 거라는 말이다. 

 

작품에서 인터뷰하는 밥 로스의 핵심 주변인들 말을 들어 보면, 그가 침대 위에서 속삭이는 듯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핵심타깃인 성인 여성에게 "부드럽게, 아주 살짝 터치하면서, 캔버스를 어루만져요"라고 말하면서. 작품은 더불어 밥이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했다는 점과 스포츠카 마니아였다는 점도 부각시킨다. 급기야 밥의 아들 스티브는 밥과 코왈스키 부인이 불륜 관계였다고까지 말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본인 아닌 주변인들의 말만으로 판단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런가 하면, 물증 아닌 심증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으니 밥을 마치 성인군자처럼만 생각했던 걸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게 다 뭔 소용인가, 그의 프로그램이 주는 '치유'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밥 로스의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

 

밥 로스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관계는 삐그덕거린다. 인터뷰를 진행한 밥의 핵심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돈'만 중요한 코왈스키 부부의 전략을 밥이 탐탁치 않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끝없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걸 원치 않았다. '정도껏' 하는 걸 원했을 테다. 하지만 코왈스키 부부는 자신들의 사업 수완과 밥 로스의 콘텐츠 파괴력을 놓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절실히 필요했었던 밥 로스와 코왈스키 부부, 미묘하게 금이 갔던 관계가 분쟁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밥 로스의 잘못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살아생전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두 명에 나눠 주는데, 51%를 이복형제에게 49%를 아들에게 줬다. 그런데 이복형제가 51%의 권리를 모두 코왈스키 부부에게 양도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코왈스키 부부에게 밥 로스 상표권이 가 버리고 만다. 지금까지도 밥 로스 주식회사는 연간 수백 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꺼려 했던 스티브는 2018년 코왈스키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가 이듬해 패소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스티브의 행적이다. 밥이 죽고 난 후의 행적 말이다. 이를테면 49%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충분히 시행했는지에 대해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다짜고짜 2018년 소송부터 들이 댄 것이다. 그리고, 밥 로스만큼 많이 이름이 나오는 코왈스키 부부는 정작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 그들의 기억과 생각과 입장을 전혀 들어 보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다. 

 

밥 로스의 행복한 사고(밥 로스 曰, "우리는 실수한 게 아닙니다. 단지 행복한 사고가 일어난 거죠")로 시작해 밥 로스의 지적재산권과 상표권을 둘러싼 배신과 탐욕의 분쟁으로 끝난 작품, 양쪽의 말을 충분히 들어 봐야 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구성임에도 지극히 한쪽의 얘기밖에 듣지 못하니 아쉽다. 그럼에도, 밥 로스가 주는 행복한 긍정 또는 긍정적인 행복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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