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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는 어떻게 의심받지 않고 살인을 이어 갈 수 있었나? <살인자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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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살인자의 기억: 데니스 닐슨 테이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살인자의 기억> 포스터. ⓒ넷플릭스

 

1983년 우중충하고 추웠던 어느 날, 영국 런던 북부의 크랜리 가든스 머즈웰 힐 아파트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변기가 막혀서 수리공을 불러 배수관을 뚫으려 했는데, 맨홀을 열고 보니 엄청난 양의 살점과 뼈가 있었던 것이다. 세입자들 말로는 그것들에 유독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꼭대기 층 남자였다. 또한 전날 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가 바로 꼭대기 층 남자였다. 

 

경찰은 바로 꼭대기 층 남자를 중심으로 조사에 착수했고 그가 취업 상담소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편, 배수관의 살점과 뼈가 사람의 것이라는 병리학자의 확인도 있었다. 그때 꼭대기 층 남자가 현장으로 와서는 경찰들을 자기 집으로 들인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 오는 끔찍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곳엔 또 다른 시체가 있었고, 꼭대기 층 남자 즉 '데니스 닐슨'은 현장에서 체포된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로 불리는 데니스 닐슨은 그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체포되고 말았는데, 진짜 얘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살인자의 기억: 데니스 닐슨 테이프>는 오랫동안 미공개였던 데니스 닐슨의 개인적 육성 녹음 카세트테이프를 사상 최초로 공개하며 그 연쇄 살인의 진상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 한다. 그는 어떻게 5년간 숱한 살인과 공격을 행하면서도 누구한테도 의심받지 않은 채 빠져나갈 수 있었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고,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기다

 

군인이었던 적도 경찰이었던 적도 있던 데니스 닐슨, 취업 상담소로 일하며 주위 사람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상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그가 체포되었을 때 그의 엄마가 사건을 두고 피해자에게 사죄한다든지 아들을 잘못 키웠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왜 아무도 아들을 의심하지 않았냐고' 주위 사람들을 질타했는가 말이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이성 아닌 동성에게 관심이 가고 또 사랑한다는 걸 알고 좌절감과 두려움과 수치심을 참기 힘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외로웠고 말이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모친과 조부모 손에서 자랐는데, 특히 그를 잘 챙겨 줬던 분이 조부였다. 그런데 그가 6살 때 조부가 돌아가시고,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얻는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긴 것. 

 

그 때문이었을까, 다른 어떤 것 때문이었을까. 닐슨은 성적 도착증의 한 종류인 '네크로필리아' 증세를 보인다. 그의 살인행각 중 가장 눈에 띄지만 한편으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다. 이 정도로 유명한 연쇄살인범이라면, 누구도 가지지 못한 필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기에, 깨끗이 씻긴 시체와 함께 TV를 보거나 식사를 했고 자위를 했으며 성관계까지 했다. 

 

1980년대 영국의 사회병리적 문제가 초래한 피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한 바는 데니스 닐슨의 외로운 삶과 엽기적 살인 행각 등에만 있지 않다. 확실히 말하자면 닐슨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15~16명에 달하는 20대 전후의 남성들을 죽였는데, 1978년 말에서 1983년 초에 이르기까지 채 5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이었다. '외로움'이라는 강력하다면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범행 동기야 그렇다 치고, 그는 어떻게 그들을 죽였고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의 행방불명을 아무도 알아 채지 못했던 걸까? 

 

닐슨이 노린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략 답이 나온다. 이른바 '렌트 보이'로, 1980년대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던 영국 런던에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시골 청년들이 성인 남자를 대상으로 몸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들은 런던에 연고지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했던 바, 닐슨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해 그들에게 잘해 주고 그들을 하나씩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선 잠을 재운 후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야말로 현대사회의 사회병리적 문제가 초래한 치명적 구멍을 한가운데를 정조준해선 과녁을 정확히 꿰뚫어 버렸다. 그 자신 또한 동성애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병리적 문제에 피해를 봤었던 바,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여, 여타 범죄 다큐멘터리에서 경찰의 존재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히 크게 부각되는 것과 다르게 이 작품에선 경찰의 역할과 존재 가치가 미미한 수준보다 못하다. 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이례적인 엽기 살인 행각보다 유념해야 할 건, 혐오와 무관심

 

데니스 닐슨은 체포 과정에서도, 체포 이후에서도 순순하기 짝이 없게 받아들였으며 나아가 자신의 범죄 행각을 소상히 낱낱히 밝히려 한다. 그런데, 시체를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선 기억나는 대로 전하려 하지만 누구인지는 전하지 못한다. 그건 경찰도 마찬가지다. 그가 살해한 이들 중 절반가량인 7명의 신원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생전엔 혐오의 시선만을 두고 사라지거나 죽었을 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동성애자 시골 청년들이었다.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선진화된 사회를 만들고 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거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끝맺는다. 비록 이 작품이 희대의 연쇄살인마 데니스 닐슨의 미공개 육성 녹음을 최초로 공개하며 화제성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주인공은 절대로 닐슨이 아니다. 악마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그에겐 관심이 없다, 그가 죽인 것도 모자라 이름조차 사라져 버린 이들에게 관심을 둬야 한다. 

 

당시 순경이었던 캐런 헌트의 섬뜩한 통찰을 들어 보자. 비록 1983년 영국 런던에 해당되지만, 지금 여기 한국 서울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곳의 진면모, 추악한 이면이 이 한마디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쇄 살인마의 이례적인 살인 행각보다 더 유념하고 지켜 봐야 할 건 바로 혐오와 무관심이 아닐까. 

 

"장담하는데, 크랜리 가든스에서 시신들이 배수관에 끼지 않아 닐슨의 아랫집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몇 년은 더 살인을 저질렀을 거예요. 살인이 중단된 건 닐슨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불편을 끼쳤기 때문이에요. 피해자들과는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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