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수업시대>
인도의 전통음악이자 고전음악 '라가', 수천 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고자 나이 먹은 스승은 훈련에 매진하며 어디든 달려가 노래를 부르고 또 젊은 제자들을 가르친다. 스물네 살 먹은 샤라드도 그중 하나로, 가족을 뒤로 하고 연애도 뒤로 하며 경제 활동까지 뒤로 한 채 라가 연구와 훈련에 매진한다.
엄격하고 실력 출중한 스승에게 철저하게 가르침을 받으며 나날이 향상된 모습을 보이지만, 샤라드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고 또 자괴감에 빠진다. 다른 제자들은 다 잘하고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한편, 라가를 계속 하며 살아가는 게 맞나 싶은 근원적 고민에 휩싸인다. 아무도 전통음악을 알려 하지 않고 무명가수를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점차 삶은 고독해지고 가난에서 벗어날 길도 보이지 않으며 언제쯤 재능이 꽃피울지 알 도리가 없다. 밖에선 전통음악 아닌 음악들이 대세를 이루고, 안에선 샤라드에게 유일한 힘이자 길이 되어 주는 스승이 쇠약해져만 간다. 샤라드는 이 지독한 현실을 타파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타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전통음악가의 고민 어린 여정
예술을 한다는 것, 비주류이자 지금 당장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고 관심받지 못할 전통의 예술을 한다는 것. 그보다 더 고독한 일은 없을 테다. 가난과 무관심 등의 예술 바깥의 영역이자 현실적인 사항 등은 물론이거니와 영원에 가까운 훈련과 탐구와 정진의 과정이라는 예술 안의 영역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시시때때로 당도해 괴롭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수업시대>는 인도 전통음악 라가를 두고 한 음악가가 고민하는 여정을 그렸다. 지구상 그 어떤 나라와 지역보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도'이지만 현재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발전해 나가기도 한다. IT도 세계 최고, 영화도 세계 최고가 아닌가. 이 영화를 통해, 전통음악 라가뿐 아니라 '인도'라는 나라의 고민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차이타니아 탐하네 감독의 전작 <법정>에 이어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 출품되었는데,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법정>이 베니스에서 오리종티 작품상와 미래의 사자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던 만큼, 그의 작품들이 앞으로도 베니스 영화제를 화려하게 수놓는 데 크게 일조를 할 게 분명하다. 베니스 영화제의 최근 행보, 즉 영화를 보는 눈이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를 압도하고 있는 만큼 <수업시대>를 향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가르침 받는 이의 고행
영화 <수업시대>의 원제는 'The Disciple'로, 거두절미하고 '제자'라는 뜻을 가진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이 영화에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배우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훈련하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는 의미가 있겠다. 하여, 제자가 주체로 비춰지지 않는 듯한 번역 제목 '수업시대'는 영화의 내용을 정반대로 해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못 지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제자의 고행이다. 가르침을 받는 이의 고행이다. 끊임없이 평가를 받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이의 고행이다. 왜 그런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내가 선택한 길이오 내 사명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그런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민하고 훈련하고 평가받고 고치고 수행하는 행위를 무한으로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고행의 대상이 아무도 관심 없어 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무시하고 천대하기까지 하는 전통음악이다. 평생 동안 현실의 모든 걸 뒤로 한 채 오로지 전통음악 하나에 정진해도 높은 곳에 다다를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담보하고, TV에선 매일같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퓨전 전통음악이 선보여 많은 인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스폰서 잘 만난 전통음악가들은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인기를 받는 걸 보면서도 그 길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이 길을 계속 가는 게 맞는가' '내가 틀린 건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전통과 행복, 무엇이 우선일까
<그래비티> <로마>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알폰소 쿠아론이 총괄 프로듀서이자 멘토로 참여해 차이타니아 탐하네 감독에게 많은 조언을 전했다고 알려지는데, 잔잔하지만 탄탄하고 일면 날 서게 삶의 단면을 보여 주는 면모가 닮아 있는 것 같다. 극중 인물을 통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는 한편, 영화 자체로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려는 것 말이다.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대신 책임져 주지 못한다. 하여, 내가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지지부진하고 두렵고 슬프기까지 할지 모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끝까지 밀어붙일까,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할까, 타협할까, 포기할까. 감히 절대 내 한 몸 희생하라고 하지 못하겠다, 가급적 내 한 몸 지켜 가면서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수 천 년의 전통을 지키려는 샤라드에겐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관점을 달리하고 한 발짝 떨어져 거시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제아무리 수 천 년 동안 지속되어도, 핵심과 정수는 유지하되 다른 것들은 수없이 바뀌었을 게 분명하다. 핵심과 정수를 지키는 방법 말이다. 샤라드도 제 한 몸 지키고 또 최대한의 행복을 가져 가면서 전통의 핵심과 정수를 이어가는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전통 그 자체가 아닌 사람이 아닐까? 전통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갈 사람이 없다면, 전통이 무슨 소용이고 무슨 의미를 가질까? 사람이라는 주체가 우선 바로 서야 사람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 전통이 바로 설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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