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주피터스 레거시>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메이저 코믹북 출판사를 사들인 건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워너브라더스가 DC를 인수했고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했다. 결과는 대성공, DC와 마블을 코믹북 출판사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슈퍼히어로 영화 세계관의 일환으로 알고 있다. 2017년, 넷플릭스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믹북 출판사 밀러월드를 사들인 것이다. 밀러월드는 <킹스맨> <킥애스> <로건> 등의 원작자로 유명한 마크 밀러가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본래 DC와 마블 콘텐츠들을 공급하고 있었는데 머지 않아 더 이상 공급하지 못할 걸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워너브라더스는 HBO MAX를 만들어 DC 콘텐츠를 가져갔고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를 만들어 마블 콘텐츠를 가져갔다. 매우 늦었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채널력과 작품성과 창작력 등을 앞세운 넷플릭스가 이 양대 구도를 깨트릴 수 있을까?
4년 만에 나온 넷플릭스와 밀러월드의 첫 번째 합작품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주피터스 레거시>가 공개되어 시험대에 올랐다. 마크 밀러와 프랭크 콰이틀리가 지은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기존의 슈퍼히어로물과는 확실히 결을 달리한다. 90여 년간 인류를 지켜 온 슈퍼히어로 1세대와 그들을 이어 앞으로 인류를 지켜 내야 하는 슈퍼히어로 2세대의 관계를 그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세상을 지키는 '원칙'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한편, 슈퍼히어로 1세대의 탄생을 그린다.
세대 갈등을 넘어선, 원칙과 신념의 논쟁
'유토피언'을 중심으로, 그의 아내와 형 그리고 친구와 다른 두 명까지 6명이 슈퍼히어로로서 '더 유니언 오브 저스티스'를 결성해 지난 90년간 인류를 지켜왔다. 대원칙은 하나, 살상하지 않는다는 것. 1세대는 대원칙을 직접 만들고 지켰지만, 대립 끝에 스카이폭스가 배신하고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그러곤 그들의 최대 적이 되었다.
와중에 빌런 '블랙스타'가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1세대와 2세대가 총출동해 맞섰지만, 2세대에서 3명이나 죽고 유토피언도 죽을 위기에 처하자 유토피언의 아들 파라곤이 대원칙을 위반하고 블랙스타를 죽여 버린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에서 파라곤이 행한 일, 유토피언은 아들을 질책하고 누군가는 흔들리며 누군가는 유토피언과 더 유니언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세대 갈등을 넘어선, 원칙과 신념을 사이에 둔 논쟁의 끝은 어디일까.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한편, 1929년 대공황 직전까지 큰 철강 회사를 일구고 있던 셸든, 월터 형제와 아버지 삼부자는 대공황이 들이닥치자 크게 흔들린다. 와중에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결국 회사는 넘어가고 만다. 아버지가 죽는 걸 눈앞에서 본 셸든은 죽은 아버지의 환각을 보며 수시로 발작하는 등 미처간다.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을 모아 어디론가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미처 버릴 것이다. 과연 그곳은 어디이고 왜 가야 하며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사람들이 따라와 줄까?
다채로운 이야기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또 세상을 지켜야 할 의무도 지닌 슈퍼히어로도 유니폼을 벗으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똑같이 먹고 자고 싸고 놀고 사랑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자식이 있으면 자식 걱정으로 바람 잘 날 없을 테고 말이다. <주피터스 레거시> 속 유토피언과 레이디 리버티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류를 구하고 돌아와서는 아들 브랜든과 딸 클로이 걱정으로 이마에 주름을 구긴다. 자신들만큼 실력과 신념이 따라와 주지 않는 브랜든, 아예 집을 나가 모델 일을 하며 슈퍼히어로 집안 욕은 다 먹고 다니는 클로이.
'바뀌지 않을 대원칙을 두고 주어진 힘으로 일을 하는 게 뭐 그렇게 힘들 일인가?' 하고 생각하는 윗 세대, '너무나 위대하신 어른들의 뒤를 잇기엔 나는 너무 부족해, 우린 이 시대에 맞는 원칙을 새롭게 세우는 게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아래 세대. 아래 세대가 못마땅하고 걱정되는 윗 세대, 윗 세대가 부담스럽고 답답한 아래 세대.
'원칙'을 둘러싼 세대 갈등과 신념 갈등 그리고 막강한 권력자의 '힘'까지 나아가는 이야기들이 다채롭다. 세상을 한순간에 없애 버릴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 힘을 오로지 선한 곳에만 쓰되 살상 불가의 절대선에까지 다다른 원칙,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입장에선 신뢰와 믿음이 가지만 그들 내부의 입장에선 한없이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힘을 쟁취했던 1세대가 만들고 또 받아들인 원칙은, 힘이 주어진 2세대에겐 통용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는 비단 슈퍼히어로의 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명에서 해당된다 하겠다.
거대한 세계관의 시작
작품은, 꽤나 무거운 주제를 둘러싼 논쟁이 주를 이루다 보니 슈퍼히어로물에 기대하는 시원하고 거대한 액션이 자주 비추진 않는다. 그렇다고, 꽤나 무거운 주제라는 것이 시대정신을 정면에서 다루며 그 자체에 치열함이 담보되어 있지도 않다 보니 지루할 부분이 눈에 띈다. 하여, 선택한 게 슈퍼히어로 1세대가 시작되는 과정이다.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의 끝없는 교차 편집으로 지루함을 덜고 그 자리에 궁금증을 채워 넣으려 한 것이다. '미스터리가 가미된 모험'이라는 장르로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 작품은 앞으로 계속될 <주피터스 레거시> 시리즈의 거대한 세계관을 개관하는 정도로 비춰질 요량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지루하지 않게 일면 굉장히 색다르게 즐길 수 있었다. 기존의 수많은 슈퍼히어로물과 지금도 수없이 많은 채널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다양한 슈퍼히어로물 사이에서 이 작품만의 특이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슈퍼히어로물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데, 그래서 이 작품을 골랐고 이 작품이 괜찮았나 싶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해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점이 어필되어 이른바 초반러쉬는 성공할 것이다. 공급물도 많지만 수요층이 워낙 방대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본 사람들이 타인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지는 의문이다. '색다르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뭐 이래?'라고 생각할 요량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서를 붙여 추천해 본다. 기존의 슈퍼히어로물에 질릴 데로 질렸다, 보다 우리네 일상과 맞닿아 있는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 시대정신과 긴밀하게 소통하기보다 철학과 신념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논쟁하는 걸 원한다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하여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슈퍼히어로물에서 과감히 탈피해 이 작품을 들여다보는 게 좋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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