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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DC 확장 유니버스를 재정립, 재배열, 재생해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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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새벽의 저주>로 데뷔하자마자 좀비물 붐을 일으키며 완벽한 출세길로 직행한 잭 스나이더, 이후 <300>으로 연타석 홈런을 치며 할리우드에 영상미 표현주의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명실상부 거장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 하지만 이후 만든 사이즈 큰 작품들이 연달아 실패한다. 좋은 평가를 받아도 실패, 어중간한 평가를 받아도 실패, 최악의 평가를 받아도 실패. 그러고 나서 새롭게 시작되는 DC 확장 유니버스에 편입되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300>부터 시작된 워너브라더스와의 협업이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그렇게 연출한 작품들이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였고 기획에 참여한 게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쿠아맨>이었으며 제작을 맡은 게 <원더우먼>과 <원더우먼 1984>였다. 대체로 흥행에선 성공했고 평가에선 극과 극을 오갔다. 와중에 그에게 크나큰 일이 닥쳤는데, 2017년 <저스티스 리그>를 진행하던 중 20살에 불과한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제작을 강행했지만 곧 한계에 다다랐고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후임으로 온 이는 다름 아닌 <어벤저스>의 조스 웨던 감독, 누가 봐도 최고의 선택이었을 테지만 막상 결과물을 받아들고 나니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기존의 개봉일을 강행한 워너, 시간이 많지 않았던 조스 웨던, 제대로 조율도 하지 않은 채 3시간 가까이 되는 작품을 이러저리 처내 2시간 정도가 되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를 만들었다. 공개된 영화의 3/4이 조스 웨던 재촬영분이며, 조스 웨던이 온전히 다시 쓴 각본이었다고 한다. 이후 팬들의 '잭 스나이더 컷'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계속되었고 결국 워너는 2020년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공개를 천명했으며 2021년 드디어 공개되었다. 

 

저스티스 리그를 규합해 악의 세력을 막아라!

 

둠스데이와의 결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슈퍼맨, 그가 죽으면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은 마지막 포효가 지구 곳곳에 잠들어 있던 '마더박스'를 깨운다. 마더박스는 상자 그 자체가 힘이자 생명을 가진 우주 최고의 기계로, 옛날 옛적 우주 빌런 다크사이드가 지구를 침공해선 나뉜 세 개의 마더박스를 하나로 합쳐 그 힘으로 우주를 정복하려다가 인간족과 아틀란티스족과 아마존족의 합공에 막힌 적이 있다. 마더박스 세 개는 세 종족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다시 깨어났고, 다크사이드의 막강한 부하 스테픈울프가 세 종족의 심장부를 공격한다. 

 

마더박스가 하나둘 스테픈울프의 손에 들어가는 사이, '배트맨' 즉 브루스 웨인은 '원더우먼' 즉 다이애나와 뜻을 같이하곤 영웅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슈퍼맨'이 없는 지금, 공동의 적에 맞서 영웅들의 힘을 합하지 않고선 막을 재량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플래시', 이 세상 모든 디지털을 완벽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이보그', 땅과 물 양면에서 최강의 힘을 자랑하는 '아쿠아맨'을 모은다. 하지만, 쉽게 모아지지 않는 게 영웅들의 이치 아니겠는가. 

 

세상을 구할 이유가 딱히 없는 영웅들의 사연에 이유를 불어넣는 배트맨과 원더우먼, 문제는 지구 최고의 영웅들을 모아도 스테픈울프와 그의 수하들 파라데몬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마더박스의 강력한 힘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물질을 재배열하고 재생하고 복원할 수 있다는 마더박스가 아니던가. 그렇다는 건, 슈퍼맨을 되살릴 수 있다는 얘기... 과연 우리 영웅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스테픈울프의 무리들, 그리고 다크사이드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되살린, 고전적인 철학과 어두운 분위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들을 섭렵하는 게 좋다. 즉, 주지한 잭 스나이더의 작품들 말이다. DC 확장 유니버스가 시작된 이래로 그가 참여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영화판을 넘어 21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이 된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DC 확장 유니버스인 만큼 상대적인 비교로 필자를 비롯해 본 사람이 그리 많진 않을 터 잭 스나이더는 이 영화에서 세계관과 캐릭터와 분위기를 세심하게 공들여 보여 주려 한다.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따라 마지 못한 듯 공개된 영화이지만, 결과물은 '지금까지의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들은 잊어라, 이 영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롭게 시작된다'라는 천명이나 다름없다. DC 확장 유니버스를 시작하고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공과 실패를 맛본 '잭 스나이더', 무엇이 문제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마블의 최강점은 21세기적 철학과 유머와 스토리의 총집합이 아닌가 싶다. 너무 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가볍기까지 하지만, 공유하고 함께 알며 따라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말이다. 영화에서만 머물지 않고 문화와 속속들이 융합하는 콘텐츠가 된 이유이다. 반면, DC의 최강점이라 하면 고전적인 철학과 어두운 분위기라 하겠다. 비록 영화에만 머물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고 있을 때만큼은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동안엔, 영화판과 시대상 그리고 문화와 팬덤까지 선점한 마블을 보고 안달이 났는지 고유의 특장점을 조금 또는 완전히 버리고 따라하려 했던 것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로 돌아온 듯하다.

 

재정립, 재배열, 재생 그리고 복원

 

영화는 철학은 재쳐 두고 세계관과 캐릭터와 분위기를 재정립, 재배열, 재생, 복원해 냈다. 마치 영화 속 마더박스처럼 말이다. 막강하고 어두운 악의 결정체에 맞서 하나로 규합되는 개성 어린 영웅들, 익히 알고 있는 영웅들(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을 제외한 플래시와 사이보그의 과거 서사를 세심하게 보여 주며 전체 서사까지 탄탄하게 했다. 물론 유명한 네 영웅들과 관련된 곁다리 서사들도 촘촘하게 재배열해 자칫 느슨해질 전체 서사를 탄탄하게 했다. 

 

여타 영화들의 2편 또는 2편 반에 이르는 4시간에 다다르는 러닝타임 덕분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워너 측의 특단의 조치일 텐데, 단순히 <저스티스 리그>의 아쉬움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아닌 DC 확장 유니버스의 미래를 재생하고 비전을 복원시키는 일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신작을 내놓기 힘든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재개봉 작이 점점 늘어가는데,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감독판이나 확장판을 개봉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힘겨운 시기에 영웅의 대서사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적격인 작품이었다. 앞으로 또 이런 영웅 대서사가 만들어질 거라는 보장도 또 만들어진대도 많은 이가 찾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선 필요했다. DC는 DC가 잘하고 또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이 작품이 그 길을 제시해 준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이렇게만 하면, 나도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들을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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