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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타의로 시작했지만, 자의로 나아가며 대안적 삶을 성찰하다 <노매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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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등의 출연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던 영화 <이터널스>의 감독이 누군가 하면, 영화를 몇 편 만들지도 않은 중국 출신의 1982년생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다. 비록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활동해 왔지만 말이다. 본래 지난해 2020년 후반부에 개봉 예정이었던 <이터널스>, 하지만 코로나 19로 여지없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2021년을 맞았다. 

 

그 사이 클로이 자오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이자 다른 의미의 기대작이 나왔다. 듣기론 <이터널스>와 이 작품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찍었다고 하는데, 대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주연으로 출연한 <노매드랜드>다. 그녀가 직접 판권을 사서 제작에 나섰고 클로이 자오 감독을 내정했다는 후문이다. 이 작품은 클로이 자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 공개되어 자그마치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토론토 영화제에 공개되어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골든글로브에선 아시아 여성 감독으로선 역사상 최초로 감독상(그리고 작품상도)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에선 작품상과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석권하며 승자가 되었다. 가히 2020년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밴 하나에 의지한 떠돌이 생활

 

2011년 새해 벽두, 석고 보드의 감소로 'US gypsum'는 88년만에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서 공장을 철수시킨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연장선상인 듯하다. 마을을 지탱하던 공장이 사라지고 노동자이자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마을은 망하다시피 했다. 몇 개월 후 엠파이어의 우편번호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펀(프랜시스 맥도맨드 분)도 그렇게 흩어진 노동자이자 주민 중 하나였다. 1년이 지난 그녀는 지금, 남편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은 채 밴 하나에 의지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초거대기업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 일하니 일자리는 안정적인 것 같지만, 크리스마스 대목에 일손이 부족해 뽑은 단기 알바다. 여름이 되면 서부의 국립공원에서 일을 했다.

 

와중에 알게 된 공동체, 광활한 사막 어딘가에 밴들이 모여 생활을 하기도 하는데 밥 웰스가 이끄는 '러버 트램프 랑데뷰'가 그중 하나다. 거기서 린다를 만나고 스웽키를 만나고 데이비드를 만났다. 하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거기까지, 그녀는 살아가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또다시 어디론가로 나서야 했다. 

 

타의로 시작했지만 자의로 나아가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원흉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무너진 삶의 단면을 지극히 담담하게 보여 준다. 여기서 삶의 단면이라는 게, 정치·경제적으로 비판적 시선이 전혀 가미되지 않다시피 한 대안적 삶의 성찰이라는 점이 눈길을 강하게 잡아끈다. '비판'이라는 쉬운 길을 저버리고 '성찰'이라는 어려운 길을 간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홈리스(homeless)'와 '하우스리스(houseless)'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펀은 자신을 홈리스 즉 노숙자가 아니라 하우스리스 즉 집이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와 '집'을 두고, 집이 주체가 되어 나를 얽매이는 게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집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의식주'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들 중 '주'의 개념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경제 위기로 일자리를 잡지 못했거니와 일을 하고 있다 해도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없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게 폭등한 집값을 끌어안을 수 없어 그 결과로 생긴 '노마드' 또는 'RV 라이퍼'라는 개념이지만 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건 타의지만 살아가는 건 자의듯이, 노마드라는 삶의 태도도 시작된 건 타의일지 모르나 살아가는 건 자의일 테다.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바와 이 영화가 위대한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의로 시작된 어쩔 수 없는 치명적 삶의 개념과 태도와 자세 등을 자의로 나아가게 하는 모습 말이다. 

 

다분히 미국적인 영화

 

'삶'이라는 거시적이고 보편타당하며 매우 큰 개념에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아무리 '차박'이니 '#VANLIFE'니 여유롭고 보헤미안적인 낭만 라이프를 영유하려는 개념과는 동떨어진 너무나도 비참하고 힘들고 결코 만만치 않은 나날이라고 해도, 영화가 전하려는 바는 차라리 여기에 가닿아 있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삶 그 자체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공감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영화가 다분히 미국적이기 때문인데, 중국 출신으로 미국 여기저기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온 감독의 시선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듯도 하다.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노마드'라는 삶의 개념은 미국에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남의 삶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또는 존중하려는 태도와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또는 존중하려는 자세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탱하는 개념이 아닌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도 어렵고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노매드랜드>가 많은 이의 로망을 건드렸고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또 과정이나 결과도 다큐멘터리에 매우 가까운데, 굳이 영화로 만든 이유가 있을 테다. '이런 게 노마드의 삶이다'라고 확정적으로 주장하는 게 아니라, '노마드의 삶이 이렇다'라고 그저 보여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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