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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누가 봐도 공감할 하이틴 여성 영화 <걸스 오브 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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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걸스 오브 막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걸스 오브 막시> 포스터. ⓒ넷플릭스

 

록포드 고등학교, 11학년이 된 비비언은 등교 첫날부터 절친 클라우디아와 여학생들을 품평하는 리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기분이 좋진 않은데, 왜 그런지는 알 도리가 없다. 수업 시간, 선생님이 <위대한 개츠비>를 두고 하는 말에 새로 전학 온 루시가 반론한다. '부자 백인 남자가 쓴 부자 백인 남자에 관한 책'이라는 것. 역시 기분이 이상하다. 와중에, 훌쩍 커서 알아 보기도 힘든 세스와 얼굴을 트는 비비언이다. 루시는 미식축구부 주장이자 같은 반 친구 미첼에게서 받은 수치를 그냥 넘길 수 없어 교장을 찾아간다. 

 

집에 와서 대학 지원을 위한 에세이를 쓰는 비비언, 엄마와 대화하던 중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녀는 소싯적 한껏 반항끼를 풍기며 모든 걸 불살라 버릴 듯 여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새삼스레 엄마의 젊은 날 흔적을 찾아보는 비비언, '세상을 바꿀 여성의 혁명적 힘'을 얼핏이나마 목도한다. 다음 날 학교 행사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성차별, 성희롱의 현장을 참지 못하고 피하는 비비언, 집에 돌아와서는 더러운 기분을 풀 곳을 찾지 못해 배회하다가 엄마의 흔적으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인쇄소에 달려 가서 50장을 복사한 그것은 '막시(용기)'라는 이름의 초소형 잡지, 자기가 무엇을 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것들을 화장실에 배치하곤 친구들의 반응을 지켜 본다. 오래 지나지 않아 '막시'는 교내 곳곳으로 퍼지고, 모임이자 단체로 발전하며 교내 운동으로까지 나아간다. 평소 순종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비비언도 그 운동의 핵심 멤버가 되고, 학교에 작은 소용돌이가 퍼지는 듯하다. 비비언은 언제까지 익명으로 '막시'를 펴낼 수 있을까? 그녀의 학교생활을 괜찮을까? 학교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까?

 

누가 봐도 공감할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걸스 오브 막시>는 제니퍼 마티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이틴 영화로, 에이미 폴러가 연출과 조연을 맡아 화제를 뿌렸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2000년대에 SNL에서 크루로 활동하다가 시트콤 드라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메인 주연으로 2010년대 중반까지 활약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메인 주연 '기쁨이'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그녀는 코미디언으로 시작해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과 제작, 성우에까지 활발히 활동했는데, 영상계 활동의 꽃이라고 할 만한 연출까지 섭렵하게 된 것이다. 다재다능한 '끼'를 이번에 어떻게 발산했을지 자못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다분히 여성을 앞세운 듯한 '여성 영화'로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마냥 전형적이지만은 않을 거란 기대가 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를 훨씬 상회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하이틴 영화의 결, 페미니즘 기반의 여성 영화의 결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이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색다르게 임팩트 있게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하이틴 영화이지만 하이틴만을 위한 게 아닌, 여성 영화이지만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어느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게 명백하다. 

 

폭넓은 하이틴 영화, 여성 영화

 

올바름을 지향하고 전하고자 하는 영화에서 메시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수단이자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자못 많다. 주제가 선명해지는 것도 맞고 해야 할 일인 것도 맞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한테는 해악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은가. 그들도 품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으나,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매우 영리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선명하게 전하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에이미 폴러 감독이 해낸 게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훤히 보이는 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재밌고 폭넓기까지 한 어엿한 상업영화의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하이틴 영화의 전형성, 이를테면 학교를 주름잡는 친구들 가운데 찌질한 주인공과 절친의 성장 스토리나 여성 영화의 전형성, 이를테면 여성이 객체 아닌 주체로 극을 이끌어 나가며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의 의한 스토리가 전개되고 또 메시지가 던져진다. 이 영화는 초중반까지 충실하게 하이틴 영화, 여성 영화의 전형성을 따른다. 

 

중반 이후 잡지 '막시'가 출현하고서 루시를 중심으로 모인 모임의 주도 하에 여러 움직임과 운동이 행해지는 것도 매우 전형적이다. 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수순을 매우 이상적으로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밟을 것이다. 근데, 영화는 군데군데 장치를 마련해 둔다. 막시를 만들었지만 딱히 이유 없이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비비언, 엄마의 심한 반대로 잘 참여하지 못하는 클라우디아와 멀어지는 듯한 비비언.

 

물론 비비언은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며 주축 멤버로 최선을 다하지만, 루시처럼 리더의 역할을 하며 찍히지도 않고 클라우디아처럼 막시라는 이름을 등록한 당사자로 찍히지도 않는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처럼 굳이 자신의 일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사실 용기(막시)가 없었던 비비언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계 미국인 클라우디아는 백인 비비언과 어릴 때부터 절친이지만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 다른 차원에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비비언은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연대란 이래야 한다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주요 캐릭터들의 면면으로 드러난다. 백인 여성 비비언, 흑인 여성 루시, 중국계 미국인 클라우디아, 아시아계 미국인 세스, 그리고 백인 남성 미첼. 여기에 휠체어를 탄 백인 여성, 몸매에 관한 뒷말들을 듣는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들이 있다. 백인 남성 선생님과 백인 여성 교장도 있다. 정녕 다양하지만 도식화되어 있는 듯, 또한 자로 잰 듯한 대립 구도를 형성시켜 놓기도 한다. 

 

교과서를 보는 듯한 이 부분이 바로 감독이 영리하게 짜놓은 판이라고 하겠다. 누구 하나 이 캐릭터들과 이어지지 않을 수 없을 테고, 소외될 수 있는 생각과 상황들과도 자연스레 이어지며, 공감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것이다. 핵심 타깃의 범위를 아주 넓힌,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적인 면모이며 '올바른 영화'가 메시지를 잃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이룩했다고 하겠다. 

 

마지막 10분, 영화는 '연대란 이런 것이다'가 아닌 '연대란 이래야 한다'를 명명백백히 보여 준다. 모든 걸 막론하고 한곳으로 모여든 이들이, 한곳으로 수많은 자신을 투영시키는 게 아닌 자신의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사방으로 퍼트리는 모습 말이다. 연대란 목소리들을 한데로 모여 어떻게든 단 하나로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든 수렴할 수 있는 큰 그릇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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