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뮬란>
영화 <뮬란>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90년대 시작해 2000년대를 건너띄다시피 한 후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 큰 성과를 내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 특히 작년에는 <알라딘>과 <라이온 킹>의 기록적인 흥행을 앞세워 역대급 한 해가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첫 타자는 <뮬란>으로 이 시대에 걸맞는 여성 서사물이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악재에 악재가 계속 터진 바, 이 정도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2019년 8월 중순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뮬란>에서 '뮬란' 역으로 분할 유역비가 SNS를 통해 홍콩 경찰 옹호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뮬란 보이콧 운동이 시작되었다. 자그마치 개봉 예정 6개월 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코로나19가 전 세계 특히 미국을 크게 강타한다. 거의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니, 제작배급사로서는 큰 영화일수록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뮬란>은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9월 4일 디즈니+로 공개되었고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그러던 차, 엔딩의 special thanks 부분에 위구르족 인권 탄압과 관련된 단체가 다수 수록되어 큰 물의를 빚었다.
개봉도 하기 전에 영화 외적인 것으로 너무도 큰 타격을 받은 <뮬란>,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내적인 것에선 센세이션하고 크리티컬하며 드라마틱한 통찰과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20여 년 전 애니메이션 <뮬란>이 준 그것보다 나으면 낫지 덜 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함께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아버지 대신 남장하고 참전한 뮬란
중국 고대, 과거 유연족과의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상이군인 화조우에겐 두 딸이 있다. 작은딸 화슈는 평범한 반면 큰딸 화뮬란은 어려서부터 무예가 남달랐다. 남자아이처럼 행동하며 조신하지도 못했다. 커서 시집 갈 나이가 되었을 때, 마을 중매쟁이한테 가서는 딸이자 여자의 미덕인 시집 잘 가는 법을 전수받고자 하는데 큰 실수를 저지르며 실패하고 만다. 그녀 때문에 그녀 집안의 명예는 곤두박질친다.
얼마 후, 옛 패배를 만회하고자 유연족의 추장 보리 칸이 침입한다. 황제는 모든 가족당 한 명의 남자가 출전해야 한다는 칙명을 내리며 대항한다. 뮬란의 가족엔 상이군인 화조우밖에 없었던 바,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한 전쟁터로 갈 준비를 한다. 그것이 집안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뮬란으로선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기에 아버지의 갑옷과 검을 훔쳐서는 집결지로 향한다. 가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굵게 해 남자처럼 보이게 한다. 각고의 훈련을 받는 예비 병사들, 한편 뮬란은 '기'를 숨긴다. 그럼에도 실력과 자질이 월등한 그녀다.
유연족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뮬란은 여지없이 실력을 뽐낸다. 개인의 실력도 좋지만 전투의 전체적 전황을 살피는 데도 탁월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껏 좋아할 수도 기를 펼칠 수도 없다. 여자가 입대를 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거니와 평생에 걸쳐 기를 펼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남자인 척 하는 뮬란이 아닌 본 모습 그대로의 여자로 돌아가는 뮬란인데... 과연 그녀의 앞날은?
한마디로, '실망이다'
영화 <뮬란>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망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을 본 이라면, 원작을 많이 따르려 했는데 원작에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원작을 따르려 했다는데 어떻게 이 모양 이 꼴일 수가 있느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편, 디즈니에서는 원작 애니메이션이 아닌 원전이 되는 '목란사'를 기반으로 했다고 알렸다. 하여, 애니메이션 <뮬란>을 빼고 이 작품만 놓고 본다면 명백히 '별로'인 영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많은 고전이 여성 서사에 기반한 스토리와 메시지로 중무장하며 리메이크되고 있다. 주인공이 나아감에 있어 수단에 불과했거나, 전체적 맥락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지만 한낱 조연이자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목란사'라는 고전은 애초에 여성이 주인공이자 그녀의 치밀한 성장과 기막힌 변화가 드라마틱하면서도 진지한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영화 <뮬란>은 영화 외적인 걸 차치하고라도 내적으로도 잘 보여 주지 못했다.
가장 큰 오점은 성장의 부재라 하겠다. 뮬란은 '성차별적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여성으로서 바꿔 보겠다'라는 생각으로 전쟁에 나선 게 아니라 지극한 효심의 일환으로 나선 것이다. 이후,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깨닫고 변하면서 당당한 여성으로 세상을 바꾸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뮬란은 애초에 특출난 '기'를 지니고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여자이기에 그걸 폭발시키지 못했다는 설정. 그보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단련하고 깨닫고 변하면서 성장하는 서사가 더 설득력 있고 또 드라마틱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퀄리티가 메시지를 따르지 못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페미니즘적 요소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적 요소를 중심에 두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유연'이라는 적을 상정했지만 뮬란이 구하고자 한 나라도 시기상 '북위'로 선비족의 한 갈래에 연원을 두고 있기에, 지금의 중국이 스스로를 칭하는 한족이 오랑캐를 쳐부수는 맥락과는 다르다 하겠다. 그럴수록 영화 외적의 잡음이 더욱더 심각하고 황당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그런 한편, 위의 요소들에 너무 집착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상당히 낮다. 메인 빌런이라고 할 만한 캐릭터가 보리 칸이 협박하며 주무르려고 하는 '마녀' 정도인데, 그녀조차 뮬란의 성장에서 여성으로서의 깨달음에 일조하는 정도로 그칠 뿐 빌런다운 면모를 보여 주지 못한다. 사령관 텅 장군이 엄청난 무술 실력에도 불구하고 별 역할을 해 주지 못하는가 하면, 황제는 무공 실력을 뽐내지만 허무하게 잡히고도 하며, 뮬란과 함께 훈련했던 병사들은 유연 최고의 실력자들을 별 탈 없이 무찌르기도 한다.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진지한 와중에, 대놓고 드러내는 메시지와 실망의 금자탑을 쌓은 유역비의 연기력과 애매하기 짝이 없는 액션과 살짝의 유머가 뒤죽박죽 섞였다. 하여, 영화 외적의 잡음 때문에 영화 내적의 장점들이 묻혔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 외적의 잡음 덕분에 이 영화를 향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불합격'이니 말이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미하지만 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찬란한 작화로 표현한 수작 <해수의 아이> (0) | 2020.10.02 |
---|---|
전쟁의 일상과 날것의 현장감이 압권인 명작 전쟁영화 후보 <아웃포스트> (0) | 2020.09.25 |
<나비효과> 감독이 보여주는 반전 밀리터리 호러 <고스트 오브 워> (0) | 2020.09.11 |
대만 계엄령 시대의 지옥 같은 학교를 공포로 빗대다 <반교: 디텐션> (0) | 2020.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