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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소리를 잃고 싶어 하는 보리를 응원한다 <나는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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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나는보리>


영화 <나는보리> 포스터. ⓒ영화사 진진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생각의 총량은 하찮기에,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하더라도 대략이나마 보려고 노력하면 좋은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롭다거나 도움을 준다기보다, 세상 자체를 풍요롭게 하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한 곳만 보고 살아도 빠듯한 세상살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 안에서 다양성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당연히 나는 내가 살고 있고 내가 보고 느끼고 있는 세상이 평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에서 어떤 다양성 또는 다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찾아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 자신의 삶에서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의 한 갈래를 찾아내어 영화로 내보낸 감독이 있다. 


김진유 감독은 지난 2014년 단편 <높이뛰기>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내보였는데,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있는 그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엄마와 함께 작은 옷가게에 갔는데 종업원들이 하는 행동과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몇 년 뒤 이 단편을 디딤돌 삼아 장편 데뷔작 <나는보리>를 선보였다. 아빠, 엄마, 보리, 남동생 정우 네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보리의 이야기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세 가족을 책임지는 보리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바닷마을에 사는 보리, 듣고 말할 수 있는 그녀에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빠, 엄마, 남동생 정우가 있다. 아빠와 엄마는 아무래도 동생이기도 하지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정우에게 신경이 쓰인다. 보리는 그 모습이 서운한 기색이다. 네 가족이 함께 놀러간 단오장, 하루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저녁 보리가 따로 떨어져 가족을 잃는다. 보리가 방송을 해도 가족들은 듣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가족들이 방송을 할 수도 없다. 보리는 경찰서로 향하고, 시간이 지나 가족들과 재회한다. 


보리는 네 가족의 중국집 배달을 책임진다,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보리는 할아버지 댁 방문 길을 책임진다, 버스표를 끊고 택시기사에게 길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보리는 어쩔 수 없는 소회감을 느낀다. 그녀는 이윽고,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빌고는 행동에 옮기기에 이른다.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물 속에 오래 있다 보면 귀가 먹먹해진다는 티비 속 해녀의 말을 듣고 세면대에 물을 받고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별 차도가 없자, 급기야 바닷물에 빠져 버리는 보리다. 


근처에 낚시를 하러 왔던 아빠의 빠른 대처로 빠르게 물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보리,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진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게 아닌가. 이제 그녀도 가족의 어엿한 일원으로 소회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새소리로 깨어나는 보리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척하기로 한다. 아빠, 엄마, 정우와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소식은 온동네로 퍼지는데... 과연 보리는 언제까지 거짓말을 이어갈 수 있을까?


소리를 잃고 싶은 보리, 그 바람의 이면


영화 <나는보리>는 생소한 시선과 생각을 전한다. 영화 속 스토리 상으론 '어린' 친구 보리이기 때문에 순수한 시선와 생각이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로 '장애'를 대하는 역발상의 시선과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 하기에, 영화가 단순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었고 이해하고 또 공감가는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라기보다, 생각을 달리 하게 하는 영화인 것이다. 


장애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담은 영화들이 아무래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들을 향한 인식을 개선하고 또 생각을 올바르게 재정립하려는 데 일조하면서도 영화적으로 극적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자못 '황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름 아닌 동심으로서의 순수한 마음이 발동된 결과로, 세계를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인 가족들에 편입되고 싶은 마음 또는 가족들에게서 소회되기 싫은 마음의 발로이다. 


그 마음 자체로만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마음이 생기기까지의 과정과 맥락을 살펴보고 들여다보면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일반적으로 10살 전후 아이들에게 '세계'라고 하면 친구들과의 관계(사회)에서 오는 것들이겠지만 그건 안정된 가족(가정)이라는 기반이 있을 때고, 보리에겐 안정된 가족이라는 기반이 없다. 가정을 딛고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남들보다 늦게 겪거나 아예 겪지 못한 것이다. 하여, <나는보리>에서 '장애'는 수단일 뿐이고 '보리'의 성장이 중요하다 하겠다.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이나 어른 시절을 막론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거나 남들과 너무 다른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안고 산다. 영화 속 보리의 경우, 가족 이외의 '남'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전에 '나'와 '세 가족' 간의 다름에서 오는 괴리감을 체험해 왔다. 그 소회감을 계속 체화해 왔고 그들과 같아 지고 싶다는 합당하고 합리적인 바람에 이른다. 그녀로선, 그 이후로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인 것이다.


그녀가 그 과정을 '성장'이라는 크고 긴 개념의 한 방면으로 잘 보낼 수 있다면, 나중에는 누구보다 훨씬 다양하고 사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고 또 바라볼 수 있을 테다. 이 영화는 혹독하다면 혹독하지만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이한 과정이라고 해도 나쁠 것 없는 성장 이야기를 내보인다. 마냥 천진난만하지는 않은, 그렇다고 가멸차게 몰아붙이지도 않는 경계에서 잘 다루고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보리에게 하염없이 연민의 시선을 보내며,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어서 세상으로 나오라고 도와주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여, 이 영화에게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영화는 백 번 천 번이 나와도 꼭 보고 만천하에 소개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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