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포스터. ⓒ넷플릭스
1965년 2월 21일, 미국 뉴욕 할렘가의 오두본볼룸에 여느 때처럼 맬컴 X는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소란을 피웠고, 맬컴 X가 진정시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남자가 산탄총으로 맬컴 X를 쏘았고, 쓰러진 그를 향해 두 남자가 권총으로 16발을 쏘았다. 맬컴 X는 즉시 콜롬비아 장로교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다.
3명의 범인 중 한 명인 토머스 헤이건은 탈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이 총을 쏘았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노먼 3X 버틀러와 토머스 15X 존슨이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다른 2명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그 둘은 체포 당시에는 물론 1980년대 가석방된 후에도 줄곧 자신들이 맬컴 X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헤이건도 그 둘이 범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실제 범인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다.
맬컴 X 암살자들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 소속 조직원으로 밝혀졌지만, 그들 뒤에 손닿을 수 없는 거대 배후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론이 뒤따른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일까, 뉴욕 경찰청일까, FBI일까. 흑인 사회 내 맬컴 X의 정적들일까, 백인 사회 내 맬컴 X의 정적들일까. 아니면, 그들 모두의 합작품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평범한 맬컴 X 연구가 압두르라흐만 무함마드의 심도 깊고 강력한 주장을 다룬다. "맬컴 X 암살 수사 결과는 잘못된 것이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맬컴 X는 누구인가
맬컴 X가 누구인가. 스미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혁명가&저항가' 중 한 명으로, 흑인인권운동가이다.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마약 밀매, 강도, 포주 등에 손을 댔다가 체포되어 오랜 시간 감옥 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흑인 이슬람 종교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접했고 치열한 공부 끝에 1950년대 초 가석방되어 지도자 일라이자 무하마드를 만나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다.
1960년대, 그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최고위원이자 대변인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연설과 저술을 펼쳐 전국구 유명인이 되었다. 개인의 영달과 물질적 착복을 일절 뒤로 하고 오로지 흑인 인권과 흑인 우월주의로 나아갔다. 그의 명성과 함께 네이션 오브 이슬람도 크게 성장한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이 커지자 조직 고위층의 시기와 질투가 뒤따른다. 일라이자 무하마드와 맬컴 X를 떼어놓고자 FBI가 이간질하기도 하였다.
FBI의 끝없는 이간질과 질긴 감시 속에서 조직 고위층과 수장의 곱지 못한 시선까지 안팎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는 맬컴 X, 당대는 물론 역대 최고의 권투선수로 단연 손꼽히는 무하마드 알리를 영입하며 명예와 자리를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실패로 이어지고, 결국 맬컴 X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그는 알고 있다. 멀지 않은 날에 죽게 될 거라고. 그것도 네이션 오브 이슬람 조직원의 손에.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사실, 암살되기 며칠 전엔 그의 집이 폭파되기도 했지만 뉴욕 경찰이나 FBI에선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
맬컴 X 암살의 진상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만큼 유명하지만 일면 잘 모르는 맬컴 X를 되새기는 작업이 아닌 그의 암살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암살 주범으로 지목되어 오랜 감옥살이를 했지만 평생 자신은 누명을 썼다고 주장한 두 명(노먼 3X 버틀러, 토머스 15X 존슨)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 다큐멘터리를 이끄는 화자 압두르라흐만 무함마드는, 그 두 명의 누명 논란과 음모론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비로소 맬컴 X의 암살뿐만 아니라 맬컴X의 삶과 사상까지 어떠한 여지없이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여 다큐멘터리는, 맬컴 X의 살아생전 이야기와 맬컴 X 암살범 이야기의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압두르라흐만 무함마드는 맬컴 X의 생애를 정확하게 연구하는 만큼, 맬컴 X 암살의 진실을 정확하게 끄집어내려 한다. 그리고, 그 작업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만인에게 공표하고자 한다.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맬컴 X 관련 콘텐츠를 쉽고 압축적으로 집대성하는 한편, 나아가 그의 죽음 이후의 논란까지 짚어내는 모양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압두르라흐만은 진범을 찾아낸다. 하지만, 진범은 이미 죽었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훨씬 더 큰 충격이 덮친다. 진범이 누구인지, 그와 가까이 지냈던 수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슨, 진범은 범죄의 세계에 등을 돌린 후 성지순례를 다녀왔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았기에 지나간 옛일은 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맬컴 X의 존경하고 기리는 한편, 맬컴 X를 죽인 진범과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검은 메시아'라고 불렸던 위대한 운동가 맬컴 X가 살해되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미디어는 가십처럼 다루었고 경찰은 끔찍하게 어설프고 하나마나한 수사를 이어갔으며 FBI는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철저히 은폐했다. 그러는 사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사업 제국을 일구었고 FBI는 엄한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넣어버렸으며 진범은 공동체의 은폐 속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갔다. 맬컴 X는 사후 훨씬 더 유명해졌으며, 맬컴 X 유가족들은 하염없는 슬픔에 잠기는 한편 무서움에 떨었을 테다. 누명을 쓴 두 명의 암살범도 마찬가지.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압두르라흐만 무함마드에 따르면, 맬컴 X 암살 사건은 '맬컴 X'라는 누구도 어찌할 수 없지만 누구든 어찌하고 싶은 거물을 가운데 두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 미디어와 뉴욕 경찰과 FBI가 합작해 이루어낸 거대 사기극이다. 맬컴 X와 그의 유가족 그리고 암살범으로 지목된 두 명만 희생하면 정녕 수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기극으로, 단순히 논란과 음모로만 그칠 게 아닌 제대로 끝까지 파서 '진실'을 가려내야만 하는 역사라 하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은 덮히고, 진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가 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실이 철저히 덮힌 역사적 사건이 수없이 많을 테다. 그런 사건들은, 몇몇 사람이나 조직이 진실의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얽히고설켜 그야말로 '모든 이를 위해'라는 말로 정당화된다. 모든 이들이 진실을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듯 덮어버리면, 어느 누가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기득권층이든 비기득권층이든 진실된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며 이전보단 조금의 발전과 이익을 바랄 뿐이다. 와중에 맬컴 X처럼 궁극적이고도 치열한 변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사람이 나오면 솎아내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형상을 이용해 이익을 창출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술수인가. 수많은 추종자가 따랐던 위대한 맬컴 X도 그저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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