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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10대는 볼 수 없는 충격적인 10대 이야기 <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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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박화영>


영화 <박화영>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2000년대 중반까지 독립영화 조·단역으로 활약한 배우 이환, 2008년 <똥파리>로 독립영화 주연급이 된다. 2010년대엔 <마이 리틀 히어로> <암살> <밀정> 등 메이저영화 조연으로 발돋움해 인지도를 쌓았다. 한편 그는 2013년 <집>이라는 단편영화로 감독으로도 데뷔하며 부산과 전주와 미쟝센 등 굵직한 영화제들 다수에 초청받으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년에는 단편영화 <집>에서 모티브를 따 발전시킨 장편영화 <박화영>을 내놓았다. 부산 및 서울독립영화제와 파리한국 및 묀헨영화제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낳으며, 이환 배우에서 이환 감독으로 괜찮게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곧바로 정식개봉을 하진 못했고 1년 여가 지나 2018년 7월에 극장으로 정식개봉할 수 있었다. 


영화 <박화영>은 10대는 볼 수 없는 10대들의 믿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며 보고 있기가 이야기를 표방한다. 1990년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2000년대 임상수 감독의 <눈물>의 뒤를 이어 10대 가출 청소년들의 리얼한 속사정을 전한다. 한편, 이환 감독이 주연급으로 분한 <똥파리>와 2010년대 최고의 10대 영화 <파수꾼>과 가출팸 이야기를 전하는 <꿈의 제인> 등의 영화가 겹쳐진다. 


'엄마' 박화영과 가출팸들


고등학생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 받으며 남기고 간 허름한 자취방에서 가출팸들을 재우고 먹이고 챙긴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겐 '엄마'라는 칭호가 붙어 있는데, 이상한 건 친구들이 그녀를 의지하는 듯하면서 가차없이 까는 것이다. 박화영의 단짝 은미정은 무명 여그룹의 일원으로 가출팸의 리더로 보이는 영재의 여자친구로 권력을 부리고 있다. 


영재는 다른 이들과 다름 없이 화영의 집에서 먹고 자고 놀면서 외형의 의지를 지속하고 있지만, 그 집에서 여자친구 미정이 다른 남자와 붙어 있는 꼴을 보면 미친놈보다 더한 행위로 화영을 괴롭힌다. 화영은 본인의 잘못이 없음에도 한없이 두려운 표정과 몸짓으로 영재의 몹쓸짓을 당한다. 한편, 영재는 미정과 화영이 붙어다니는 것도 싫어한다. 그 꼴을 보면 역시 미정 아닌 화영에게 끔찍한 화풀이를 한다. 


화영은 고등학생이지만 학교를 거의 가지 않고 하루종일 가출팸들을 챙기며 그들이 오지 않을 땐 안절부절 못한 채 기다리며 집을 치우곤 돈이 떨어지면 엄마가 사는 집으로 가 온동네가 들여다볼 만한 행패를 부리곤 한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화영은 끝없이 당하면서도 미정을 비롯한 가출팸들을 챙기는 것이다. 오히려 화영이 살아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듯 말이다. 


충격적인 10대 이야기


영화 <박화영>은 결코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하곤 하지만, 다른 세상 혹은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하곤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대략 알 뿐이며, 대략이나마 알 것 같지만 사실은 아예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는 10대 가출팸의 내막을 상세하게 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여, 영화는 매우 충격적이다. 화영의 인간 본질적인 인정욕구와 함께 10대 때만 느끼는 인정욕구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외향으로 보이는 10대의 폭력 수준의 참담함이 충격적인 것이다. 한 장면도 건너지 않고 등장하는 욕설과 술·담배는 물론 족히 한 장면 건너띄고 등장하는 날 것의 정신·육체적 폭력과 아름답지 않은 섹스까지, 기억에 박힐 만한 수위 높은 장면들이 끝없이 나온다. 


함께 영화를 시청한 필자의 아내가 그동안 본 영화들 중 가장 기분 나쁜 영화라고 했을 정도다. 덧붙이기를 그런 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말도 되지 않겠냐고 하긴 했지만. 그들이 그렇게 된 걸 옹호할 수 없고 옹호할 마음도 없지만 어른들의 책임도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즉, <박화영>은 기획의도를 잘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10대들의, 10대들밖에 모를 것 같은 이야기를 전하지만 정작 10대는 볼 수 없기에, 정작 영화가 대상으로 하는 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층인 어른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단순히 보고 있기 힘들다는 반응뿐 만 아니라 다른 무엇을 느껴야 한다. 어른의 시선에서 10대들을 바라보는 한편, 10대들의 시선에서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10대의 인정욕구


10대를 돌이켜 보면, 재밌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인생에 다시 없을 재미있는 한때를 수없이 누렸지만, 소위 '일진'이 아니었거니와 잘못 찍히는 바람에 괴롭힘의 대상이 된 적이 있어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진 패거리를 향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동경은 나 또한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향한 동경의 시선을 갖는다니 말이다. 


화영이 자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챙기는 가출팸을 비롯 영재에게 매일 같이 각종 폭력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단짝이라 불려도 손색 없는 미정에게 일말의 의심 없는 배신을 당하면서도 계속 놓지 않는 게 있으니, 그게 바로 그들을 향한 동경이다. 별 일 없으면 화영은 영재와 함께 한 자리에 있고, 영재가 없을 땐 욕하고 술담배를 하며 마치 한 패거리인 양 행동하는 것이다. 10대'만'의 인정욕구 모양새는 아니겠지만, 10대 때 특출난 모양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한편, 엄마한테 버림 받고 나타난 화영만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10대 화영 아닌, 화영으로서의 화영 말이다. 그녀는 엄마에게서 인정받지 못한 자신을 소위 '잘 나가는' 일진한테서, 특히 그중에서도 특출난 미정에게서 인정 받고자 했던 게 아닐까. 그러면서, 자신이 '엄마'가 되어 그들에게 또 다른 종류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진짜 엄마를 내면화·동일화하고자 하기까지 했던 게 아닐까. 


영화에서 어른은 몇 명 나오지 않는다. 그 몇 명의 어른조차 10대 아이들에게서 뭔가를 갈취하려 들고 그들을 이용해 욕망을 채우려 들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10대 아이들을 내버리던가 그들에게 밀려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내버리고 만다. "요즘 애들은 왜 저래. 말세다, 말세야."라고 치부해버릴 게 아니라, 본인부터 돌아보는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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